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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로츠뎀 Aug 23. 2024

어디에나 있고, 아무 데도 없는

괴물은 누구일까 _24


"삶은 이야기다. ...... 이야기에는 새 시작의 힘 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모든 행위는 이야기를 전제한다."

- 한병철, <서사의 위기> 중에서





연극성 성격장애로 추정되는 동료 직원의 집요한 음모와 변심한 사무보조원의 앙심, 그리고 우리 조직 감사과와 인사과의 집요한 '갑질'이 뒤엉켜 일어난 이번 일을 겪으면서 저와 p에게 든 생각은 이런 것이었죠.


'어떤 사람에겐 평생 한번 일어날까 말까 한 일이 어떻게 우리에겐 두 번이나 일어날 수 있을까?'

'때론 힘에 부쳐도 그저 묵묵히 참고 열심히 일했는데 왜 P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그때 해당과에 모인 그 사람들은 하필 왜 최악의 조합이었을까?'

'넷플릭스 드라마 <글로리>가 다룬 이야기와 이 일이 다를 게 뭐가 있을까?'

'갑질 괴롭힘 피해는 P가 봤는데 기가 막히게도 오히려 P가 왜 '갑질 부당행위 가해자'로, '업무기피자'로 몰려 '추방'되어야 했을까?' 

'그때 해당과에 이미 넘치는 간식들 이외에도 그들이 각자 사달라는 '루카스 나인 라떼', '스벅 커피', '조지아 커피', '황태 콩나물 국밥', '단백질 음료'를 P가 군말 없이 구비해 사무실을 편의점처럼 가꿨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이미 선반에 가득한 미니 약과, 견과류, 소시지, 초콜릿, 햇반, 짜장, 누룽지, 시리얼, 컵밥 말고도 또 다른 '먹고 나면 아침 먹은 듯 거뜬한 거'를 알아서 채웠더라면 그들은 P를 불편해하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이런 극적인 사건의 원인이 그들이 아니라, 그들이 원하는 '까까'를 회사에서 군말 없이 챙기지 못한 P에게 있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이런 생각들이 성폭력의 원인을 가해자의 폭력성, 가해자의 욕망과 범의에서 찾지 않고 피해자의 행실과 용모에서 찾는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또 갑질 괴롭힘 피해자는 어디에나 있는데 갑질 괴롭힘을 했다는 가해자는 아무 데도 없다는 생각도 들고요. 제가 사내 게시판에 지난해 재외선거과에서 있었던 P에 대한 간식 관련 갑질 괴롭힘을 처음 폭로했을 때, 그 가해자로 추정되는 직원들의 태도가 그랬죠. 자신들의 갑질 괴롭힘은 절대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P의 행실과 평판에 대한 근거 없는 인신공격과 비난을 자행하더군요. 마치 자신들은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할 '업무 기피자'에게 응징을 가한 것뿐이라는 태도였죠. 드라마 <글로리>에서 괴롭힘 가해자들이 피해자들에게 당당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제가 지적한 문제점들에 대해선 논리적으로는 반박할 수 없으니, 제가 올린 글의 내용이 아니라 저와 P에 대한 인신공격을 하는 것이었죠. 논점을 흐리는 전형적인 '메시지를 논박할 수 없을 때는 메신저를 공격하라!'는 식의 저열한 대응이었죠. "이번 일을 계기로 자신들을 돌아보라"는 둥, "살다 보면 더 억울한 일도 많은데 이렇게까지 소란을 피울 일이냐?"는 둥, "선거를 앞두고 직원들끼리 다투는 게 보기 좋지 않다"는 둥.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그 문제의 진위여부를 가리고, 감사나 인사조치의 문제점, 당위성을 따져보는 일은 전혀 안중에도 없고 그저 문제를 회피하고 은폐하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더군요.


물론, 제가 게시판에 올린 글의 핵심 요지는 '우리 조직의 감사부서나 인사부서는 일부 직원들의 갑질 괴롭힘 문제를 적절하게 다루지 못했으며, 오히려 '감사'나 '인사 조치'라는 명목으로 '갑질 괴롭힘' 피해자를 중앙에서 '퇴출'시킨 것은 매우 부당한 조치'라는 점이었죠. 따라서  제 글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대응한 직원들은 소위 '이해 관계자'인 감사과나 인사과 직원들, 그리고 해당과의 가해자들이었을 것입니다. 일반 직원분들은 이런 일에 큰 관심도 없거니와, 또 복잡한 인간관계 문제에 엮이고 싶지 않은 보통사람들의 본성상 자기 일처럼 꼼꼼히 글을 읽어보는 분들도 많지 않았겠죠.


'용수철 주무관 J'처럼 제가 올린 글에 매우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저와 피해자인 P를 기를 쓰고 공격해야 하는 분들은 '이해 당사자'이거나 저의 글에서 '갑질 가해자'로 지목된' 분들이죠. 그분들은 아마 사활을 걸고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 글의 내용에 대한 논리적인 반박보다는 저와 P에 대한 비난과 인신공격에 열을 올렸던 것이고요. 결코 자신들의 '갑질 괴롭힘' 행위가 드러나서는 안되기에 그분들은 아예 지난해 초 재외선거과에서 P가 당한 갑질 괴롭힘 행위 자체가 없었다는 둥, 감사과의 일부직원들만 대상으로 한 그런 편향적인 감사 자체가 없었다는 둥. 오직 부인과 자기 최면으로 일관하더군요.  피해자는 분명 여기 있는데 가해자는 그 어디에도 없는 기묘한 상황인 거죠.





우리 사회에서 유독 많이 발생하는 정서적 폭력인 갑질 괴롭힘 사건은 그래서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찾아내 그 책임을 묻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대한항공 '땅콩 회항' 등을 비롯한 수많은 재벌가의 갑질에서부터,  파일공유 사이트 회장님의 엽기적인 갑질과 최근 논란이 된 '개통령'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21세기는 과히 갑질 괴롭힘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네요. 옥스퍼드 사전에 '갑질(gabjil)'이란 우리말 표현이 등재될 정도로 갑질 괴롭힘은 우리 사회의 특수성을 반영한 우리만의 독특한 사회병리 현상으로 봐도 될 듯합니다. '갑질 괴롭힘'이란 상대적으로 우위에 놓인 자가 자신의 위계질서를 이용해 타인을 괴롭히는 것이죠. 그래서 조금이라도 자신이 타인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다고 생각하면 쉽게 갑질의 유혹에 빠집니다. 상급자는 하급자에게, 민원인은 공무원에게, 고용주는 고용인에게, 고객은 점원에게, 정규직은 비정규직에게, 입주민은 경비원에게. 분양받은 입주민은 임대아파트 거주민에게,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 갑질 괴롭힘 현상은 갑질 괴롭힘 피해자는 도처에 널려 있는데 갑질괴롭힘 가해자는 쉽게 찾을 수 없는 보편적이면서도 특수한 사회 병리현상이 돼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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