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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y Lee Apr 26. 2017

성소수자 인권의 짧은 정명론

문재인 후보의 '동성애 반대' 선언 및 그것의 옹호에 대한 비판

*이 글은 분노에 휩싸인 상태에서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작성된 것이므로 두서가 실종됐을 수 있습니다.



    다른 것은 뒤로 하자. 지금 나를 무력하게 하는 것은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문재인 후보의 숙고 정도가 홍준표 후보의 그것과 유사하거나 더 심각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홍준표 후보는 적어도 인권의 반대자로서 열심히 고민해왔을지도 모르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러한 비교가 각 후보의 극성 지지자들의 논리에 대해서도 적용가능하다는 점은 매우 유감이다.


"군내 동성애 반대"


    홍준표 후보는 '군내 동성애' 문제가 심각한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고, 문재인 후보는 그에 동의했다. 그리고 많은 문 지지자들이 이 대화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러한 의식은 '동성애'를 '동성 간 성관계'의 대체물로 환원시킨다. 왜냐하면 위의 논의는 필시 군형법 제92조의 6항과 관련한 최근 군의 비합법적이고 반인권적인 조치를 염두에 둔 것이기 때문이다. 본 항의 불합리성은 논외로 하더라도 위 같은 문제의식을 '군내 동성애 반대'라는 기표로 표현한다는 것은 언어 감각이 특출나게 결여되어 있거나, '사랑은 곧 섹스'라는 확고한 신념이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동성애 반대"


    위의 문답 후 홍준표 후보는 '동성애'에 반대하느냐고 고쳐 물었고, 문 후보는 반대하지만 차별은 안 된다고 했다. 개인적으로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심상정 후보는 동성애가 민주주의 하에서의 찬/반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기본적 인권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그리고 한참 후에 문 후보는 '동성혼'에 반대하지만 차별에도 반대한다고 말을 바꿨다. 여기서 생각해볼 것은 첫째, '동성애 반대'를 단지 말실수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 둘째, '동성혼'이 반대되는 것은 차별이 아닌지 하는 것이다.


    우선 문 후보가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말한 것은 사실이다. 한편 그는 대선이 본격화되기 전에 기독교계와 관련된 인터뷰에서 "동성애를 지지하지는 않지만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 바 있다. 우리는 어제의 발언과 몇 달 전 이 발언 간의 유사성 및 일관성을 찾을 수 있다. 심지어 토론에서 '동성혼 반대'로의 말바꾸기는 단지 전략에 불과했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앞서의 '동성애 반대'에 대한 표현이 말실수였음을 언급하지도 않았고, 사과를 구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즉 그는 동성애를 찬/반 혹은 지지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으로 본다. 그런데 문 후보가 말하는 바와 달리 이러한 의식 혹은 발화는 이미 동성애자들에 대한 차별을 '실천'한다. 도대체 한 봉사자의 피부색을 연탄과 비교한 김무성 전 대표를 비판했던 자들은 모두 어디로 갔단 말인가?


    한편 동성혼에 대한 가치판단은 이 짧은 글에서 모두 다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생각해볼 것은 결혼과 관련하여 이루어지는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간의 불균형의 타당성 여부이다. 이 불균형을 수용하는 입장의 핵에는 '생식가능성'의 논리가 자리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생식이 결혼생활의 단지 일부이고, 심지어는 양자 간의 여집합도 존재한다는 점을 알고 있다. 즉 더 이상 결혼은 생식의 필요조건이 아니다. 그렇다면 사회적인 의미에서 '결혼'이라는 제도적 장치가 '필수적으로' 포함하는 의미는 서로 사랑한다고 인정한 몇 사람을 하나의 집합으로 묶어내는 데에 머문다. 그런데 이러한 의미 하에서 동성애와 이성애 사이에서는 어떤 근본적 차이도 발견되지 않는다(결혼 제도를 국가가 성문화하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의견은 여기서는 논외로 하지만 이 또한 중요한 지적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동성혼을 반대한다는 의견은 이성애와 동성애 간의 차별을 전제한다. 물론 심상정 후보나 이재명 시장, 안희정 지사 등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동성혼이 법제화되는 데에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동성애 합법화"


    끝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세간에 "동성애 합법화"라는 근거 없는 단어가 돌아다닌다는 점이다. 나는 이 단어를 접할 때마다 당혹감을 감출 수 없다. '합법화'란 '법령이나 규정에 적합하도록 만든다[바꾼다]'는 의미를 갖는다. 아마도 여기에 생략된 것은 '법령이나 규정에 적합하지 않은 것을'이라는 목적어일 것이다. 즉 합법화의 대상은 현재 법령이나 규정에 적합하지 않은 것, 즉 불법인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법은 동성애를 포함한 어떠한 성적지향도 불법인 것으로 간주하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헌법은 국가가 개인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보장할 의무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오히려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아직까지 마련되지 않았다는 상황 자체가 반헌법적인 것이다.


    누군가는 왜 문재인에 초점을 맞추느냐고 비판할지도 모르겠다. 이는 일견 타당하다. 현 대선구도(다섯 후보에 한정하자면)에서 포괄적인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은 심상정 후보뿐이다. 심지어 네 후보 캠프 관련자들은 얼마 전 기독교 단체 연설에서 동성혼 및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반대를 천명했다고 한다. 이들에게 성소수자의 인권은 단지 전략적 수단의 하나인 것이다. 이러한 모든 정치적 행태와 대중의 지지 혹은 무관심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다만 문 후보에게 지나친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그의 위선적인 전략에 있다. 어째서 그는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지만 차별에는 반대한다"와 같은 궤변을 내뱉으며 인권에서조차 소위 '전략적 모호성'을 취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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