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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빛 May 04. 2022

'정의론과 대화하기'를 읽고

정의를 정의 내리기 쉽지 않다.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한때 나를 비롯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열광적으로 반응했었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데, 그 주제에 대해 대놓고 이야기한 사람이 별로 없던지, 그 정도의 식견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정의롭지 못한 상황에 대한 인식 또는 개개인들이 당하는 부정의(不正義)에 대한 반작용이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와 함께 그 책의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정의가 무엇인지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찾아보기 시작했다. 정의에 대해.

그 책의 저자는 아류였다. 그 아류를 만들어낸 원류? 존 롤즈의 ‘정의론’을 찾았다.

정의론을 읽었고, 이후 정치적 자유주의를 읽었다. 그의 정의론은 어려웠다. 이래서 정의(正義)를 제대로 정의(定義) 내리는 게 쉽지 않구나 느꼈다. 우리 사회의 복잡도가 높은 만큼 정의에 대한 규정을 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우리말로 된 정의론의 해설이자 현 우리 사회를 정의론의 논리로 풀어보는 책은 목마른논에 비 온 듯 나를 적셨다.

정의론의 첫 일성에 전율했다. 롤즈는 이론이 아무리 정치하고 간명하다고 할지라도 진리가 아니면 배척되거나 수정되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법이나 제도가 아무리 효율적이고 세련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정의롭지 못하면 개선되거나 폐기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모든 사람은 사회 전체의 복지라는 명목으로도 유린당할 수 없는 정의에 입각한 불가침성, 즉 더 큰 이익을 위해 소수의 자유를 빼앗는 것이 정당화될 수 없으며 다수의 이익을 위해 소수의 희생이 강요될 수 없는 존재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롤즈의 주장은 오랫동안 유력한 정치철학적 논의로 거론되는 공리주의를 겨냥한 것이었다. 롤즈는 공리주의가 효율성이 높은 이론으로 자명하다고 할지라도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제도, 예를 들면 노예제와 같은 명백한 부정의 마저도 효율성을 극대화한다는 명분 아래 용인할 수 있는 이론이라는 점에서 정의에 어긋난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이러한 공리주의의 대안으로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제시한다.

롤즈가 정의와 관련해서 주목하는 공정성은 자연적 우연성과 사회적 우연성에 따라 형성되는 부당한 영향력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관련이 있다. 이들은 사회 구성원의 미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고 분석한다. 본인의 책임이라고 할 수 없는 유전적인 요소인 지능, 체력, 재능 등과 같은 자연적 우연성과 가정배경, 부모의 영향력 등과 같은 사회적 우연성으로 인해 사람들의 미래 기대치가 결정되고 형성되는 것은 공정하다고 볼 수 없다. 이에 따라 롤즈는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통해 이러한 우연성으로 인해 생기는 부당한 영향력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원초적 입장’, ‘무지의 베일’이라는 자신의 주관적인 특성을 배제하고 일반적인 고려 사항만을 기초로 여러 대안 가운데 가장 적합한 원칙을 선택할 수 있는 장치를 통해 우연성을 배제한 입장을 제시하여 사회에서 가장 불리한 상황에 있는 최소수혜자라고 하더라도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게 한다는 최소극대화 규칙의 합의를 제시한다.

공정으로서의 정의는 두 가지 원칙으로 구성된다. 제1원칙인 자유의 원칙과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을 허용하는 제2원칙이다. 자유의 원칙은 정의로운 제도 아래 개인들이 자유롭게 자신들의 가치관, 즉 합리적 욕구로 형성된 인생 계획을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다른 어떤 원칙보다도 우선시 된다.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을 허용하는 것은 두 가지 원칙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공정한 기회균등의 원칙이고, 둘째는 차등 원칙(the difference principle)으로 최소수혜자에게 최대의 이익이 돌아가야 한다는 원칙이다.

롤즈의 공정으로서의 정의에서 가장 특징적인 원칙으로 주목받는 것이 차등 원칙이다. 차등 원칙은 보상의 원칙이 추구하는 정신을 담고 있다. 차등 원칙은 자연적, 사회적 우연성에 의해 불우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처지를 개선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불우한 우연성에 대한 보상의 정신을 담고 있다. 이와 함께 상호성을 추구하여 사회 구성원이 사회 협동체로서의 사회의 협력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모두가 이익을 공유할 수 있게 하는 기제가 된다. 차등 원칙은 박애 정신도 담고 있다. 롤즈에 따르면 박애는 복종과 굴종의 방식 없이 다양한 공공적 관습에서 나타나는 사회적 존중감을 어느 정도 동등하게 만드는 것이며 시민적 우애와 사회적 연대감도 의미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여러 많은 내용이 있으나,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주제로 하여 우리 사회의 교육문제를 들여다보자.

롤즈의 정의론은 유리한 여건에 있든 불리한 여건에 있든 사회 구성원은 사회 협동체로서의 사회 협력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모두가 이익을 공유할 수 있다는 사회관에 토대를 두고 있다. 교육 혜택이 경제적, 사회적 특권으로 전이되는 사회는 사회 협력체계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차등 원칙은 상호성을 추구하는 사회적 협력이 가능한 정도에서의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만을 허용할 것이다. 차등 원칙은 우리가 더 못한 처지에 있는 타인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면 보다 큰 이익을 가질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박애 정신을 담고 있다. 차등 원칙은 그것이 담고 있는 보상, 상호성, 박애 정신으로 인해 사회가 불운한 사람들이 경쟁에서 뒤처지도록 내버려 두는 식의 실력주의 사회로 가지 않게 한다고 롤즈는 주장한다.

한국 교육에서의 진정한 문제는 대학의 학벌이 가져오는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이 사회 최소수혜자에게 혜택이 되지 못하는 사회 기본구조이다. 일부 교육 시민단체가 출신학교 차별금지법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것이 차등 원칙의 구체적인 전략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최저임금을 높이고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방식, 그리고 직업군들 사이의 소득 격차를 낮추는 방식 등도 교육의 민주주의적 평등을 실현하려는 구체적인 전략이 될 것이다.

롤즈 정의론에 따르면, 중요한 것은 개인이 갖는 재능과 능력을 사회 제도에 기여하게 하는 사회 협력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롤즈가 교육과 관련해서 꿈꾸는 사회는, 사회 구성원의 평등한 사회적 지위와 자아실현을 도모하기 위한 교육 기회가 충분히 제공되는 동시에 교육의 혜택이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불평등으로 전이되지 않게 하는 민주주의 평등 체계이다.

이처럼 교육뿐 아니라 모든 사회 체계에서 정의의 잣대는 존재한다. 하나의 틀로서 정의론이 모든 사회 현상에 대응할 수는 없다. ‘정의론’ 이후 많은 이의 제기와 그에 따른 대응으로 ‘정치적 자유주의’라는 더 큰 범주의 이론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만민법에 이르기까지 존 롤즈는 평생을 정의론 하나만 가지고 살았다. 이상적인 이론이라는 공격도 많이 받지만, 이 정도의 이론을 정립한 학자도 없었다.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정의에 목매지 않는 삶을 사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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