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유럽에 가고 싶은 거야?
21살의 나는 열심히 연애 중이었기에 국가의 부름을 받고 2년간 떨어져 있어야하는 사실이 너무 슬프면서도 두려웠다. 새로운 학기를 앞두고 ‘내가 혼자서 잘 다닐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계속되었다.
그래서 갑자기 휴학계를 내고 유럽여행을 준비하게 된 건, 집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서 시간대도 다르고, 말도 다른 낯선 환경 속에서 혼자 잘 지낸다면 용기를 얻을 거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1월 알바비를 받자마자 2달간 유럽에 있어야 하는 비행기표를 먼저 예매했다. 아무런 일정도 짜질 않았지만, 모든 여행의 시작은 비행기표부터니까.
나의 비행기표 구매 소식에 가족들은 모두 놀랐다. 동생이 ‘혼자’ 유럽에 ‘2달이나’ 간다고 하니 걱정들이 앞섰고, 우리 오라버니는 나의 여행 전 날 여권을 찢겠다는 으름장을 놓았다. 나도 조금은 두려운 마음이 들었지만 어쩌겠나- 벌써 비행기표를 사버렸는 걸, 이제는 물릴 수 없다.
매월 아르바이트비가 들어올 때마다 여행에 필요한 것들을 바로바로 사야 했다. 1월에는 비행기표, 2월에는 비행기표에 맞먹는 금액의 유레일패스 3월에는 각 지역에 있는 한인 민박이나 호스텔 등등. 생각보다 비싼 물가에 대책 없이 2달을 지내야 하는 나는 슬슬 여행 경비의 압박을 받았다.
첫 알바를 콜센터에서 멘탈을 털리고나서, 학교 선배의 추천으로 이벤트 회사에서 알바를 시작하게 되었고 퇴근 후엔 카페로 출근해서 마감을 하는 투잡을 했다. 월-금을 2개의 알바로 보내고 나면 토요일에는 원데이로 일할 수 있는 호텔 서빙 알바를 갔다. 화려한 행사가 열리는 그랜드 볼룸에서 열심히 스테이크를 나르고, 물을 따르면 그 날 하루 바로 5-6만 원을 벌 수 있는 꿀 알바였다. 그렇게 6일까지 알차게 보내고 나면 일요일에는 쓰러져 잤다. 유일한 휴식의 날이었다.
그렇게 투잡과 쓰리잡을 한 지 3주 정도 흘렀던 어느 휴일, 갑자기 배가 아팠다. 생리통도 아닌데 아랫배가 너무 당겨서 참고 참다가 거실에서 배를 움켜잡고 오빠에게 아빠를 불러 얼른 병원에 데려가 달라고 했다. 세브란스 병원에 가서 MRI를 찍고, 각종 검사 뒤 ‘맹장염’이라는 결과가 나왔고 그 날 자정에 바로 응급 수술에 들어갔다. 수술 뒤에는 일주일간 절대 안정이었기에 입원 후에도 나는 집에서 가만히 누어 아무 일도 못한 채로 그냥 하루 종일 이불에 있어야 했다.
순식간에 투잡을 못 나가게 되었지만 오히려 쉴 수 있는 시간이 생겨서 다행이었다. 시간이 남자, 당기는 배를 부여잡고 하루 종일 먼저 유럽에 간 선배들의 멋진 사진들을 보면서 ‘아, 나도 저길 가야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을 마음으로 먼저 유럽에 다녀오고 나니 뭔가가.. 뭔가가 아쉬웠다.
유럽 여행을 가고자 했던 본질적인 질문에 다시 부딪혔다.
‘새로운 환경에서 혼자 지내보는 건 오케이.
근데 그냥 남들처럼 에펠탑 앞에서 멋있는 사진 찍고 싶은 건 아니고?’
‘독립심을 기르려면 다른 나라도 괜찮을 텐데
유럽에 가서 그냥 신나게 관광하려고 하는 게 정말 내 여행의 이유인 거야?’
여행을 준비하겠다고 휴학계를 냈고,
비행기표와 유레일 표를 구매했고,
투잡~쓰리잡을 신나게 하고 있던 때에
나는 다시 내 여행에 대한 이유와 목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