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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y Lee Jul 24. 2018

인간적 불행

노회찬 의원의 죽음에 부쳐

    2018년 7월의 셋째 주 어느 날, 다소 믿기 힘든 뉴스가 올라왔다. 진보정당의 한 의원이 드루킹 특검의 조사 대상이었던 한 변호사로부터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정황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이 소식에 대해 얼마간 불신감을 느낀 데에는 한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해당 정치인의 완전무결함에 대한 평소의 믿음이었다. 그러한 점에서 나는 그 정치인이 '도덕적' 의미에서든, 단지 법적인 의미에서든 완전무결하기를 바라온 것으로 보인다. 믿음은 대부분의 경우 특정 또는 여러 바람에서 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은 정치인에게는 특히나 그렇지만, 일상의 다른 인간들이나 심지어는 자기 자신에게도 이러한 종류의 바람을 가진다. 이러한 바람은 때때로 인간을 어떤 방향으로든 진일보시켜왔다. 그리고 오늘은 어떤 한 인간을 아파트 난간 너머로 밀쳐냈다.


    인간이 인간 자신에게 바라는 이 완전무결함은 어쩌면 종교적인 것의 원천인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몇몇 종교에 대하여, 인간 일반이 추구하는 인간상을 단지 인간 종이 아닌 다른 것―그것이 인간의 내면 어떤 것이든, 혹은 인간 바깥의 어떤 것이든―에 투영하거나 혹은 그러한 데에서 찾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바람의 전이는 그것의 본래 형태가 단지 잠정적으로라도, 이루어질 수 없는 것으로서 판명되어 왔음을 보여준다. 즉 비인간의 무류성에 대한 믿음은 인간의 불완전성에 대한 증거이다. 불행한 점은 이것이 완전성을 상정하지 않는 불완전성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인간 불완전성에 마주한 인간 개인은 깊은 공허에 잠길 수밖에 없다. 그의 운명에 쥐어진 껍데기뿐인 도덕성은 인간으로 하여금 그 자신의 삶이 부식되기까지 전력 질주하도록 내몬다.


    나는 지금 이 시점에 와서야 후회하는 나 자신에 대해조차도 책망하거나 훈계할 수 없다. 단지 인간 본성의 공허함을 한탄하고 어떠한 변화를 고대할 뿐이다. 그 사실이 너무나도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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