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2025)과 다크나이트 트릴로지
주의! 이 글에는 영화 <<슈퍼맨(2025)>> 과 <<다크나이트 트릴로지>>의 스포일러, 그리고 저의 주관적인 해석이 담겨있습니다.
회사에서 조직문화 활동으로 영화 <<슈퍼맨(2025)>>을 단체관람 하고 왔다. 사람들의 평은 꽤나 갈렸다. 슈퍼맨이 너무 약해서 실망했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 정도는 되어야 나중에 다른 히어로들과 팀업을 하는 의미가 있다며 옹호하는 사람도 있었고, 슈퍼맨이 아니라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같아서 별로였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래서 좋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여기에 슈퍼맨이라는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이민자’라는 상징성과 현실의 미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이민자 정책을 엮어 해석하는 사람도 있었고, DC의 새로운 유니버스를 시작하는 첫 영화로서의 의미를 투영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야말로 슈퍼맨의 유명세만큼이나 다양한 해석들이 나와서 사람들의 반응을 지켜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있었다.
나는 이 영화를 전반적으로 재미있게 보았다. 영화에 등장하는 ‘슈퍼독’ 캐릭터가 참 지랄 맞다… 고 느낀 정도 외에는 액션이나 CG, 연출 같은 부분에서 딱히 거슬리는 것도 없었다. 특히 흥미로웠던 부분은 액션이나 CG 같은 것이 아니라 절대자에 가까운 능력을 가진 슈퍼맨이라는 캐릭터가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 가는 과정이었다.
슈퍼맨은 크립톤 인 친부모가 남긴 영상 속 메시지를 들으며 마음의 안정을 찾고, 그 메시지를 바탕으로 자신의 신념을 형성해 나가며, 이렇게 만들어진 신념에 따라 ‘선‘을 행한다. 그러나 악당에 의해 이 영상 뒤에 숨겨진 메시지 - 우월한 능력을 이용해 지구를 지배하고 많은 여성들을 거느리며 크립톤의 유전자를 퍼트려라 - 가 세상에 공개되며 세상의 거센 비난에 부딪히고 그 스스로의 정체성과 신념도 크게 흔들리게 된다.
자신이 누구인지 고민하던 슈퍼맨의 마음을 다잡아 준 것은, 그를 길러준 지구인 아버지인 조너던 켄트의 한마디였다.
Your choices. Your actions. That's what makes who you are.
네 선택과 네 행동이 네가 누구인지를 말한다.
‘나는 누구인가 ‘는 자신을 지구로 보낸 친 부모의 의도가 아니라 스스로가 그동안 어떤 행동을 해왔는지가 정의한다는 말. 그 한마디에 슈퍼맨은 사람들을 지키는 선한 슈퍼 히어로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된다.
조너던 켄트가 이 말을 건넬 때 나는, <<다크나이트 트릴로지>> 를 떠올렸다. 자신이 배트맨이라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방탕한 재벌 브루스 웨인의 모습을 하고 있을 때, 그의 소꿉친구이자 짝사랑하는 상대인 레이첼 도스가 나타나 따끔한 훈계를 건네는 장면을. 그 장면에서 레이첼은 이렇게 말한다.
지금의 너를 말해주는 것은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느냐’가 아니라 ’ 무엇을 하느냐’ 야.
이 한마디는 안일하던 브루스 웨인을 배트맨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말이 되었다.
나는 누구인가?
나의 정체성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우리는 종종 내가 겪은 일들, 내가 속한 집단, 자신의 성격이나 생각 등이 자신을 규정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두 영화 속 영웅들은,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선택을 해왔는가 ‘, ‘어떤 순간에 어떤 행동을 했는가’라고 말한다. 실수할 수도, 흔들릴 수도, 헤멜 수도 있지만 그 와중에도 스스로의 신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그 의지야 말로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이라고.
놀랍도록 복잡해진 세상 속에서 우리는 인터넷, 미디어, 콘텐츠, AI, 댓글이나 좋아요 같이 수많은 것들의 영향을 받으며 하루에도 몇 번씩 ‘진짜 나‘를 찾아 헤맨다. 이런 고민 속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을 때, 두 영화가 건네는 메시지를 나침반 삼아보면 어떨까.
레이첼의 말 덕분에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된 브루스 웨인은 고통과 상실 속에서도 선한 행동을 반복하며 배트맨이라는 히어로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그리고 스스로의 명예마저도 던져버리면서 조커라는 거대한 혼돈이 사람들의 믿음을 깨트리지 못하도록 막아내는, 어둠 속에 숨어 사람들을 보호하는 침묵의 수호자 ‘다크나이트‘로 거듭나게 된다. 악당에게 부모를, 사랑하는 이를, 기어코 자신의 명예마저도 잃은 한 인간이 다크나이트라는 정체성을 갖는 히어로로 완성되는 순간을 그린 <<다크나이트>>의 엔딩 씬은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을 정도로 강렬한 임팩트를 남겼다.
이 만큼의 임팩트를 주지는 못했지만, <<슈퍼맨>>의엔딩 또한 슈퍼맨이라는 영웅의 정체성이 완성되는 순간을 그렸다. 슈퍼맨은 마음의 평화를 찾고 싶을 때 여전히 부모님의 영상을 보지만, 이제 그가 보는 것은 크립톤인 친부모인 조-엘 부부가 아니라 자신을 사랑으로 길러준 지구인인 켄트 부모의 영상이다. 이 장면을 통해 슈퍼맨은, 크립톤의 마지막 후예인 칼-엘이 아니라 지구인 클락 켄트의 정체성을 선택했음을 알 수 있다.
영화의 분위기도, 캐릭터성도 너무나 다른 둘이지만 둘 모두 주인공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렸다는 점에서 유사점이 많이 보인 영화였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캐릭터의 정체성이 완성되는 순간을 보는 것은 언제나 짜릿하다. 자신을 찾은 슈퍼맨이 그릴 다음 이야기가 벌써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