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빛 Jun 27. 2022

어머니의 삶

언젠가

어머니는 젊어서 장사를 시작했다. 노점상부터 시작해서 떡방앗간을 차리고, 나이 들어서는 며느리에게 물려준  함께 일했다. 세태의 변화로  주문은 점점 줄어들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해에 세를 올려달라는 집주인의 요구를 못 받아들이고 떡집은 문을 닫았다.

어머니는 다시 노점상이 되어 텃밭의 푸성귀와 손수 집에서 만든 송편을 팔았다. 더위와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에 말리기도 했지만, 당최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아버지 없는 집에서 혼자 살며 노점상을 하는 어머니에게 합가를 하자고 몇 번 말해보았으나, 묵묵부답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 사후 15년만 살다 가겠다고 큰소리쳤는데, 7년 만에 장사 준비하다가 집에서 쓰러졌다.

전날 입맛이 없어 굶다가 저녁때 빵 한 조각 먹고, 아침이 되어 미역국에 불 댕겨놓고 화장실 갔다 나오는 길에 부엌에서 쓰러졌단다. 찬 바닥에 있으면 안 좋을 것 같아 기어서 거실에 깔아놓은 이불 위로 이동했다. 힘이 하나도 없어 기절한 듯이 누워있었다고 한다. 깨어서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화투 친구가 되어주던 손자에게 전화를 했는데, 학교에 있어 통화가 안되었다. 셋째 손녀에게 전화를 해서 막냇동생에게 할머니 집에 와서 라면 끓여달라고 했다는데, 셋째는 손자에게 할머니가 라면 끓여줄 테니 와서 먹어라고 잘못 들었단다. 학원 간 손자는 가지 않았다.

퇴근 후 저녁을 먹으려는데 약속이 있어 나갔던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어머니 목소리가 안 좋다고 빨리 어머니 댁에 가보라고 한다.

어머니 집은 한마디로 아수라장이었다. 장사를 준비하며 다듬던 채소 더미들,  솥에 쪄야 하는 송편 때문에 부엌 바닥에 내려놓은 가스레인지,  위에 까맣게 타버린 미역국.

어머니는 거실에 누워 인기척도 내지 않고 있었다. 급히 깨워보니 힘없는 목소리로 내가 어떻게 왔느냐고 묻는다. 아들이  멀구나 싶었다. 손자랑 며느리에게 전화할 동안 바로 전화했으면 좋았을 것을.

아내도 약속을 취소하고 급히 들어왔다. 내가 더 가까이 있어 먼저 가게 했던 모양이다.

구급차도 불렀다.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되도록 그 상태로 가만히 유지하라고 한다.

세 명의 소방대원이 환자 이동용 카트를 가지고 들어왔다. 고열로 인해 위험하다며 급히 이송을 결정했다. 코로나로 인해 병원도 입원이 수월치 않다. 시내에는 격리병동이 하나도 남지 않아 차를 돌려 시외로 방향을 잡았다.

다행히 언양에 응급실 격리병동이 있었다.

당뇨의 합병증인 신우신염이었다. 신장까지 병균에 감염되어 열도 많이 났다.

한 달 가까이 병원 신세를 졌다.

다행히 병을 이기고 퇴원하고서 우리 집으로 모셨다. 이제는 힘도 없어 장사도 혼자 할 수 없다고 강변했다. 어머니도 수긍하며 받아들였다.

오늘도 하루 종일 뜨개질을 하고 있다. 아들 줄 것 짰다고 자랑하니 며느리도 손녀들도 눈에 밟히나 보다. 대전 둘째 아들도, 수원 막내딸도 짜줘야 한단다. 할 일을 만들어서 하고 있는 어머니.

평생을 그렇게 살아오셨구나. 일손을 놓지 않는 모습에 너무 무리하지 마라고 말하면서도 마음은 묵직하다.

작가의 이전글 '정의론과 대화하기'를 읽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