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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 폴라리스 Apr 17. 2017

꼬 따오로 떠난 다이빙 여행

월간 <폴라리스> Vol. 173 '꼬마 여행자를 위하여'

글·사진 전혜원  에디터 한순호 








남편과 내가 결혼할 무렵 약속한 것이 하나 있다. 
‘마흔에 세계 여행’. 

일곱 살 큰아이는 어린이집의 맏언니가 됐다. 네 살 둘째 녀석은 대소변을 가릴 수 있게 됐고, 제법 의사소통이 된다. 남편은 샐러리맨으로서는 드물게 육아휴직을 했다. 우리는 마흔을 목전에 두고, 아이의 취학 전에 평소 가보고 싶었던 나라 몇 곳을 가보기로 했다. 꿈처럼 이야기하던 세계 여행은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함께’니까. 아직 아이들이 어리니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그렇지만 미래를 담보로 현재를 선택한 만큼 최선을 다해 즐겨 보기로 했다.




‘해변의 찌질이’라도 좋아
청춘의 기억


헤아려보니 무려 8년 전이다. 여름휴가로 찾았던 태국의 꼬 사무이(koh Samui)가 기대와 달라 도망치듯 야간 페리를 타고 떠난 것이. 도착한 곳은 ‘꼬 따오(Koh Tao)’라는 작은 섬이었다. 
태국 동남부에 있는 꼬 따오는 꼬 사무이에서 1시간 30분, 방콕에서는 14시간 거리에 있는 외딴 섬이다. 꼬 사무이에서 스피드 보트로 닿을 수 있으며 투명한 바닷물과 고운 백사장이 유명하다. 비행기가 닿을 수 없는 곳이라 오가는 길이 험하지만, 불편한 만큼 아름다운 자연을 볼 수 있다. 꼬 따오는 수중 생태계가 잘 보존돼 있고 섬 가까운 곳에 다이빙 포인트가 많아 ‘세계 다이버들의 성지’라고도 불린다. 스쿠버다이빙은커녕 스노클링도 제대로 못 하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해변을 거닐거나 카페에 앉아 다이빙 보트가 들고 나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다이빙 스쿨에 ‘체험 다이빙’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수영장에서 간단한 교육을 받은 뒤 공기통을 메고 강사와 함께 깊이 5m 정도의 연안 바다에 들어가는 코스였다. 첫 다이빙에서 나는 한 시간가량 압축 공기를 맛봤고, 바다가 아닌 우주를 봤다. 언젠가 꼭 제대로 스쿠버다이빙 교육을 받으리라는 다짐도 했다. 그러나 얼마 후 아이가 태어났고, 각오는 점점 희미해졌다.







두 아이의 엄마, 아빠 
다이버를 꿈꾸다


다시 ‘꼬 따오’를 떠올린 건 방콕행 저가항공 티켓을 끊고 나서다. 4인 가족에 왕복 80만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혹해 결제를 하고 나니 방콕에만 머물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에 태국은  우기이지만 동남쪽 지방은 날씨가 좋다는 점도 마음을 끌었다. ‘다이빙 자격증도 따고 아이들과 스노클링도 하면 어떨까?’ 마음은 이미 꼬 따오로 향해 있었다.
걱정되는 점은 하나, 스쿠버다이빙 교육을 받는 동안 아이들을 돌볼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섬은 두 아이에게도 이로운 환경일 것이 분명했다. 숙소 앞이 바로 해변이고, 산호와 물고기가 있는 천연 풀장이니까. 작은 섬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가족적인 분위기도 좋을 것 같았다. 태국은 몇 번 가봐서 음식과 언어가 익숙하다는 장점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고민에 대한 답은 찾기 어려웠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이빙 스쿨에 문의를 하니, 놀랍게도 8년 전 체험다이빙으로 인연이 된 강사가 반겼다. 한인 강사팀 대표가 된 그녀는 현지 베이비시터를 알아봐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짬짬이 강사들도 함께 돕겠다며 말이다. 더불어 스쿠버다이빙은 두 명씩 짝지어 즐기는 스포츠라 부부가 함께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조언도 해줬다. 내심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이렇게 우리는 다시 함께 다이버를 꿈꾸게 됐다.






세계 다이버들의 성지
꼬 따오로


순정만화의 전설, 신일숙 작가의 <아르미안의 네 딸들>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삶은 언제나 예측 불허, 그리하여 생은 그 의미를 갖는다.’ 충동 구매한 방콕 항공권 덕에 스페인 여행에서 돌아온 지 한 달 만에 다시 태국으로 버킷 리스트 여행을 떠났다. 23박 24일을 머물기로 했지만, 딱히 정해둔 일정은 없었다. 그러나 목표는 확실했다. ‘다이버’가 되겠다는 것. 방콕에서 아이들과 며칠간 적응기를 보낸 뒤 기차와 버스, 배, 툭툭 등 태국의 갖은 교통수단을 경험하며 섬으로 이동했다.
꼬 따오로 가는 길은 세월이 흘러도 멀고 험했다. 침대칸이 있는 야간기차를 예약했지만, 10시간을 덜컹거리니 허리가 아팠다. 나이를 실감했다. 다행히 아이들은 한 번도 깨지 않고 잘 자주었다. 밤기차를 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 나는 오랜만에 배낭여행의 낭만을 이야기하며 추억에 잠겼다.



6일의 기록
어드밴스드 다이버가 되기까지


14시간의 이동 끝에 도착한 8년 만의 꼬 따오.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숨 돌릴 틈도 없이 스쿠버다이빙 이론 강습이 시작됐다. 교육은 강의실에서 진행됐는데, 밤새 기차에서 잠을 설친 후라 앉아 있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영상물 속 바다 풍경과 강사의 모습이 겹쳐 보이며 꿈처럼 아득해졌다. 내가 사경을 헤매는 동안 아이들은 옆에서 만화영화를 원 없이 본 후 유모차에서 잠이 들었다. 
다음 날부터는 실기 교육이 이어졌다. 우리는 입문 과정인 ‘오픈워터(Open Water)’와 심화 과정인 ‘어드밴스드 다이빙(Advanced Diving)’ 자격증 과정을 함께 신청했기에 총 엿새의 물속 일정이 필요했다. 수영장이든 바다든 물속에 있다는 건 아이들을 돌볼 수 없다는 뜻이다. 생이별이 따로 없었다. 그래도 몇 해 먼저 태어났다고 큰 녀석이 동생을 달래가며 물질하러 떠나는 부모를 배웅했다.
체험 다이빙이 연습이라면, 자격증 과정은 실전이었다. 물속에서 심장이 터질 듯 숨이 차오르던 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다이빙을 배우며 나는 아무리 코로 물을 들이켜도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기압 변화에 예민한 남편은 연신 코피를 쏟아 보는 이들을 걱정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포기할 수 없었다. 
커다란 다이빙 보트를 타고 꼬 따오 섬 주변의 다양한 다이빙 포인트를 돌며 모든 것이 조금씩 익숙해질 무렵, 그때부터 바닷속 경치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 바닥에 무릎을 디디고 말미잘 사이로 오가는 니모를 봤을 때의 기쁨, 난파선 속에서 내 몸만 한 참치를 봤을 때의 감동, 8년 만에 재회한 강사와 함께 야간 다이빙을 하며 별보다 더 아름답게 반짝이는 플랑크톤을 봤을 때의 그 환상적인 순간! 이 모든 것이 다이빙을 배우지 않았다면 평생 상상 못할 아름다운 경험이었다.








다이버가 되는 시간
아이들은 어떻게 지냈을까

강사가 추천해준 현지 베이비시터는 놀랍게도 독일인이었다. 다이빙 강사인 남자 친구를 따라 이 섬에서 장기 체류 중이라는 그녀는 독일뿐 아니라 태국에서도 다국적 아이들을 돌본 경험이 있다고 했다. 알고 보니 섬에서는 다이버끼리 서로 아이들을 봐주는 경우가 흔했다. 비용도 합리적이었다.
문제는 ‘아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냐’였다.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외국인에게 아이를 맡기면 나쁜 엄마가 될 것 같은 자괴감도 들었다. 그래도 일단 그녀와 한국인 강사들을 믿어보기로 했다. 종이 한 장에 두 아이의 특성과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 잘 먹는 음식, 당부사항 등을 빽빽이 적어 베이비시터에게 건넸다. 다행히 아이들은 외국인 언니와 강사들을 잘 따랐다.
말이 통하지 않는 그들은 술래잡기, 미용실 놀이, 모래 놀이, 그림자 놀이, 종이접기 등을 하며 몸으로 놀았다. 때로는 서로의 언어로 필담을 나눴다. 큰아이는 ‘수박, 손, 펭귄’ 등의 단어가 독일어와 한글로 나란히 쓰인 종이를 내게 보여주기도 했다. 점심이나 간식은 내가 미리 챙겨놓거나 아이들이 좋아하는 메뉴를 알려주니 괜찮았다. 가끔 둘째가 엄마 보고 싶다며 울었지만, 그럴 때는 함께 해변으로 나가 바다를 보며 놀았다고 한다.
남편과 내가 스쿠버다이빙 교육을 받는 동안, 아이들은 하루 다섯 시간씩 베이비시터와 함께했다. 야간 다이빙 등으로 귀가 시간이 늦어지면 마스터 과정을 밟고 있는 한국인 교육생이나 시간이 비는 강사 중 한 명이 바통을 이어받아 교육이 끝날 때까지 아이들을 돌봤다. 우리가 물에 들어가면 전화를 사용할 수 없기에, 다이빙 보트에 오르는 순간부터는 항상 섬에 있는 강사들이 아이들을 챙겼다. 그 고마움을 어찌 다 표현할 수 있을까. 평생 잊을 수 없는 인연들이다.


가장 편안하고 따뜻했던
섬에서의 일상


다이빙 수업이 없을 때, 우리의 일상은 한없이 느긋했다. 아침에는 해변 레스토랑에 앉아 식사를 하고, 오후에는 싸이리 비치에서 모래 놀이를 하거나 긴 꼬리 배를 타고 꼬 낭유안이라는 또 다른 섬에서 물놀이를 했다. 해변의 상점가를 기웃거리기도 했고, 아이들은 그곳에서 산 어린이용 스노클로 첫 스노클링을 시작했다. 
매일 가는 단골 식당도 생겼다. 이름난 맛집은 아니고 그저 다이빙 스쿨 옆에 있는 허름한 식당이었지만, 새우튀김과 태국식 오믈렛, 똠얌꿍 등 시키는 음식마다 기대 이상의 맛을 내던 곳이었다. 매시간 빛을 바꾸는 푸른 바다, 하늘과 바다를 따뜻하게 물들이는 노을, 살랑거리는 바닷바람이 있는 해변 식당에서는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시간은 여유롭고, 아이들은 마음껏 뒹굴었다. 꼬 따오에서 가족과 온전히 함께 보낸 며칠은 여행 중 가장 평화롭고 따뜻했던, 가능하면 오랫동안 붙들고 싶었던 시간이었다.







인생은 즐거워라
남은 버킷 리스트


휴직을 하고, 벌이가 없는 상태에서 온 가족이 함께 여행한다는 건 예상보다 큰 기회비용을 필요로 한다. 주변의 걱정과 만류도 많았다. 그럼에도 우리는 돈으로는 살 수 없는 시간과 경험을 함께할 수 있었다. 가슴에만 품고 살던 버킷 리스트를 하나씩 지웠다. 그리고 그 힘으로 앞으로를 더욱 단단하게 살 수 있게 됐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남편은 이야기했다. 다음은 ‘서핑(Surfing)’에 도전해보겠다고. 며칠 후 남편은 문화센터 수영 기초반에 등록했다. 또 며칠 후 남편은 보트 조종 학원에 등록해 2급과 1급 조종 자격증을 차례로 땄다. 
여행 후 만난 양가 가족들은 우리가 섬으로 내려가 낚싯배를 타며 전복을 딸 건지 궁금해했다. 이제 갓 초보 다이버, 초보 조종사가 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으랴. 그럼에도 인생의 즐거움이, 함께하는 행복함이 이런 건가 싶다.






전혜원  

뜻밖의 멋진 풍경, 알 수 없는 만남과 헤어짐, 다양한 사람들의 천차만별 삶의 방식, 해변의 석양과 맥주 한 병을 사랑하는 엄마 여행가다. 10년간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일을 했고, 그중 18개월은 주말엄마로 살았다. 2010년 퇴직 후 틈틈이 두 아이와 여행하며 블로그 ‘그린데이 온 더 로드’에 국내외 가족 여행기를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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