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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text Apr 22. 2023

시간을 천천히 흐르게 하는 방법

오늘의 개똥

나, 그리고 나와 만나는 사람들이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가면서 우리는 "요즘 시간이 너무 빨리 가는 것 같아."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게 되었다. 왜 나이를 먹으면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껴지는 걸까.


 이 질문에 대한 첫 번째 주장. 어렸을 때는 경험한 것이 많지 않아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하지만 어른이 되면 감흥이 무뎌지기 때문에 기억에도 남지 않는다. 특별한 사건 없이 지나간 시간, 즉 기억에서 지워진 시간들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느껴진다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노화와 함께 생체시계가 느려져 실제 시간보다 상대적으로 시간이 더 빠르게 지나간다는 주장도 있다. 심리학자 피터 망간(Peter Mangan)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20대 학생과 6~80대 노인을 대상으로 '마음속으로 3분을 센 뒤 버튼을 누르는' 실험을 했다고 한다. 그 결과 20대 학생들은 평균 3분 3초, 노인들은 평균 3분 40초에 버튼을 눌러 실제 생체시계가 느려진 것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진리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둘 모두 그럴듯한 주장이다. 이 세상 거의 모든 어른들이 궁금해하는 주제이므로 이 외에도 다양한 주장들이 있을 테지만 그것을 다 소개하기는 어려운 일이므로, 세 번째 주장으로 내 생각을 말해볼까 한다. 우리는 왜 어른이 될수록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 느끼는 걸까. 그것은 내 몸이 무거워졌기 때문이다.


 어린 날의 나는 수업과 수업 사이의 쉬는 시간 10분 동안 참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아이였다. 화장실을 다녀오고, 옆 반 친구와 매점으로 달려가 빵을 사고, 먹고, 얼른 자리로 돌아와 숙제가 있었는지 확인하고, 너무 졸리면 잠깐 눈도 붙이고. 이렇게 많은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고작 10분이었다. 점심시간이라도 되면 밥을 먹고, 운동장에 나가 축구나 농구를 하고, 수돗가에서 흘린 땀을 닦고, 매점에 들러 음료수를 마시고 돌아왔다. 이 모든 이동은 '걷기'가 아니라 '달리기'를 통해 이루어졌다.


 오늘의 나는 10분으로는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수 없는 어른이다. 책을 읽자니 무엇을 읽을지 고르다 끝날 시간이고, 누구랑 티타임을 하기엔 커피가 나오기도 전에 끝나고 말 시간이고, 운동을 하기엔 옷을 갈아입기도 전에 흘러갈 시간이다. 10분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유튜브 하나를 보거나 인터넷 조금 하다 보면 순삭이다. 사실, 점심시간 1시간으로도 밥을 먹고 나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오늘의 나는 결코 뛰지 않는다. 그렇다고 걷지도 않고.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를 하염없이 기다릴 뿐이다.




 어렸을 는 뛰었는데 지금은 뛰지 않는 이유. 10분 사이에 그 많은 일을 할 수 있던 내가 이제는 10분을 그냥 버리는 시간 정도로 생각하는 이유는 결국 내 몸이 무거워져서 그만큼 빠릿빠릿하게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무거워졌다'는 단순히 중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어른으로써의 무게, 회사를 다니면서 견뎌내야 하는 인내, 스스로 뿐 아니라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책임감등이 모두 섞인 무게를 말하는 것이다. 고민이 많으면 동작은 느려지기 마련이니까.


 이런 무거움을 안고서는 도무지 빠르게 움직일 수 없다. 빠르게 움직일 수 없으면 같은 시간이 주어져도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든다. 결국 한 가지 일을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달라지므로, '이제 겨우 하나 했는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다고?' 같은 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시간이 왜 그렇게 빨리 가는지, 이제 이유는 알았다. 이유를 알았으니 고칠 수도 있겠지. 시간이 빨리 가는 것이 아쉬워 조금 더 천천히 가게 만들고 싶다면 그만큼 바쁘고 부지런하게 움직이면 된다. '10분밖에 없네. 이 시간에 뭘 하겠어. 그냥 인터넷이나 보는 거지.'가 아니라, '10분이면 매점에 가서 빵 사 먹고 화장실도 다녀올 수 있는 시간!'이라는 마음으로, 일단 뛰어보는 것이다.


 오른발이 물에 빠지기 전에 왼발을 딛고, 그 왼발이 물에 빠지기 전에 다시 오른발을 내딛으면 물 위를 걸을 수 있다. 무슨 농담 같은 소리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엄연히 실현 가능한 방법이다.



  무거운 몸이지만 바쁘게 내딛다 보면 시간도 천천히 흐르고 물 위도 걸을 수 있다는 마음으로, 오늘부터라도 바쁘게 살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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