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것
어느새 1개월이나 지나버린 '23년 12월의 끄트머리. 정말 몇 년 만에 TV에서 하는 연말 시상식을 보았다. 방송 3사의 모든 시상식을 다 본 것은 아니고 MBC의 방송연예대상만, 그중에서도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신인상과 대상 부분만 생방으로 챙겨보았다. 전체를 다 보지는 않았지만 두 상의 발표 순간을 실시간으로 보기 위해 다른 것을 하다가 채널을 돌리기를 몇 번을 반복했으니 그래도 내 딴에는 무척 신경 써서 본 시상식인 셈이었다. 그렇게 짧게나마 시상식을 보고 있자니 TV 속에 나오는 그들이 무척이나 부러웠다.
생각해 보면 나는 예전부터 시상식을 부러워했다. 상을 받고 싶다는 말은 아니다. 물론 누군가 상을 준다면야 감사히 받겠지만 내가 정말 부러워한 것은 시상식 그 자체다. 유재석이라는 거장이 그 해의 신인상을 발표하고 축하해 주는 전통이, 상을 받은 이들이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할 정도로 감격하는 모습이, 설령 본인이 상을 받지 못하더라도 함께한 동료를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모습이 부럽다. 시상식이라는 행사를 통해 자신의 한 해를, 그리고 함께한 사람들과의 기억을 돌아볼 수 있는 것이 부럽다. 유튜브나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되는 시상식의 뒤풀이 장소에서 밤늦게까지 회식을 하며 올 한 해 수고했다고, 내년에도 힘내보자고 서로 격려하고 파이팅을 외치는 모습이 부러운 것이다.
이 부러움의 역사는 꽤나 오래되었다. 오죽했으면 막 군대를 제대했을 무렵에는 당시 열심히 하던 페이스북을 통해 나 혼자만의 내 멋대로 연말 시상식을 한 적도 있었다. 시상식이라고 해 봐야 페이스북에 '내가 봤던 올해 최고의 무대' - 무한도전에 나왔던 정형돈의 '영계백숙'을 선정했던 것 같다. - 를 뽑는 식이었다. 내 주위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상도 있었는데, PC 카톡이 활성화되지 않았던 시기에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데도 PC 카톡을 이용해 카톡을 했던 친구에게 '올해의 스마트인 상'을 주었던 기억이 난다. 이로 인해 그 친구는 (어떤 상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든) 2년 연속으로 상을 받게 되었고, 감동의 수상소감을 보내주어 내 페이스북에 게시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렇게 혼자 하는 시상식은 권위가 실릴 수 없었고 나 스스로도 뚝심 있게 밀고 나가질 못했던 터라 이 내 멋대로 시상식은 이렇게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그런데 만약, 이렇게 개인이 하는 시상식이 아니라 회사에서 시상식을 한다면 어떨까.
'시상식'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아니지만 우리 회사에는 이미 한 해 동안 의미 있는 성과를 낸 사람들과 조직에게 상을 주는 이벤트가 있기는 하다. 시장에 큰 임팩트를 일으켰다거나, 고객의 불편을 해결해 주었다거나, 미래를 위해 큰 한걸음을 내디딘 사람들에게 상을 주는 행사인데, 물론 대단하고 축하할만한 일이긴 하지만 이것을 시상식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다. 방송연예대상을 예로 들자면 '올해의 프로그램상'만 발표하고 끝나는 느낌이랄까. 이런 상도 좋지만 올해 입사한 신입사원 중 가장 뛰어난 성과를 거둔 이에게 주는 - 그런데 마치 유재석처럼 전설적인 업적을 남긴 회사 선배가 시상해 주는 - 신인상, 올해의 인기 팀장 · 임원상, 우수 사원 · 리더 · 임원상, 올해의 팀워크상, 올해의 대상 같은 것이 있다면, 그래서 수상자들이 감격에 겨워 수상소감을 말하고 - 제가 신인상을 받을 수 있도록 열심히 도와주신 팀장님과 팀 선배님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같은... - 주위에서 진심으로 축하와 격려를 보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을 통해 자기와 팀의 1년을 돌아보고 내년을 기약해 볼 수 있는 그런 행사, 그런 시상식.
하고 싶다, 했으면 좋겠다고 말은 하지만 쉽지 않으리라는 것은 너무나 잘 안다. 수상자를 선정하는 것부터 온갖 잡음이 들려올 테고, 요즘 분위기라면 상을 타도 뒤풀이나 회식은 꿈도 못 꾸겠지. 그러니 회사 단위나 팀보다 상위 레벨에서 주관하는 시상식 같은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올해 연말에는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라도 모여 우리만의 시상식을, 우리만의 뒤풀이를 했으면 좋겠다. 중요한 것은 상을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응원을 주고 받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