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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ita Nov 09. 2019

일명, 자기 계발 강박증

#1. 나는 무엇을 위해 애쓰며 살아왔을까

일이 아닌 힐링을 주는 다른 취미가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일을 하면서 소모된 에너지를 보충하고, 스트레스를 풀며 새로운 힘을 얻기도 하니

지금도 여전히 취미가 없는 것보단 있는 편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을, 원하는 때에, 원하는 만큼만 할 수 있는 선에서 말이다.




자기 계발 강박증, 이런 것이 실제로 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스스로 진단을 내렸다.

나는 자기 계발 강박증에 틀림없다고.


이러한 확진을 하게 된 계기는 멀쩡히 다니던 회사를 보란 듯이 때려치우면서부터였다.

말 그대로, 보란 듯이 퇴사를 해야 했기에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열심히 계획했다.

퇴사 후의 삶에 대해서.


그렇게 당당히 이곳은 틀렸다며 퇴사를 했는데, 

왜 내심 여전히 잘 버티는 동기들을 보면 은근스레 부럽고 내가 지는 것만 같은지.

그래서 나는 또 그 세계를 끝없이 비판했고, 내가 선택한 세계가 훨씬 자유롭고 아름답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 졌다.


아니, 증명해내야만 했다.

지금이 더 좋다고, 행복하다고.

그들이 모두 나의 선택이 틀리지 않음을 인정해주기를 바랬다.


퇴사를 하고 바로 세계여행을 떠났다.

가장 좋아하는 취미생활이자, 그때 당시 지긋지긋한 한국을 무척이나 떠나고 싶기도 했다.

죽기 전 해보고 싶었던 버킷리스트를 잔뜩 적어서 하나하나 성공해나가며

내 안에 새로운 경험과 에너지를 쌓기 시작했다.

무척이나 열심히.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 

더 많이 걷고, 보고, 느끼고 남기기 위해 

매일 같이 애를 썼다.


이 여행에 들인 돈, 시간, 기다리는 사람들의 기대,

그 모든 것들은 1년의 여행기간 내내 나를 따라다녔다.

아무리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을 떠난다 해도, 

매일 여행자금을 체크하고, 남아있는 통장잔고를 확인하며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날을 세는 건 모든 여행자의 숙명이다.


시원섭섭한 마음을 남기며 1년간 오랜 여행을 하고 돌아오니, 

애써 쌓아 온 감정들과 추억, 경험은 모두 추억상자가 되어버렸다.


여행지에서는 더없이 반짝반짝 빛나던 행복하고 충만했던 모든 것들이 

내가 다시 살아 버텨내야 할 한국이라는 땅에 발을 딛는 순간,

반짝이는 것들 위로 현실이 허무하게 덮혀졌다.



'그럼 이제 뭐하지?'





집에서 쉬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면 그저 가만히 둘 수 없었다.

뭐라도 해야지, 그래야 나를 보여줄 것들이 생기고, 그다음이 생길 테니까.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해보고 싶은 것들은 모조리 다 하기 시작했다.


처음 해보는 운동을 시작해 다이어트와 몸을 만들기 시작했다.

한 달에 몇 번씩 서점을 들러 의무적으로 책을 사고 읽었다.


일을 시작하게 되어서도 자기 계발은 놓지 않았다.

도태되면 안 되니까, 남들과 달라야만 하니까.


요가를 배우고, 쉬는 날에는 목공방을 다니며 가구를 만들었다.

한 달에 한 번씩 꽃시장에 들러 실내식물을 사다 키우고,

주말에는 테니스를 배우기 시작했다.


다양한 취미와 자기 계발 중 오랫동안 지속된 것도 있고, 

한두 달 만에 금방 끝나버린 것들도 있었다.

적금을 들 새도 없이 모든 취미활동에 자금을 갖다 바친 셈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좋았다.


새로운 취미활동을 하는 동안의 내가 좋았고,

그 안에서 얻는 힐링, 더 정확히 말하면 나 자신에게 느끼는 자기만족이 좋았다.


남들과 다른 특별한 능력이 많아지는 것 같아 뿌듯했고,

나를 바라보는 남들 또한 재능 있는 나를 부러워했다.




자기만족을 위해 자기 계발을 한다니, 이 얼마나 생산적이고 바람직한 일일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내 자기 계발은 점점 비생산적으로 변해갔다.

자기 계발의 목적이 자기만족이 아닌 의무감에 쌓인 보여주기 식이 되어버렸다.


잠시 쉬고 싶은데,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데,


주변에서 '요즘은 뭐해?'라는 얘기가 나오면 

애써 무언가를 시작해야만 할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아무도 레이스에 뛰어들지 않았는데

나 혼자 보이지 않는 것들과 계속해서 경쟁을 하고 있었다.


그 레이스는 나를 더 쉬지 못하게, 쉬는 날까지도 무언가를 계속하도록 만들었다.

가만히 있는 나는 마치 죽어가는 것 같았으니까.


지금보다 더 나아지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하고 있어야만 할 것 같은데

일만 하고 살다가는 그냥 이렇게 죽는 건 아닐까 싶어 졌다.

주변에서는 계속해서 새로운 성공사례가 쏟아져 나오고,

처음 보는 새로운 인물들이 화제가 되며, 

어제는 없던 새로운 일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되는 거 아닐까?"



건강한 취미생활, 자기 계발은 내가 원할 때, 원하는 걸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이 내가 원하는 때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가 힘들어졌다.




우연히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쉬고 있는 아는 동생과 만난 자리였다.

'넌 이제 뭐할 거야?'

'앞으로 계획은 세웠어?'

'새로 하고 싶은 거 있어?'


그러자 동생은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없는데요.'


동생보다 내가 더 불안에 떨며 질문을 퍼붓다 아무 말 없이 멈췄다.

내가 한 질문들에 '없다'라는 대답은 조금도 예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 질문에 그 대답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그리고 문득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래 맞아. 없어도 되지."

그 말이 오간 후 왠지 모르게 마음이 가벼워졌다.


마치 내가 듣고 싶던 말을 누군가 나에게 해준 것 같았다.

'왜 그렇게 애쓰며 살아야 하는데요?

당장 애쓰지 않는다고 지구가 멸망이라도 하나요?!'


어쩌면 게으른 대답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애쓰지 않는다는 건, 평생을 놀고먹으며 무계획으로 살겠다는 게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내가 즐길 수 있는 만큼 

노력하고, 계획하고, 준비하고 사는 게 진짜 애쓰지 않는 삶이다.


그렇게 애쓰는 마음을 내려놓다 보면

실망도, 불안도, 걱정도 지금보다는 훨씬 더 가벼워지지 않을까.

분명, 애쓰며 살 때보다 애쓰지 않는 지금이 훨씬 더 행복할 수 있겠다.




애쓰지 마.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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