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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 폴라리스 May 19. 2017

언어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

월간 <폴라리스> Vol. 177 '궁금해, 아이의 말'

                                                                                                                                                                          흥미롭거나 혹은 새삼스럽거나  어의 속사정


생각을 구체화하고, 타인과 대화하고, 하루의 단상을 끄적이며 우리는 언어로써 세상을 살아간다. 그런데 우리는 이토록 친밀한 언어를 과연 제대로 알고 있을까? 미처 알지 못했거나 새삼스럽게 짚어보는, 언어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

에디터 박은아 포토그래퍼 강봉형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고?


‘아재’라는 말이 유행이다. 사전적으로는 ‘아저씨’의 낮춤말이지만, 통용되는 의미를 추출해보자면 ‘꼰대’와는 구별되는, ‘친근하고 매력 있는 중년 남성’ 정도가 되겠다. 한데 이 말은 실제로 ‘꼰대’와는 특질을 달리하는 이들이 아저씨 집단에 있고, 그를 구별할 명칭이 필요해 만들어진 언어일까, 아니면 ‘꼰대’라는 단어를 슬쩍 바꿔 긍정적으로 인식하게 하려는 속임수에 불과할까. 언어가 사고를 만드는가, 사고가 언어를 만드는가는 오랜 논쟁거리 중 하나다. 일찍이 미국의 언어학자 에드워드 사피어는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는 언어 결정론을 주장했고, 이후 여러 학자들과 문필가들 역시 여기에 의견을 보탰다. 하지만 오늘날 언어 학자와 인지과학자들 사이의 전반적인 견해는, 언어와 사고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은 분명하지만 언어가 사고의 우위에 있거나 일대일로 맞아떨어지는 관계는 아니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한 사람의 생각과 감정이 언어로 나타나듯 언어 역시 한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바꿀 수 있는 유기적인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언어와 사고의 끈끈한 관계성에서 경계해야 할 것은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 언어가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는 일이다. 언어는 역사적으로 권력층이 즐겨 사용한 매우 강력하고 효과적인 지배 도구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우리말 말살정책을 편 것이 단적인 예. 조금 더 가까운 예를 찾아보자. 2000년대 초반 미국 대선 후보였던 부시 전 대통령은 자신의 감세 공약이 ‘부자감세’라는 비난을 받자 이를 ‘세금구제’로 바꿔 부르기 시작했다. ‘구제’라는 단어가 주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를 돕는 일’이라는 연상 작용 덕에 대중의 비난은 가라앉기 시작했다. 몇 년 전 불거진 초등학교 급식 문제 때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이 각각 ‘무상급식’과 ‘의무급식’으로 언어 프레임을 달리 사용한 것도 이러한 언어의 위력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는 명심할 필요가 있다. 세상의 언어를 흡수하는 과정에서 비판적 사고라는 거름망을 거치지 않는다면,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는 말은 오롯이 진실이 돼버린다는 사실을.



은어와 속어는 나쁜 말일까?


“엄마, 내 짝꿍은 ‘세젤예’야.” 아이가 어느 날 유치원에서 배워 온 신조어를 내뱉는다. 충격을 받은 엄마는 SNS에 글을 올린다. “나 지금 ‘멘붕’. 애가 ‘얼집’에서 이상한 말을 배워왔어요!” 바른 말 고운 말과 정확한 맞춤법이 오가는 공적 영역의 뒤편, 언어의 속살이 부대끼는 일상에는 온갖 은어와 속어, 줄임말, 인터넷 용어가 넘쳐난다. 한때의 언어유희로 지나가기도 하지만 아예 새로운 언어 질서로 자리 잡는 경우도 있다. 디지털 기술의 힘을 입고 이러한 언어의 변주와 변화는 더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이를 두고 어떤 이들은 혀를 끌끌 차며 “세종대왕이 노할 일”이라고 소리를 높인다. 물론 한 민족의 문화와 정신이 고스란히 담긴 모국어를 소중하게 여기는 태도는 중요하다. 하지만 모든 사회 집단에는 그들만의 은어가 있다. 노동자는 노동자들만의, 부모는 부모들만의, 아이는 아이들만의 비밀스러운 언어를 공유하고 이를 통해 소속감을 키운다. 그런가 하면 저속하고 상스럽다고 취급 받는 비속어와 욕은 언어를 통한 해방감을 줘 행동으로의 일탈을 제지한다는 긍정적인 면도 지녔다. 비속어는 대대로 피지배 계급이 지배 계급에 저항하는 수단으로 쓰이기도 했다. 방랑 시인 김삿갓은 자신의 시에 욕을 활용해 통쾌하게 지배자들을 풍자한 것으로 유명하다. 무엇보다도 언어는 사용자에 따라 끊임없이 의미와 형태가 변하는 물성을 지닌 존재다. 러시아의 언어철학자 포테브냐는 “언어는 본질상 지속적으로 매 순간 사라지는 것이다. 언어는 이루어진 것, 죽어 있는 생산물이 아니라 활동, 즉 생산 과정 자체다” 라며 언어의 가변성을 주장한 바 있다. 국립국어원이 해마다 ‘짜장면’ “푸르르다” 등 실생활에서는 보편적으로 사용됐지만 ‘틀린 맞춤법’이었던 말들을 맞춤법으로 인정하는 작업을 하는 것 역시 박제된 언어가 아닌 사용자에 의해 살아 움직이는 언어의 정체성을 설명한다. 따라서 언어를 바뀔 수 없는 불변의 것으로 규정하거나 신조어나 속어, 인터넷 용어 등을 배제해야 할 대상으로만 여기는 것은 결국 끊임없이 변하고, 생성되고, 사라지는 언어의 생명력을 거세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말과 글이 의사소통의 전부일까?


누군가에게 사과의 말을 건넸다. 그런데 상대의 눈빛이 영 탐탁지 않다. 알고 보니 상대방은 “미안해요”라는 말과 달리 딱딱한 말투 때문에 사과를 진심이라고 느끼지 않은 것이다. 언어는 타인과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사용하는 보편적이고 효과적인 수단이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언어를 사용할 때 훨씬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언어가 아닌 표정과 말투, 자세, 눈빛, 시선, 제스처 등의 비언어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은 이러한 비언어, 혹은 몸짓언어가 의사소통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훨씬 높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미국 UCLA의 심리학 교수인 앨버트 메러비언은 “커뮤니케이션에서 말로 전달되는 언어적 콘텐츠는 7%뿐이며,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의 비중이 93%”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몸짓언어가 훨씬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유는 우리의 뇌가 시각 정보를 우선적으로 처리하기 때문. 음성 언어로 아무리 긍정적인 내용을 전달한다고 해도 시각적으로 보이는 몸짓언어가 다른 말을 한다면, 결국 엉뚱한 메시지가 전달돼버리는 것이다. 역으로 말과 글로 거짓말을 꾸며내기는 쉽지만, 몸은 거짓을 표현하는 데 서툴고 순진하다. 우리 몸 중에서도 가장 거짓말을 못하는 곳은 바로 눈. 거짓말을 할 때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정면을 응시하는 시간이 짧아지고 시선을 오른쪽으로 향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한편 아이들은 몸짓언어를 읽어내는 데 탁월한 재주를 지녔다. 범죄 심리학자인 표창원 박사 역시 “나이가 어릴수록, 순진할수록 말로 표현되는 내용보다는 몸짓언어가 보여주는 감정과 느낌에 더 정직한 표정을 보인다”고 말한 바 있다. 부모가 아이와 대화할 때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영혼 없는 반응과 기계적인 제스처를 취했다면, 아이는 부모의 무성의함을 눈치챘을 공산이 크다. 진심 어린 눈빛, 미소, 따뜻한 손길의 중요성을 잊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남자와 여자의 언어는 왜 다를까?


남자와 여자의 언어 차이는 오래되고 꾸준한 사람들의 관심사다. 1993년 존 그레이 박사는 남녀 간 사고와 언어 차이를 얘기한 저서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로 큰 돌풍을 일으켰고, 최근에는 ‘남자어․여자어 능력평가’가 인터넷을 달구기도 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말한다. 남자의 언어는 단순하고 직접적이고 문제 해결을 지향하는 반면, 여자의 언어는 공감과 감정 표현, 은유의 언어라고. 이러한 차이는 정말 보편적인 것일까. 또 이런 차이는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남녀의 언어 격차를 뒷받침하는 이론은 뇌과학에서 출발한다.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남자는 좌뇌와 우뇌를 따로 쓰는 반면 여자는 남자의 뇌보다 뇌량이 두껍고 넓어 좌뇌와 우뇌를 함께 쓰는 경향이 강하다. 때문에 남자가 언어영역을 담당하는 좌뇌만을 사용해 감정을 배제하고 분석적으로 말하는 반면, 여성은 우뇌도 함께 사용하므로 공감 능력과 감정 표현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남녀 간 뇌의 차이는 어릴 때부터 발견된다. 0~3세는 좌뇌와 우뇌의 분화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시기인데, 여아는 이때부터 좌뇌와 우뇌를 함께 사용하며 언어와 밀접한 관계를 지닌 측두엽 발달이 남아에 비해 빠른 경향을 보인다. 반면 남아의 뇌는 측두엽보다는 대근육과 운동감각을 담당하는 두정엽 등이 더 활발하게 발달한다. 덕분에 많은 부모들이 아들에 비해 딸의 말문이 빨리 트인다고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남아와 여아의 이러한 두뇌 차이는 학령기 초반까지다. 만 5~6세 무렵이면 성별에 관계없이 좌뇌와 우뇌의 균형 잡힌 발달이 이뤄진다. 또 최근의 연구 사례 중에는 성별에 치우쳐 뇌 영역이 발달한 사람은 고작 8%로 나타나는 등 여성과 남성의 뇌가 유의미한 차이를 가지지 않음을 보여주는 결과도 많다. 물론 수많은 일상 대화의 경험상, 남자와 여자가 서로 다른 보편적 언어 세계를 가지고 있음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것이 어쩔 수 없는 생물학적 차이인지, 사회문화적으로 만들어진 차이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어쩌면 ‘남자는 원래 단순하게 말하니까’ ‘여자는 원래 돌려서 말하니까’ ‘아들은 공감 능력이 떨어지니까’ ‘딸은 애교스러운 말투니까’라는 학습된 편견 아래 차이를 더욱 공고화시키고 오해의 벽을 높게 쌓고 있는지도 모른다.


참고 자료
EBS 다큐프라임 제작팀 <언어발달의 수수께끼>
윤세진 <언어의 달인 호모로퀜스>
니콜라우스 뉘셀 <언어란 무엇인가>
최경봉·시정곤·박영준 <한글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파스칼 피크 외 <언어의 정원>
알렉산드로 아파나시에비치 포테브냐 <사고와 언어>
국립국어원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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