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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빛 Nov 19. 2021

최은영 '밝은밤'을 읽고

백 년간의 연대기

최은영의 '밝은 밤'은 여자들의 연대기다. 엄마와 나, 나와 할머니, 나와 증조할머니 이렇게 이어져 내려오는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 할머니와 거의 의절한 듯 보이는 엄마, 다시 할머니와 만나는 화자(지현)는 자신이 증조할머니를 닮았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다. 판박이 같은 할머니의 사진을 보는 장면에서 이 소설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다가온다.

할머니가 “우리 엄마 얘기, 들은 적 있어?”라고 묻는 장면에서 살짝 소름이 돋았다.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백년간의 고독’이 생각났다. 처음 보는 기차를 표현하는 장면에서 소설 ‘고래’가 떠올랐다. 앞선 이야기들보다 더 잘 쓰기가 쉽지 않을 텐데, 다른 이야기들의 이미지가 막 섞여서 내 머리를 휘젓는다.

화자가 남편과 이혼했을 때, 그녀에게는 치유되지 않을 상처로 남은 어머니의 말들이 있었다. 증조부가 가장 최악이었던 순간마다. "그래도 너희 아버지는 나를 구했어. 그래도 너희 아버지는 나를 구했어."라고 말하는 증조할머니의 말은 엄마에게까지 내려왔고, 그 말이 그녀에게 칼이 되어 꽂혔다.

 

왜 밝은 밤인지 궁금했다. 밤이라는 말만으로도 어두워지는데, 낮이었으면 밝다는 말도 필요 없을 텐데..


희령의 기억으로 시작한  문장. 그러나, 1부의 끝에서 그녀는 기억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잠시 우주에 머물렀다는 사실조차도 기억되지 못하는 종족이 , 우주는 그들을 기억할  있는 마음이 없는 . 그것이 우리의 최종 결말이다라고.

 

밝은 밤은 여자의 이야기, 해가 없는 곳. 하지만 어느 곳보다 빛나는 이야기이다.


겉으로만 사람들을 바라보면, 그 속내를 알 수가 없다. 자전거라도 타고 길을 가보라. 걷는 것과는 다르게 스쳐 지나가는 것들에 머무르는 시간이 없다. 사람들에게는 상처가 모두 다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양만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그 상처를 드러내지 못하는 것과도 연관된다.

이 소설에는 사람에게 상처 받고, 특히 남자에게 상처 받은 여자들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멀리서 보면 남들 사는 게 다 희극이라 하지만, 여기서는 멀리서 봐도 비극이고 가까이 가니 그 속에 간간히 웃을 때가 있는 것이 인생이라 말하는 듯하다. 비애가 묻어나는 중에 그 슬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남자로, 이야기 속의 남자와 같은 모습을 많이 가지고 있는 나를 본다.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의 행동으로 상처를 주지 않았을까.


여자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일까 생각해본다. 딸들과 아내, 그리고 어머니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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