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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 폴라리스 May 31. 2017

몸은 거짓말을 못해요

월간 <폴라리스> Vol. 169 '반가워, 사회성'

                                                                                                                          

무대, 배우, 조명, 수많은 관객. ‘연극’을 생각하면 이처럼 우리의 일상과는 동떨어진 단어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연극치료는 생활 속에서 내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며 흔히 하는 ‘상상’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는 익숙한 활동이다. 한국연극치료연구소 박미리 대표를 만나 타인과의 관계 맺기에 서툰 아이들을 위한 ‘연극치료’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에디터 성소영․윤경민 포토그래퍼 유재철 
박미리 한국연극치료연구소 대표



한국연극치료연구소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연극을 통해 육체적․정신적 문제를 치유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기관으로, 지난 2005년에 대학로에서 문을 열었습니다. 이후 국내 최초로 한국연극치료협회를 설립해 일반인을 비롯해 발달 장애 아동, 청소년 등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연극심리상담 프로그램을 개발해 치료하고 있습니다.

연극치료는 일반 사람들이 접하기 다소 어려운 분야인데 연극치료가 무엇인가요?
연극을 매개로 정서적 문제를 치료하는 것입니다. 극적인 상상력과 사회적 상호작용, 의사소통 능력을 종합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치료 방법이지요. 다른 심리치료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의 마음 상태, 문제점 등이 드러나는 투사작업이 70% 이상 이뤄진다는 점이에요. 연극이라는 안전한 장치 속에서 아이들은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상태가 돼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게 됩니다. 참여자가 어떤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상황인지 등 현 상태에 맞는 치료가 진행돼야 하기 때문에 개개인에게 맞는 치료 방법 또한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연극치료라고 하면 대중은 매스컴에서 주로 보았던 역할극을 가장 먼저 떠올릴 것 같아요.
맞아요. 연극치료에 대해 바로잡고 싶은 오해 중 하나입니다. ‘연극치료’라고 하면 사람들은 역할극이나 사이코드라마 등을 떠올려요. 더불어 연극은 공연이고, 배우들만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해 선뜻 시도조차 못하는 경우가 많지요. 하지만 실제로 연극치료는 굉장히 다양한 오브제를 활용해 감각과 감성을 자극하고 이를 표현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또 연극을 구성하는 것은 바로 ‘이야기’인데, 이 이야기는 허구 그 자체입니다. 허구로 구성된 연극을 한다는 것은 상상력을 사용한다는 것이고, 이처럼 상상력을 활용해 치료하는 활동이 연극치료의 핵심입니다. 인형, 가면, 그림자 등 오브제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우리 몸을 활용해 이야기를 만드는 것도 다 연극에 포함되는 것이죠. 실제로 아이들을 데리고 연극치료연구소를 찾은 부모님들은 이런 활동을 보고 기존에 알고 있던 ‘연극’이 아니라 ‘감각치료’와 비슷하다는 말씀을 많이 하세요.

부모님들이 일상에서 아이와 놀아주기 위해 만드는 상황극들이 다 연극인 것이죠. 이미 우리는 생활 속에서 충분히 연극을 경험하고 있어요.


연극치료가 아이들의 사회성을 발달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는 이유는 뭔가요?
연극치료는 타인과의 관계, 즉 나와 다른 사람을 똑바로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요. 치료 자체가 주로 집단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타인과 나 사이의 관계를 인식하는 데 효과가 있습니다. 다른 친구들과 함께 자신의 생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몸을 부딪히며 자신이 맡은 역할을 연극으로 수행하는 활동을 하면서 다른 이들의 감정을 이해하고 어울리는 방법을 배우게 되는 것이죠. 아이들이 마음의 상처를 받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가 사회에서의 관계 맺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예요. 여기서 ‘사회’라 함은 반드시 유치원이나 학교, 회사 등의 집단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도 포함이 됩니다. 특히 영유아들은 부모가 세상의 전부이기 때문에 엄마, 아빠와의 관계가 틀어지면 사회성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발달 특성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아요.

엄마아빠가 아이와 함께 연극치료를 받는 경우도 있나요?
건강한 아이들은 엄마, 아빠와 함께 연극놀이를 하면 훨씬 더 효과적이에요. 하지만 사회성 부족이 심한 경우에는 치료가 진행되는 동안아이를 부모에게서 완전히 떨어뜨려 놓습니다. 이러한 아이들은 부모와의 애착이 잘 형성되지 못한 경우가 많고, 대부분이 말 한마디, 행동 하나를 하는 데에도 부모님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죠. 또 연극치료를 하는 동안 “우리 엄마를 닮은 피규어는 무엇일까?” “나는 누구일까?”처럼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질문을 많이 하는데, 이때 엄마가 옆에 있으면 아이는 자신의 진실된 마음을 말할 수 없습니다.

낯선 치료사 앞에 서는 걸 어려워하는 아이들도 많을 것 같아요.
맞습니다. 처음부터 치료사 앞에 서서 이야기를 하고 연극을 할 수 있는 아이들은 건강한 친구들이에요. 연극치료를 받으러 찾아오는 아이들은 이미 정서적으로 힘들어 하는 친구들이기 때문에, 대부분이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긴장하고 불안해 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처음에는 연극 때 사용하는 커다란 큐브 모형 뒤로 숨거나 등을 돌리고 벽을 보고 앉는 등 자신만의 방식으로 불안을 표출하죠. 또 사회성이 부족한 아이들은 장난감이 주어져도 가지고 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따라서 익숙한 놀이를 통해 아이의 관심을 유도하거나 모래판을 가까이 가져가 만질 수 있도록 하면서 웜업(Warm-up) 하는 과정을 거치는 게 중요합니다. 천천히 시간을 두고 기다리면서 아이가 안전하고 편안한 느낌을 갖도록 하는 것이 치료의 출발점인 것이죠. 그래서 처음 친구들이 이곳에 방문하면 ‘기차놀이’를 자주 하는 편이에요. 서로의 허리를 잡고 기차가 되어 여행을 떠나는 상황을 설정해 연구소 곳곳을 탐험하고, 물건들을 만지고, 소리를 내면서 환경에 익숙해지도록 도움을 줍니다.

사회성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성은 무엇인가요?
첫 번째로는 굉장히 불안해 하는 아이들이 있고, 두 번째로는 아무렇지않은 척하며 치료사와 정서적 차단을 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둘 중 더 문제가 있는 것은 후자의 경우예요.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아이들의 경우, 치료사의 질문에 대꾸도 하지 않고 혼자 하고 싶은 행동을 하는 등 겉으로는 아이 스스로 일부러 타인과의 접촉을 피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지만 사실 내면에는 굉장한 불안감이 자리하고 있거든요. 부모님 에게 자주 혼난 아이들이 이렇게 스스로의 감정을 숨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계속해서 누군가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죠. 이러한 아이들은 자신을 만지는 것에도 굉장히 민감해요. 따라서 먼저 손가락으로 아이의 팔을 톡톡 건드리면서 “지금 네 손등 위로 개미가 지나가네?”와 같은 흥미로운 상황을 설정해 타인의 접촉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또 아스퍼거 증후군, 자폐증 등과 같은 장애가 아니라면 예민한 기질을 타고난 아이들이 사회성 결여로 힘들어 하는 경우가 많아요. 부모님들이 아이의 예민함을 놓치지 않도록 잘 관찰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몇 세부터 연극치료가 가능한가요유아를 대상으로 한 연극치료의 방식이 궁금합니다.
의사소통이 가능한 3세 이상부터 연극치료를 시작할 수 있어요. 아이들은 자라면서 개개인의 고유한 특성이 자리를 잡게 됩니다.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감각과 감성을 자극하는 것이 성인보다 더 중요합니다. 유아를 대상으로 한 연극치료는 부모님과의 심층적인 상담 후, 치료의 정확한 목표를 함께 설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요. 이후 아이의 자신감 회복, 자신의 감정 표현하기 등 구체적인 목표를 정한 뒤 본격적인 치료에 돌입합니다. 아이들이 쉽게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다양한 오브제를 이용한 놀이, 그림 그리기, 모래놀이 등의 방법을 활용해 치료가 진행돼요. 우리 가족의 닮은꼴 동물을 골라보라고 하거나 모래 위에 그림을 그리게 하는 등 방식은 정말 다양해요. 아이가 연구소 분위기에 익숙해지면 함께 연극으로 꾸밀 이야기를 만들고 직접 연극을 하기도 합니다. 치료를 받아들이는 능력, 성격,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시간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치료의 시기나 기간 또한 개개인마다 차이가 있는 편이에요.

진행했던 수많은 연극치료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례도 있을것 같은데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혹시 아이의 사회성이 부족할까 걱정을 한 네 명의 엄마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연구소를 찾은 적이 있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오자마자 “선생님, 제가 요즘에 굉장히 스트레스가 심해요”라고 말하더라고요(웃음). 아주 건강하다는 증거죠. 치료가 필요하지 않은 아이들이었지만 엄마들의 염려로 1년 동안 연구소에서 즐겁고 자유롭게 연극 활동을 즐기고 갔는데, 이곳에서 연극치료를 경험하는 동안 정말 행복해 하던 기억이 나요. 또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는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님도 있었어요. 아스퍼거 증후군은 사회성 결여가 증상으로 나타나는 장애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져요. 장애의 일종이기 때문에 완벽하게 치료가 되지는 않지만 이 친구는 연극치료를 통해 표현력이 많이 향상됐습니다. 집에서 말을 하지 않던 아이가 엄마에게 먼저 말을 걸고, 이야기를 하는 정도까지 발전이 됐거든요.

연극치료는 국내에서 그 역사가 짧은 편인데다른 예술치료들과 비교했을 때 어떤 강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몸으로 하는 활동이라는 점이 연극치료의 가장 큰 강점이에요. 우리 몸에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몸은 한 번 익힌 것을 끝까지 기억하지요. 또 말로는 거짓을 말할 수 있지만, 몸은 거짓말을 못 해요. “나는 하나도 불안하지 않다”고 말하지만 손이 떨리는 등 몸으로는 진실된 상태가 보입니다. 몸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무용과 공통점이 많은데, 무용은 추상적인 몸의 활동이라면 연극은 구체적인 몸의 활동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어요. 연극치료는 정확한 역할과 이야기, 감정 등을 몸으로 인식하고 음악, 미술, 체육 등 모든 활동을 결합할 수 있기 때문에 정서 치료를 하는 데 훨씬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집에서 부모와 하는 평범한 역할극도 아이의 사회성에 도움이 될까요?
물론이죠. 하지만 치료가 남발되는 것은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교육’이나 ‘치료’라는 생각으로 역할극을 시도하지 말고, 단순한 놀이의 일종으로 연극을 활용한다면 아이의 사회성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될 거예요. 가급적이면 부모님들께서 아이를 바라볼 때 건강한 관점을 가지고, 아이의 현 상태를 격려해주는 것이 중요해요.

역할놀이인형극 놀이 등을 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나요?
절대 아이를 앞서가지 말아야 합니다. 아이를 가르친다는 마음을 갖지 말고 옆에서 가만히 ‘아이의 놀이를 지켜본다’고 생각해야 해요. 요즘 부모님들은 아이와 함께하는 모든 것을 교육과 연관시키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아이를 오히려 더 불안하게 만들 뿐이에요. 아이가 자유롭게 노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도움이 필요할 때 한두 마디씩 조언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엄마, 아빠의 역할은 충분합니다.

집에서 부모가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연극 놀이의 방법을 소개 해주세요.
특정한 인형이나 물체를 활용하지 않아도 종이컵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놀이가 돼요. 예를 들면 종이컵 하나는 토끼, 또 하나는 거북이라고 설정해서 달리기 시합을 하는 등의 상황을 설정하는 거예요. 종이컵을 어떤 대상이라 지칭하는 순간, 아이들은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클레이를 통한 놀이예요. 클레이를 마음껏 주무르고 만지면서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고, 이것으로 자신이 원하는 물체를 만들어 상황극을 설정하는 것이죠. 아이들은 자발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엄마, 아빠가 굳이 상황을 만들어주지 않아도 상상력으로 이야기를 만들어갈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따라서 제시나 지시보다는 자연스럽게 아이가 하는 대로 흐름을 따라가준다면 집에서도 간편한 재료를 활용해 충분히 재미있는 놀이를 할 수 있을 거예요.

관객 앞에서 공연을 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상황을 설정해 상상력을 이끌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연극이 만들어지는 거네요.
그렇죠. 허구의 세계로 이루어진 이야기를 만드는 것 자체가 연극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어요. ‘연극’이라고 하면 나와는 거리가 먼 예술 장르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부모님들이 일상에서 아이와 놀아주기 위해 만드는 상황극들이 다 연극인 것이죠. 이미 우리는 생활 속에서 충분히 연극을 경험하고 있어요. 연극치료라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이외에도 아이의 사회성 발달을 위해 시도해볼 만한 방법이 있을까요?
신체적인 접촉이 사회성을 발달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아빠가 먼저 바닥에 누운 뒤 배 위에 아이가 눕도록 한 다음 아빠의 호흡을 느끼게 하는 거예요. 들숨과 날숨이 교차되면서 아빠의 배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할 때 “지금 너는 바다 위에 누워 있는 거야.” “어때? 물결치는 게 느껴지니?”와 같은 말을 통해 상상력을 자극시키는 상황을 설정하는 거죠. 이러한 놀이는 어디서든 쉽게 할 수 있으면서도, 아이와 애착을 형성하는 데 효과가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좋은 것은 이렇게 마음먹고 하는 신체 접촉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스킨십입니다. 많이 안아주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것보다 좋은 것은 없어요. 간혹 사회성이 부족하거나 부모와의 애착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아이들의 경우, 앞에서 안는 것을 피하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뒤에서부터 안아주는 것이 아이의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어요. 만약 아이가 손가락을 물어뜯거나 눈을 깜빡거리는 등 불안을 몸으로 표출한다면 그 행동을 제지하지 말고 등을 따뜻하게 쓸어주세요. 특별한 치료과정을 거치지 않더라도, 아이들은 부모의 따뜻한 손길만으로 충분히문제 행동을 개선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연극치료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계실 부모님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연극치료는 몸을 통해서 ‘나’를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하는 가장 좋은 활동이에요. 놀이 이상이자 스스로 마음을 치유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죠. 하지만 연극치료 또한 ‘치료’의 일종이기 때문에 부모님들께서 ‘아이의 문제’를 가정하고 연극치료에 관심을 가지는 경우가 많아요. 무조건 ‘문제’를 상위에 두고 아이를 바라보지 말고, 내 아이가 더 건강해질 수 있는 방법으로 연극치료에 관심을 가져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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