여행과 건강을 바꿨다..☆
우연한 기회로 21살 여름을 몽골에서 2주 동안 봉사활동과 여행을 하며 보냈다. 윈도우 배경화면에서나 볼법한 파란 하늘과 푸른 초원, 그리고 말까지 대자연을 보고 온 나는 제대로 여행 바람이 들었다. 나름 초등학생 때 좋은 기회로 뉴질랜드로 어학연수도 가고 걸스카우트에서 일본도 갔었는데 초등학생 때의 나와 대학생 때의 나는 여행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흥의 정도가 달랐다. 초등학생 때가 2-3 정도였다면 20대의 나는 7-8 정도 강도의 새로운 자극을 느꼈고 자연스럽게 겨울에는 어디로 떠날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그전까지는 내 돈으로 여행을 간 적이 없었다. 모두 부모님의 지원을 받았거나, 몽골 봉사활동도 비행기 값만 내면 나머지 숙박과 음식을 모두 호화롭게 챙겨주셨다. 그렇지만 이번 여행은 내 21년 인생 처음으로 내가 모은 돈으로만 떠나고 싶었기에 나는 당장 여행 경비를 모아야 하는 미션이 생겼다.
2학년 2학기를 보내며 일주일에 약 7만 원의 용돈을 받던 나.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나의 방법은 무식하게도 7만 원의 용돈을 아끼고, 아껴 쓰는 것이었다. 4-5만 원을 저금하기 위해서 하루에 점심, 저녁으로 쓸 수 있는 돈은 몇 천 원이었다. 방법은 편의점에서 김밥과 라면으로 때우기. 각자 김밥 한 줄에 라면 하나를 친구와 나눠먹으면서도 새로운 나라에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떴다. 가끔 호화롭게 먹고 싶으면 2천 원짜리 수제(?) 햄버거를 먹었다. 이렇게 모아도 사실 넉넉한 경비는 아니었지만 그 당시에 있던 <1박 3일 밤도깨비 여행> 패키지는 예약할 수 있었다. 새벽에 이동해서 하루만 잠을 자고, 다시 다음날 새벽에 오는 고난의 스케줄이었지만 그마저도 좋았다. 난 젊으니까!
그렇게 차곡차곡 모은 돈으로 무사히 여행 패키지를 예약했다. 이제 돈을 더 아껴서 여행 경비를 모으면 되겠구나 싶어서 더 줄이고, 줄였다. 주말에는 바나나를 큰 거를 하나 사 와서 그걸로 버텼다. 지금 생각하면 이러라고 준 용돈이 아닐 텐데 엄마에게 살짝 죄송스러운 마음이 든다. 하하.
인스턴트로 식사를 때운 지 몇 주가 지나자 몸에 약간 이상이 생겼다. 위가 계속 콕콕 쑤시고 아팠다. 그냥 안 좋나 보다 생각하고 참고 지나갔는데 결국 중간고사를 보는 도중에 복통이 너무 심해서 시험도 제대로 치르지 못한 채 나와서 택시를 타고(-6,000원) 병원(-20,000원)에 갔다. 병명은 위염과 장염. 제대로 일어날 힘도 없던 나는 링거를 맞고서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몸이 아파지니 다시 편의점 음식을 먹을 순 없었다. 나름 비쌌던 본죽(-7,000원)을 사 먹어야 했고, 병원도 다시 몇 번 가느라 결국 일주일 생활비를 탈탈 썼다. 돈을 아끼다가 내 몸을 낭비시키는 것을 몰랐던 철없던 21살이었다.
이전처럼 극단적으로 저금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나는 그 7만 원 내에서 정말 필요한 차비등을 제외하고는 계속 조금씩 모아서 나의 인생 첫 자유 여행을 떠났다. 새벽에 일본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재발한 복통에 공항 의자에 누워 있어야 했지만, 아침에 해가 뜨자마자 바로 디즈니 씨(sea)로 향해서 하루 종일을 누비며 여행의 즐거움을 마음껏 느꼈다. 저녁이 어둑해져서야 나와서 롯폰기로, 도쿄타워로 걸어 다니며 그동안의 고생을 보상받듯이 이 시간을 즐기고 또 즐겼다.
비록 모으는 기간은 아팠고, 여행 일정도 정말 고되었지만 (직장인 타깃으로 주말 간 여행 갔다 오라고 만든 패키지라 하는데.. 직장인이면 정말 못 갈 것 같다) 처음으로 '정해진 일정대로 따라다니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겪은 나는 더욱더 여행이라는 것에 매료되었다.
만약 부모님이 지원을 해줘서 떠났어도 나는 이렇게까지 뿌듯함을 느꼈을까.
그래서 앞으로 모든 여행은 오롯이 내 돈으로만 떠나기로 다짐했다.
쉽지 않을 거니까 여행지에서의 달콤함이 더 진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생각했기에.
일본 여행이 끝나고나서 바로 휴학계를 냈고,
2달간 떠날 유럽여행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