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는 끝난 것처럼 보였다. 인터넷의 시대가 오면서 이미지가 넘쳐났다. 유튜브가 등장하면서 동영상이 자리를 굳혔다. 최근에 '숏폼 콘텐츠'까지. "Video killed radio star"라는 노랫 가사처럼 "Video killed text"는 되돌릴 수 없는 현상이었다.
물론 이런 생각도 해봤다. "모든 콘텐츠의 기본은 텍스트다. 사람들이 스토리를 좋아하는 이상 텍스트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그런데 요즘 이상한 낌새를 챘다. 원소스 멀티유즈(one source multi use) 전략에 따라 만들어지는 웹툰이나 드라마들이 유난히 많아졌다. 게다가 원작이 따로 있었다.
드라마로도 방영되었던 '재벌집 막내아들'은 웹소설이 원작이었다. 소설의 인기를 바탕으로 웹툰이 나왔고 연달아 드라마화 되었던 것이다. 웹소설 IP에 기반을 둔 웹툰도 많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전지적 독자 시점'이라는 웹툰도 동명의 웹소설을 바탕으로 한다.
최근 아는 형을 만났다. 그의 여동생은 네이버에서 상당히 이름난 웹툰 작가다. 초창기에는 본인의 시나리오를 가지고 그림을 그렸는데, 요즘은 자기 시나리오를 쓰지 않는다고 한다. 검증된 웹소설을 바탕으로 그림만 그릴 뿐이다. 흥행이 확실하니까 수익을 나눠가져도 괜찮다고 한다. 이제는 소설을 기반으로 한 웹툰을 그리는 게 대세라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텍스트의 미래를 걱정했던 날들이 떠올랐다. 텍스트는 죽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미디어에 끊임없이 영감을 불어넣고 있었다.
나 자신을 엄밀히 분석하면 영상보다는 텍스트 작성에 더 능하다. 그런 내가 '영상이 대세'라는 트렌드에 발맞추려고 그간 영상 콘텐츠에 기웃거렸다. 이제 내가 잘 하던 분야로 다시 돌아가도 되는 걸까? 예전처럼 글에 다시 집중해보고 싶은 마음이 출렁거린다.(20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