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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text Apr 23. 2023

생각하는 톱니바퀴가 되어보기로 했습니다.

Intro.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현자타임'이 오는 순간이 있다. 평소 가계부도 쓰지 않는 내가 팀의 예산 계획을 짜고 있을 때, 내 인생 계획도 고민해 본 적이 없는데 담당하는 서비스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야 할지 5년짜리 로드맵을 그려야 할 때 등이 특히 그렇다.


 10여 년의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몇 번이나 찾아왔던 현자타임 중에 가장 강렬했던 것은 언제였을까. 돌이켜 생각해 보면 3년간 몸담아 왔던 팀이 연말 조직개편을 맞아 해체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 그리고 그 후에 2년 연속으로 팀도, 그 상위 조직도 폭파, 폭파되어 3년 연속으로 강제 FA가 되었을 때였던 것 같다. 그날. "올해 연말에 우리 팀이 없어지게 되었다."는 말을 3년 연속으로 들어 허탈함과 무기력감에 빠져 있던 그날. 너무 심란해하지 말라며 팀원 중 한 명이 직장인들의 오래된 잠언을 꺼내들었다.


결국 우리는 회사라는 커다란 기계의
부품 중 하나일 뿐이야


 보통은 '언제든지 필요에 의해 대체될 수 있는', '나 하나 빠진다고 해서 대세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는'처럼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지만 그 순간엔 어째서인지 저 말이 위로가 되었다. 우리, 내가 뭘 잘못하거나 부족해서가 아니라 우리는 회사라는 커다란 기계의 부품 중 하나일 뿐이기 때문에 그냥 그 필요에 의해 다른 곳에서 다른 형태로 동작하게 된 것일 뿐이라는 말로 들렸기 때문이었다. 그래, 오너가 아닌 직원인 이상 나는 회사라는 커다란 기계의 부품 중 하나일 뿐이야.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회사의 어느 조직도 '우리는 이 정도면 인원이 충분해요.'라고 하는 곳은 없기 때문에, 유지가 결정된 팀들은 해체가 결정된 팀의 팀원을 데려가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친다. "그 팀에서 하던 이런이런 일을 우리 팀에서 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 일을 담당하던 사람은 당연히 우리 팀으로 배치되어야 한다."거나, "하고 있는 업무에 비해 인원이 너무 적기 때문에 저 팀에서 몇 명을 데려가야 한다. 그렇지만 일은 가져갈 수 없다." 하는 식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 팀원들은 참 많은 눈치를 봐야 했다. 어차피 선택권도 없는데 A팀에 가고 싶다고 말을 해야 하거나, B팀에 가려거든 본인의 TO를 대체할 새로운 사람을 구해 오라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그냥 톱니바퀴 중 하나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회사 여기저기에 부품이 부족한 곳이 많은가 보다- 하면서.


 우리 팀원들은 결국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평소 관계가 있었거나 특정 팀원을 눈여겨보고 있던 팀장님들이 개별적으로 컨택해서 업무는 둔 채 사람만 데려가는 경우도 가끔 있었지만 대부분은 담당하고 있던 업무에 따라 내년에 배치될 조직이 정해졌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담당하고 있던 업무가 있으니 내년에 어떤 팀에 가게 될지 대략 가늠이 되었다. 그런데 문득, 잘 굴러가던 톱니가 무언가에 덜컥 걸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새로운 곳에서 잘할 수 있을까? 어떤 새로운 일을 받게 될까?' 같은 걱정 때문은 아니었다. 일이야 어느 조직에 가서 어떤 일을 하든 세상에서 내가 제일 힘들 테니까. 그것은 보다 근본적인 의문이었다.


와, 이렇게 생각 없이 회사 다녀도 되나?


 내가 생각을 한다고 해서 무언가가 바뀔 것이라는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뭘 생각한다고 해서 회사의 조직 개편을 없던 것으로 만들 수도 없고, 내 급여를 지금의 10배로 늘리는 일 같은 것도 하지 못할 테니까. 그렇지만 '앞으로 회사를 하루이틀 더 다니고 말 것도 아닌데 그냥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대충, 생각 없이, 여기에 가라니까 가야 되는구나- 하고 납득해 버려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무척이나 불편했다. 스스로를 그냥 톱니바퀴 중 하나일 뿐이라고 되뇌며 애써 가라앉혀 두었던 마음이 갑자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직장인은 그저 회사라는 커다란 기계의 부품 중 하나라는 말은 냉정히 생각하면 틀린 말이 아니다. 커다란 기계가 동작하기 위해서는 작은 부품 하나하나가 모여 제 구실을 해야 하는 것이 사실이니까. 하지만 결코 틀리지는 않은 이 말이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그 말이 스스로를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아무것도 아닌 작은 부품으로 생각하면 필연적으로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워라밸이라는 것이 있고 회사는 그저 돈을 벌기 위해 다니는 곳일 뿐이고 나의 진정한 삶은 퇴근 후의 시간에 있다고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루 중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회사에서 아무 생각 없이 무지성으로 지내는 것이 과연 괜찮은 일인 걸까. 몸은 편할 수 있지만 마음이 불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고민하던 중에 타이밍 좋게도 신사업을 추진하는 조직에서 사람을 뽑는다는 사내 공모가 올라왔다. 공고를 자세히 읽어보니 올해 담당했던 일보다, 내년에 하게 될 일보다 조금이나마 더 재미있고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써 보고 안 되면 그냥 마음 비우고 저 팀에 가서 열심히 하자.'는 생각으로 지원했는데 덜컥 합격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나는 조직을 이동하게 되었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조직 이동이 결정된 순간 이 말이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그날 이후로 나는 그냥 톱니바퀴가 아니라 "생각하는 톱니바퀴"가 되어 보기로 했다. 언제나처럼 대충, 생각 없이, 그냥 동작하는 톱니바퀴가 아니라, 설령 '하라고 하니까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이건 이래서 좋고 이건 저래서 싫다 정도는 생각하는 톱니바퀴.


 백날 열심히 생각해 봐야 내가 부품이고 톱니바퀴인 것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회사의 조직 개편을 내 뜻대로 할 수도 없을 테고 내 연봉을 높일 수도 없겠지. 생각을 하든 하지 않든 일은 여전히 힘들고 어려울 테고 지금 속해 있는 이 팀도 영속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정말 이대로 가라는 팀에 가도 되는 걸까?'라는 생각을 한 덕분에 내가 동작하게 될 장소를 바꿀 수 있었던 것처럼, 열심히 생각하다가 한 두 번 정도 생각한 대로 살게 되면 아무것도 아닌 부품보다는 조금 더 나은 무언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다.


 이렇듯 거창하게 다짐하지만 과연 몇 가지나 정답을 찾아내고 옳고 그름을 구분해 낼 수 있을까. 이 사람의 이야기에 흔들리고 저기서 들은 말에 흔들리겠지. 그래도 그 한 줌밖에 되지 않을 나만의 생각을 찾아, 생각하는 톱니바퀴는 오늘도 돌아갑니다. 째깍째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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