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빛 Mar 04. 2023

구토

탈 속의 나

김만년의 수필집을 읽고 있다. 첫 편이 '탈'이다. 하회마을의 탈춤을 그린 작품이다. 탈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는 눈에 애정이 가득하다. 판 속의 탈들뿐만 아니라 바깥의 구경꾼들까지 탈춤판을 이루는 중요 등장인물이 되었다.

탈을 보며 사람이 가지고 살아가는 두 개의 탈을 이야기한다. 하나는 내면으로 향하는 탈이고 하나는 밖으로 드러나는 탈이다.

나에게도 그 탈이 드러난 적이 있다.

세종에 파견 나온 지 한 달이 갓 지난날이었다. 더위가 절정인 한여름이었다. 주말 일정이 있어 울산으로 내려가지 못해 인근을 둘러보기로 했다.

첫행보는 예산 수덕사. 대찰이다. 아랫지방의 통도사, 송광사, 백양사는 나름의 멋이 있었다. 여기는 어떨까? 오래된 건물도 있지만, 그 속에 거하는 사람들도 멋을 만드는 중요한 인자이다.

경내가 넓어 다리를 쉬어가며 올랐는데, 대웅전 안에는 여러 젊은 스님들이 불경을 외우고 있다. 어디 누군가의 천도의식인가 보다. 뒷자리에서 부처께 삼배를 드렸다. 피부가 갈색으로 짙은 스님도 한자리 차지하고 있는 모양새가 이색적이었다.



대웅전 바깥 그늘엔 두리두리 앉아서 더위를 식힌다. 의식이 끝났는지 여러 스님들이 줄지어 대웅전을 한 바퀴 돌며 쉬고 있던 사람들의 합장을 받는다.

절 아래 맛집도 대찰을 찾는 중요한 이유다. 그런데 이런 곳은 이젠 관광지가 다되어 인심이 박하다.

 이 절 아래는 산채비빔밥이 유명한데, 어느 맛집이라는 곳에 들려 혼자 왔다고 하니 밥을 안 판다고 한다. 인심 야박하네 구시렁대며 돌아 나왔다.

산길 몇 굽이를 넘어오니 한적한 곳에 커다란 건물 한 채 덜렁있다. 산채비빔밥이라고 크게 적힌 간판을 보고 들어갔다.

낡았지만, 홀은 꽤 넓었다. 밥때가 조금 지났는지 아니면 이름난 곳이 아니라 그런지 밥을 먹는 사람을 넓은 공간에 달랑 두 테이블이었다. 하나는 서너 살짜리 여자애와 할아버지 할머니가 함께 있었다. 음식물을 서빙해 주는 사람들과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식당 가족이다.

이러면 손님은 정말 한 테이블뿐이다.

출입문 앞 쪽에 자리를 잡고선, 산채비빔밥을 시켰다. 집에 가서 먹을 더덕막걸리 한 통도 따로 주문했다. 유리통창 쪽에 면해 있던 나를 포함한 유이한 테이블 손님 중 한 명이 내 앞을 지나 바깥에 주차된 차량으로 지나갔다.

아, 그런데 뭔가 머리를 휙 스치고 지나가는 주뼛거림이 인다. 아가씨가 꽤 두꺼운 하얀 스타킹을 신고 있었는데, 그 아래로 검은 반점이 온 다리에 번져있는 것을 얼핏 본 거다.

이게 뭐지, 갸웃거리며 그 가족들을 본다. 나이가 든 남자와 골격이 큰 나이 든 여자, 그리고 호리호리한 딸 같은 방금 그 여자의 조합이 이상하다.

엄마처럼 보이는 사람의 목소리가 남자 같았다. 어디 목에 병이 있는 것처럼 걸걸한 쇳소리가 망치처럼 내 귀를 두드렸다.

오래된 마티즈 앞에서 뭔가를 하던 젊은 여자가 다시 돌아왔다.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하는데, 그녀에게서도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검은 반점을 눈에 안 뜨이게 가린다고 가렸지만, 전체적으로 펴져있었다. 악성피부종양이다. 에이즈의 중증 증상이기도 하다.

그들의 목소리는 더욱 나의 의심에 불을 지폈다. 한자리에서 밥을 먹는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이 공기 속에 그들의 숨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가 섞여 있을 것 같다.

산채비빔밥이 나오고서도 나물밥은 안중에 없고 그저 저쪽 테이블의 움직임에 귀를 쫑긋 세우다, 반 넘게 비빔밥을 남기고 허둥지둥 몸을 뺐다.


고속도로에 올라오고서 가만히 정면을 주시한다. 차선 따라 자동으로 운행되는 크루즈 주행을 해 놓고 딴생각에 빠진다.

 아까 그 자리에서의 감정이 올라온다. 나만의 애먼 생각으로 피해 나온 것은 두려움이었을까? 그들은 내가 생각하는 그들이었을까? 아픈 젊은이를 위해 나이 든 이들이 어렵게 나들이를 와 준 것일까? 혹시 엄마, 아빠와 딸은 아니었을까?

갑작스럽게 목을 타고 올라오는 구역감이 몸을 휘감는다. 식은땀이 난다.

미성숙한 인간이라며 비판해 마지않던 감수성 부족한 바로 그가 나였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잘못된 지식으로 차별을 하는 그런 사람은 되지 말자며 스스로를 감수성 예민한 사람이고자 했던 나는 저 멀리 날아가고 없었다.

타인의 외양과 형편으로 미루어 온갖 상념의 탑을 쌓았다. 나의 지저분한 탈이 드러났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달리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