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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미로부터 Mar 25. 2021

04. 한복 여행 준비기 (O)

제가 맏며느리 상이거든요.

<남들과 똑같은 여행>이라는 단어가 갑자기 훅- 하고 들어와서, 나의 여행의 본질적인 이유에 대해서 물었다.


혼자 유럽에서 2달이나 잘 지내보고 싶은 마음에 출발하였지만  막상 여행을 준비하다 보니 어느새 나는 '어디는 꼭 가야 해, 뭘 먹어야 해. 이거는 꼭 봐야 해.' 이런 것들에 휩싸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도장깨기와 같은 여행은 굳이 6개월 동안이나 알바를 하며 모은 돈과 시간을 쓰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다녀와서 나는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에펠탑 봤니? 나 봤잖아~ 정말 멋있어!", "콜로세움에 가봤는데 말이야~" 내가 주어가 아닌 명소가 주인공이 되는 여행인 것 같았다.


'나만의 여행을 만들어야겠어.'


아직 수술한 곳이 다 아물지 않은 배를 부여잡고 든 생각이었다. 이미 낮잠을 많이 잤기에 새벽이었음에도 정신은 말똥말똥했었고 나는, 나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가 잘하는 것이 뭘까하고 기억을 더듬어 보니 어쩌다 3단까지 따게 된 태권도가 생각났다. 나의 자랑스런 검은띠와 멋진 도복을 입고 여행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자칫 여행객들에게 위협이 되겠다 싶어서 바로 접었다.



'그러고 보니, 나 맏며느리상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종종 어른들이 나에게 맏며느리 같다, 참하다 라는 말을 많이 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떠오른 옷이 있으니 -


바로 한복이었다.


'한복을 입고 여행하면 어떨까?'

'나는 멋진 몸매는 아니지만, 한복을 입으면 몸매는 상관이 없잖아. 마침 나는 한복이 아주 잘 어울리는 참한(?) 인상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걸.'



한복을 입고 유럽의 시내를 돌아다니는 상상을 했다.

이런 여행이라면 에펠탑 앞에서 사진을 찍어도, 콜로세움 앞에서 사진을 찍어도 나만의 여행이 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어서 연습장을 꺼내 에펠탑 앞에서 한복을 입고 활짝 웃는 내 모습을 그렸다. 너무너무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마침 나는 광고홍보학을 공부하는 학생이었고, 이건 나의 첫 광고 프로젝트가 될 것 같았다. 어떻게 한복과 함께 한국을 알려줄까 생각하면서 밤을 보냈다. 얼른 아침이 되면 한국 풍경을 찍으러 다니고 싶었다.



'유럽 여행'이 '한복 여행'으로 바꾼 후,  내 여행의 목적과 이유는 분명해졌다. 그리고 전보다 더 설렜다. 이건 내가 만들어가야하는 새로운 여행이었으니까 :)


쉬는 날이면 혼자 경복궁, 삼청동, 북촌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작게 명함사이즈로 출력해서 내가 만나는 외국인에게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행 기간 내 봉사활동 캠프에 갈 예정이었기에 혹시 모르니 단소 부는 법, 불고기 만드는 법도 익혔다. 가장 메인이 될 한복이 제일 고민이었다. 은근히 비싼 탓에 새로 사기가 부담 되었는데, 마침 엄마에게 봉사활동 때문에 필요하다고 하니 며느리들끼리 맞췄던 한복을 구해다 주셨다. 마지막으로 꽃신을 신을까 고민했지만, 활동성을 고려해 파스텔톤의 예쁘고 발이 편한 운동화를 샀다.


———


그렇게 어느새 6개월이 지나 여행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6개월 동안 나는 콜센터, 이벤트 회사(강남), 호텔 서빙, 카페, 이벤트 회사(인천공항), 핫트랙스 등 다양한 곳에서 일을 하며 약 600만 원 정도를 모았다. 마지막으로 출근하고, 퇴근하는 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이제 내게 남은 건 새로운 나라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는 날들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혼자서 오랜 기간 동안 준비했던 나의 첫 솔로 여행이라 그런지, 분명 인천공항까지 배웅하러 와준 엄마와 오빠를 마지막으로 볼 때는 눈물이 펑펑 났는데 신기하게도 입국 심사를 마치자마자 '자유다!!!'라는 생각에 펄쩍펄쩍 뛰어다녔다. 앞으로 2달간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보내게 될 거란 사실에 기분이 정말 좋았다.


나의 첫 유럽 여행이자,

한복 여행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매일 3개씩 먹던 젤라또와 트레비 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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