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폴라리스> Vol.181 '나도 사회인!'
직장맘 커뮤니티, 도원생태놀이맘
엄마들의 작은 사랑방
직장에 다니는 엄마, 아빠들은 동네에 친구가 없다. 일하고 집으로 돌아와 아이를 돌보다 보면 동네 한 바퀴 휘 도는 일조차 버거우니까. 그러다 보니 아이도 동네에 친구가 없다. 외로운 건 부모도, 아이도 마찬가지다. 같은 고민 혼자서 끙끙대지 말고, 함께 나누고 의지하자며 모인 엄마들의 작은 사랑방 같은 모임이 있다. 직장맘 커뮤니티, 도원생태놀이맘을 만나봤다.
에디터 윤경민 포토그래퍼 유재철
외로웠던 가족들이 모여
토요일 오전, 여의도공원에 위치한 눈썰매장에는 주말을 맞아 아이의 손을 잡고 나들이 나온 가족들이 가득하다. 아이들 겨울방학을 맞아 잠시 모임을 쉬고 있는 ‘도원생태놀이맘’도 오랜만에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은 차가운 손을 장갑으로 녹이는 대신 서로의 손을 꼭 잡았고, 엄마들은 쌓였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느라 신이 났다. 도원생태놀이맘은 서울시 용산구 도원동에 위치한 아파트 단지 내 커뮤니티이자 직장맘들로 구성된 부모 소모임이다. 직장에 다니느라 이웃들과 어울리기 어려운 부모들이 모여 함께 고민을 나누고 교류하며 재미있게 아이들을 키워보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2014년 시작된 모임은 올해로 벌써 4년째. 현재13가구가 모임에 참여하고 있으며 대부분 5~8세의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강서희(여섯 살 도연이의 엄마) 씨는 이 모임을 결성하고 지금껏 이끌어온 주축이다. “2013년 도원동으로 이사를 오기 전 육아휴직을 하면서 동네 엄마들과 품앗이 육아로 일주일에 두 번씩 만나 모임을 진행했었어요. 다른 엄마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육아가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를 깨닫고 큰 위로와 힘을 얻었죠. 또 집에 갇혀 아이만 보다가 밖으로 나가 사람들을 만나니 쌓였던 답답함이나 스트레스도 해소되더라고요. 아이가 어릴수록 엄마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만 보내게 되잖아요. 하지만 아이와 대화를 나눌 수도 없고, 그렇다고 퇴근해서 피곤한 남편을 붙들고 매일 고충을 털어놓을 수도 없으니 홀로 외로움을 많이 느꼈었는데, 당시 품앗이 육아로 많은 에너지를 얻었어요. 그래서 도원동으로 이사를 왔을 때도 바로 부모 모임이나 품앗이 모임 등을 찾아봤는데 거의 없더라고요. 200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아파트 단지 내에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게 오히려 부자연스럽게 느껴졌고,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즐거움과 고마움을 알기에 직접 커뮤니티를 만들어보기로 결심했어요. 또 아이들도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고 어울려 지내야 자연스럽게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죠. 나눔과 배려, 공동체 정신은 말로 가르친다고 아이들이 배울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부모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직접 보여줘야 하죠. 부모뿐만 아니라 아이를 위해서라도 이웃과 함께하는 건 중요해요.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선배, 동네 놀이터에서 만난 엄마와 함께 의기투합해 직장맘을 위한 커뮤니티를 만들자며 서울시직장맘지원센터 직장부모커뮤니티 지원사업에 지원해 모임을 시작했어요.” 이후 세 사람은 아파트 단지에 ‘함께 모임을 이끌어나갈 직장맘 가족을 구한다’는 홍보물을 붙였다.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 연락을 해왔고 그해 총 10가구가 모였다.
궁금한 것도 불안한 것도 많은데 물어보고 조언을 구할 사람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이 모임에 가입했죠. 또래를 키우며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과 만날 수 있다는 게 가장 좋은 점이에요.
함께한다는 것
직장을 다니는 엄마와 아빠들에게 집은 서글프게도 잠을 자는 공간에 불과할 때가 많다. 퇴근 후 동네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매우 드물어 친한 이웃은커녕 인사하며 지내는 사람을 만드는 것도 쉽지 않다. 놀이터에 아이를 두고 잠깐 집에 다녀오는 일도 불가능하고, 아이의 어린이집, 유치원 입학에 대해 고민을 나눌 사람도 없다. 아이까지 부모의 직장 내 위치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닌다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하원 이후나 주말에 동네에 나가도 아이와 함께 놀아줄 친구가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또래를 찾기 시작하는 6, 7세가 되면 부모들은 더 걱정이다. 직장을 다니는 엄마와 아빠들 대부분이 같은 고민과 걱정으로 고통스러워하지만, 이를 함께 의논하고 해결할 이가 없다. 도원생태놀이맘에 가입하기 전 이곳의 부모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에게 지금의 이 모임은 특별하고 고마운 존재다. 이옥선(일곱 살 예나의 엄마) 씨는 “주말마다 아이는 심심하다고 하는데, 일을 하다 보니 주말에는 쉬고 싶기도 하고 매번 계획을 세워 어디를 놀러 가는 일이 버거웠어요. 그런데 이 모임은 멀리 이동하지 않아도 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때문에 좋아요. 아이도 또래를 만나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고, 저도 엄마들을 알게 돼 고민도 나눌 수 있게 됐고요”라며 모임에 가입한 이유와 장점을 전했다. 배선애(일곱살 윤서와 네 살 윤영이의 엄마) 씨 또한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유치원으로 보낼 시기가 되니 고민이 많았어요. 유치원에 가는 게 옳은지, 어느 유치원이 좋은지, 궁금한 것도 불안한 것도 많은데 물어보고 조언을 구할 사람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이 모임에 가입했죠. 또래를 키우며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과 만날 수 있다는 게 가장 좋은 점이에요. 또 아이가 주말에도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고요”라며 덧붙였다. 이미 수많은 부모 커뮤니티가 존재하고 매년 셀 수 없는 가족 소모임이 생겨난다. 하지만 모든 커뮤니티가 관계를 이어가거나 구성원 모두가 모임에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이에 강서희 씨는 도원생태놀이맘이 꾸준히 만남을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를 “모임의 목표를 무엇으로 삼느냐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부모들의 목적이 좋은 학원이 어디인지를 알아내기 위해서라든가, 다른 부모보다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서라면 모임에 나가는 자체가 긴장되고 피곤해질 거예요. 서로 경쟁하기 위해서 모인 관계일 테니까요. 하지만 저희처럼 ‘주말에 모여 재미있게 놀아보자’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만난다면 그 시간이 고되지도, 부담스럽지도 않아요. 그저 즐기면 돼죠”라고 설명했다.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편안한 시간을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이가 돈독해졌고, 서로의 일상과 속 깊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의지하게 됐다.
즐길 수 있는 정도로만
도원생태놀이맘은 한 달에 두 번, 둘째 주 토요일과 넷째 주 토요일에만 모임을 진행한다. 그마저도 아이들 방학 기간에는 모임을 쉰다. 활동은 부모가 직접 준비하기보다는 전문가를 초빙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덕분에 커리큘럼이나 프로그램 진행, 준비물 등에 대해서 부모들이 부담을 가질 것이 없다. 프로그램 진행 비용은 대부분 서울시직장맘지원센터 직장부모커뮤니티 지원사업에서 받는 활동금으로 충당하기에 경제적인 부담도 없다. 많은 지자체에서 부모 모임과 부모 커뮤니티를 위한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으므로 이를 활용한다면 좀 더 효율적인 커뮤니티를 운영할 수 있다. 숲체험, 신체놀이, 생태미술, 부모교육 등 어떤 프로그램을 진행할지에 대한 연간 계획은 연초 부모들이 모여 의견을 나눈 후 정한다. 지난해 아이들에게 반응이 좋았던 프로그램과 더불어 되도록 아이들 연령에 맞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려 한다. 이후 강사 섭외, 회계, 홍보 등 각자 1년 동안 담당할 역할을 정한다. 때문에 번개 모임이나 특별한 일정이 생기지 않는 이상 추가로 회의를 하거나 번거롭게 연락을 주고받을 일이 없다. 단체 공지 사항은 ‘네이버 밴드’와 같은 모바일 커뮤니티에 올려 최대한 간단히 의견을 주고받고, 모임 참석 가족이 정해지면 세세한 일정과 내용은 ‘카카오톡’과 같은 모바일 메신저로 소통한다. 이와 같은 운영 방식 및 규칙은 부모들이 모여 협의한 것도 있지만, 모임을 처음 만들 당시 강서희 씨가 정해놓은 게 대부분이다. “제가 직장맘이기 때문에 직장을 다니며 육아를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직장을 다니는 부모 커뮤니티의 운영 방식은 다른 곳과 달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육아휴직을 했다가 다시 일을 시작해보니 전업맘과 직장맘의 생활 패턴이 너무나도 다르다는 걸 체감했거든요. 그래서 격주로 모임을 진행하고, 장소는 최대한 가까운 곳으로 해요. 되도록 아파트 단지 내에서 하려고 하죠. 멀면 부담스럽고,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쉬어야 부모들도 쉴 수 있잖아요. 그리고 저는 프로그램을 전문가와 강사에게 맡기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특히 직장맘들의 모임일 경우 적극 추천 드려요. 처음부터 끝까지 부모가 모두 계획하고 준비, 진행하려고 하면 장기적인 참여는 불가능해요. 모든 활동은 직장을 다니는 엄마와 아빠가 즐길 수 있을 정도여야 해요.” 보통 모임은 오전 10시 30분쯤 모여 1, 2시간 내외로 끝난다. 하지만 아이들의 놀이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처음에는 헤어지지 않으려는 아이들 때문에 난감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어느 집으로 가야 할지 고민도 됐었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들 반갑게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다. 헤어지기 아쉽고 함께하는 즐거움이 기대되는 건 부모들도 마찬가지니까.
서울시 ‘2017년 부모커뮤니티 활성화 지원사업’ 공모는 2월 3일 오후 6시까지 진행되며, 서울시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www.seoulmaeul.org) 홈페이지에서 신청하면 된다. 지원 대상은 부모 커뮤니티, 직장부모 커뮤니티 등 3명 이상의 주민 모임 및 단체 등이다. 모임 별 지원액은 최대 200만 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