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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 폴라리스 May 17. 2017

생각하는 힘이 아이의 미래를 바꾼다

월간 <폴라리스>  Vol.179'아이와 꿈'

                                                                                                                           

사회가 치열해질수록 부모들의 수심도 깊어진다. 아이를 어떤 사람으로 키워야 하는 건지 혼란스럽기도 하다. 황경식 서울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를 만나 미래를 위한 튼튼한 뿌리가 되어줄, 철학의 힘에 대해 들어봤다.

글 박재윤 에디터 박은아 포토그래퍼 강봉형



많은 부모들이 아이의 미래를 걱정합니다. 한 인간이 살아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뭐라고 생각하
시나요?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입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할 때 행복도 따라오죠. 따라서 어려서부터 부모가 자녀에게 인생의 주도권을 내어주지 않으면 그 아이는 불행해집니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자기 삶의 주인으로 자란 아이는 타인의 인격도 존중할 줄 압니다. 나에 대한 존중이 바로 타인에 대한 존중이기 때문이지요. 서울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과 선택에 대한 만족도 조사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60% 이상이 불만이라고 답을 했어요.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최고의 명문대라 불리는 서울대를 다니고 있는데, 도대체 이유가 무엇일까요? 학과를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선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성적에 맞춰, 무조건 서울대니까, 부모의 소원 성취를 위해서…. 주체가 내가 아닌 거죠. 이렇게 원치 않는 공부를 시작한 아이들은 학업성취도도 낮을 수밖에 없고, 졸업한 후에도 본인의 적성이나 재능과 관련 없는 일을 하며 평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당연히 불만족스럽겠죠. 남이 시키는 대로, 운명이 이끄는 대로 머슴의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만들어낸 결과가 집단 우울증입니다. OECD 국가 중 우리나라 성인과 아이들의 행복지수는 늘 최하위권을 맴돕니다. 비극이지요.

인생의 주도권을 갖기 위한 방법이 유아 철학이라고 보시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유아기의 철학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풍요로운 정서적 밑거름이 돼줍니다. 여기서 말하는 철학이란, 위대한 철학자들의 사상 체계를 배우거나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는 훈련을 뜻해요. 어떤 지식을 무작정 배우고 익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다양하게 사고하는 것. 그게 바로 ‘어린이 철학’의 근간입니다. 요즘은 지식과 정보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어린 시절부터 배우고 익혀야 할 양은 많아지는 반면,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은 줄어든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 생각하는 연습을 하는 아이로 키워야 합니다. 철학이라고 하면 아이들이 접하기에는 어려운 학문이라는 인식을 가진 분들이 많습니다. 앞서 말했듯 어린이 철학은 학문으로서의 철학이 아니라, 철학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을 키우는 노력에서부터 출발합니다. 과거 선조들은 이미 유아기 때부터 철학을 배웠어요. 서당이 이를 가르치는 곳이었죠. 글눈을 틔우는 <천자문>도 어학 교과서이기 전에 <계몽편> <동몽선습> <소학> <대학>과 같은 윤리서이자 철학서예요. 이 시기에 익힌 철학적 사고의 틀이 평생 인간, 자연, 사회를 보는 시각을 규정했을 겁니다. ‘세 살 철학 여든 간다’의 인생을 살았다고 할까요? 지금 아이들에게 서당 공부를 시키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만큼 어린 시절부터 철학적 사고를 배우는일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서유럽과 북미에서는 철학 조기교육에 일찌감치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특히 영국과 미국 등지에서 거론된 철학 조기교육은 이미 1970년대부터 철학자, 교육학자, 심리학자들을 중심으로 논의가 시작됐고, 초등학교 교육에 접목 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어른들의 생각과는 달리 아이들은 오히려 철학적인 사고를 더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입니다. 어른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기상천외한 생각들과 세상을 향한 쉼 없는 질문. 그것이 철학자의 사고와 같죠. 그러나 그런 아이들이 교육의 테두리에 갇히는 순간, 영롱하던 철학적 사고들은 점점 무뎌집니다. 유아기가 철학적 사고 확장의 적기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어른들의 생각과는 달리 아이들은 오히려 철학적인 사고를 더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입니다. 어른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기상천외한 생각들과 세상을 향한 쉼 없는 질문. 그것이 철학자의 사고와 같죠.


구체적으로 아이들의 어떤 면이 철학적 사고를 보여주는 것인지요.
아이들이 어려운 질문을 하면 요즘 부모들은 자연스레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합니다. 타인이 만들어놓은 지식에서 정답을 찾는 것이죠. 하지만 아이들은 누군가가 정해놓은 답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해 답을 찾아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어른의 눈높이에서는 오답으로 보일 수 있지만, 꽤나 기발한 이유들로 그럴싸한 결론을 만들어내죠.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세상 모든 것이 호기심의 대상입니다. 실용적인 사고에 젖어 있는 어른들에 반해 아이들은 세상, 우주, 자연에 대한 무한한 관심과 호기심을 갖고 있어요. 요즘처럼 다양한 지적 호기심을 자극 받는 아이들은 더 많은 상상력으로 다채로운 생각을 할 겁니다. 아이들의 이러한 창조성과 호기심은 철학자의 그것과 같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거침없이 철학적 사고를 하는 시기가 바로 유아기인 이유죠.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철학적 사고에 열중합니다.

그렇다면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부모는 아이의 철학적 사고를 위해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philosophy by children, philosophy for children(아이에 의한 철학, 아이를 위한 철학)’ 이것이 어린이 철학의 기본입니다. 여기에 어른의 기준이나 생각이 끼어들어서는 안 됩니다. 어른의 사고가 끼어드는 순간, 아이들은 생각을 멈춥니다. 이끌어주는 것이 아니라 도와주는 것. 이 말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이의 철학적 사고를 이끌어주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일까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 대화입니다. 아이의 사고력은 대개 4~5세 무렵에 크게 발달합니다. 이는 뇌의 발달 단계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사고력, 판단력과 관련된 뇌 발달이 잘 이뤄지려면 무엇보다 부모와의 교감, 그중에서도 대화가 매우 중요합니다. 주입식 교육이나 일방적인 말이 아니라 자유롭게 아이가 의견을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세요. 아이는 부모가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고 느끼면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는 것을 더 즐기게 됩니다. 철학 교육이라고 하면 어렵게만 여기는데 아이들은 부모와의 대화를 통해 충분히 철학적 사고를 키울 수 있어요. 특히 아이들은 수없이 많은 질문을 합니다. 그럴 때 바로 정답을 알려주려고 하기보다는 아이들의 질문을 되물어주는 게 중요합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왜 그렇게 생각했어?”와 같은 질문은 아이들이 또 다른 생각, 사고의 확장을 하도록 이끌어줍니다. 정답을 알려줘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을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부모도 편안한 마음으로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어요.

그 외에 가정에서 할 수 있는 철학 교육의 방법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아이들과 만화나 연극, 그림책 등을 보다 보면 주인공이 선택의 기로에 서는 순간들이 나옵니다. 그럴 때 그냥 넘어 가기보다는 아이들의 의견을 물어보세요.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도 얘기해보고, 부모와 의견이 다르다면 그에 대한 토론도 해보고요.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힘을 키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생각뿐만 아니라 생활 습관도 아이 스스로 키울 수 있도록 기회와 시간을 주세요. 사람의 주체성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세수하기나 자신이 먹은 식기 씻기, 스스로 옷 입기, 방 청소 같은 작은 행위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마지막으로 부모들에게 조언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내 아이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뒤처지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을 하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아이가 다섯 살만 되도 그런 불안감을 갖게 되죠. 그래서 학습 능력을 키우기 위해 사교육을 시키는 경우도 많은데, 정작 내 아이의 머릿속에 펼쳐지는 상상력과 가능성을 발견하고 이를 키워줄 기회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돈을 물려주는 것보다 자율적 인격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아이의 미래를 위해 더 중요한 교육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했으면 합니다.

                                                                                                                                                                                                                                                                    


황경식
서울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 후 육군사관학교 철학과 교수를 거쳐 미국 하버드대학교 철학과 객원 연구원, 동국대학교 철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한국 사회·윤리학회장과 한국환경철학 회장을 맡기도 했으며, 현재는 명경의료재단 및 꽃마을 한방병원 이사장, 천주교 석문복지재단 이사장, 로마교황청 생명의료윤리 연구 협조위원, 철학연구 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열살까지는 공부보다 아이의 생각에 집중하라> <가슴이 따뜻한 아이로 키워라> <정의론과 덕윤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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