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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으로 해외 여행 간다, [부산]

마음이 아플 때는 문센 제약

문센의 추억.


쾌적한 상업 시설의 8층.

엘리베이터가 각 층에서 멈추며 사람들이 하나 둘 빠져나가고, 남은 서너명이 꼭대기 층에 다다른다.

종종 걸음으로 도착한 나는 머뭇거리며 문을 연다.

그러자 대여섯의 어르신들이 나를 반긴다.


그들의 평균 연령은 68세. 성별은 모두 여성.

50대 초반인 한분이 평균 연령을 떨어뜨리지만 않았다면 평균 연령은 70세가 훌쩍 넘었을 것이다.

21세기가 된지 20년이 흐른 2021년, 아줌마와 할머니를 아우르는 상징인 힘세고 오래가는 가성비 파마를 하신 분은 단 한분도 없다.

다섯 분 모두 자연스럽고 세련된 노년의 모습이다.

억지 스럽거나 거스르는 법이 없이 저마다 개성이 녹아있다.

최고령은 주름 하나 없어 보이는 점잖은 82세.

세상의 모든 불안과 역마살을 단숨에 잠재울 만한 여유와 내공, 대지에 발붙여 단단하게 버티는 산 같은 아우라를 가지신 분이다.

그 분의 호는 석향.

돌......돌내음?!

아닌게 아니라 정말 문을 열자마자 다소 명상적인 돌풀같은 향내가 은근하게 퍼진다.

먹향이다.


머리에 피도 안마른 본인이 문을 열자 내부는 적잖이 동요하는 분위기이다.

마치 007영화의 본드걸을 연상시키는 어르신 스파이물의 미스테리한 인트로 같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바로 본인의 수상한(?) 취미 생활이 시작된 시점이다.

그곳은 바로 한국 백화점 문화의 자부심이자 꽃, '문센'의 사군자 클라스이다.



문센


문화 센터의 줄임말인 현대 국어(?) 스타일의 용어인데 처음 들었을때는 다소 의아했다.

얀센같은 제약 회사일까?

아니면 한센병 환우를 돌보는 의료 커뮤니티 같은 곳일까?

아니면 끝에 -센이 붙었으니 오리지날 코리안 랭귀지에서 유래한 고유어는 아닌것 같고 뭔가 북유럽 스타일의 전문 교육 기관일까?

-센으로 끝나는 북유럽 이름은 영어로 -슨이라고 읽으니까 얀센은 존슨 (미국어로 쟌슨)이 된다. 그리고 요한슨, 한슨, 앤더슨 같은 이름 또한 북유럽 이름의 영어식 표기가 된다. 그렇다면 영어식 표기는 문센이 아닌 문슨이 되는 걸까?

도대체 문센의 정체는 뭐길래, 문슨에서 머선일(?)이 벌어지길래 그렇게들 다닌다는 것인가?


종일 우는게 본업인 젖먹이 아이를 키우는 아이 엄마도 문센을 다닌다고 한다.  

아기를 돌보면서 뭔가 전문적인 어감인  '문센'이라는 기관까지 다니다니 참 부지런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것이 문화 센터를 줄인 말이라는 것을 듣고 또 한번 놀랐다.

뭐?

백화점에서 수업을 듣는다고?!


물론 지역 사회의 동사무소 등 곳곳에 산재해 있는 문화 센터지만 백화점이라는 상업적 구심점이 문화 센터의 역할 또한 톡톡히 해 낸다는데 대해 놀라웠다.

그.래.서.

한국에서 지내게 된 김에 나도 그 문센이라는 것을 한번 체험해 보기로 했다.



영국 교포 아줌마의 문센 체험기


문센은 말로만 듣던 대로 정말 놀라운 곳이였다.

굉장히 다양한 수업을 제공하는 것에 놀라고 정말 저렴하다는 것에 또 놀랐다.

정말 없는게 없어 다 배우고 싶은 것이 문제다.

운동부터 미술, 요리, 심지어 인문학 강의 까지.

혼자 지내는 한국 생활이였지만 전혀 외로울 틈이 없었고 오히려 바쁘기 까지 했던 이유는 바로 그것, 문센이였다.  

젖먹이 부터 80대 까지 모든 이가 드나드는 바로 그곳, 문센.


필자가 사는 런던의 백화점에는 문센이 없다.

 물론 구청에서 운영하는 평생 교육원 같은 곳이 있지만 이렇게 다양한 커리큘럼은 제공하지 않는다.

백화점 또한 소비 그 이상을 원하는 '고상한 소비자'의 문화욕구를 채워주기 위한 컬쳐 이벤트는 있지만 문센은 없다. (웨이트로즈 같은,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소비자를 위한 업스케일 슈퍼마켓에서 주관하는 베이킹과 쿠킹 클라스는 있지만 가격이 비싸다. )

 이렇게 다양한 문화 체험과 수업을 남녀노소 막론하고 한곳에서 원스톱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곳도 극히 드물거니와 비용은 비교조차 불가하다.

유한 마담의 사치스러운 취미 생활이라 할 만한 것의 문턱이 이렇게 낮다니...


한국에서는 고품격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기회와 리소스가 정말 풍부하고 대중적이다.

물론 문센을 드나들 시간적 여유 또한 안정적인 자본이 받쳐줘야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주말이나 퇴근 후 시간을 내어 참여 할 수 있는 옵션이 있다는 것 자체가 부러울 따름이다.

지역 사회에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문화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풀뿌리 문화' 시스템의 기능을  해 내는 문센은 신통방통한 곳인 것 같다.


K-대중문화의 저력이 세계에서 빛을 바라고 있는 것이 이제는 놀랍지도 않다.

K문화의 저력은 바로 소수의 엘리트 예술가가 아닌, 수준높고 까다로운 취향을 가진 다수 대중의 적극적인 문화 참여가 그 비결이 아닐까 한다.

한국 대중의 입맛에 맞추는 치열한 경쟁과 필터링의 과정을 이미 거친 K문화 상품은 일정 이상의 퀄리티를 보장하는 KC 인증마크를 이미 단 셈이다.

여기서 다수 대중이 풀뿌리 문화 시스템인 문센과 각종 문화 컨텐츠 등을 통해 생산과 소비 인프라를 구축하고 활발한 문화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 또한 그 저력을 저변에서 지탱하고 있는 요소 중 하나가 아닐까?




문센의 사회 문화적 기능 이외에도 나는 개인적으로 그 혜택을 톡톡히 보았다.

그 당시 힘들고 지쳐 있는 상황이였는데, 그래도 삶의 대한 애착을 붙들어 매고 정신줄을 부여잡을 수 있도록 큰 역할을 해 낸 것이 바로 이 문센이였다.

일주일에 몇 시간을 온전히 한가지 활동에 몰두하다보면 속시끄러운 생각과 감정도 거짓말처럼 잠잠해 진다.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마음이 시끄럽고 현재를 음미하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다면 무엇인가를 배우고 몰두할 수 있는 이러한 활동을 추천한다.


현재에 온전히 몰두 할 수 있는 이러한 활동 자체가 마음챙김 (mindfulness)이자 생활 명상 활동이다.

현대 뇌 과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마음의 모드를 바꾸는 이러한 뇌의 활동이 장기적으로 반복되면 뇌의 신경생물학적 기능과 활동 자체가 재구성 된다고 항다. 마치 뇌를 '리모델링 하듯이'. -겉만 놔두고 싹바꿔-


마치 매트릭스 영화나 과학 스릴러물 같은 엉뚱한 이야기 같지만 이미 과학적으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진 분야이다.

한국 체류후 영국에 돌아왔을 때 긍정적인 방향으로 '뇌를 리모델링하고' 돌아온 내 모습에 남편의 의아한 반응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평소에는 화를 낼만한 일에도 아무 말 없이 씨익 웃는 모습에 '뇌 성형? 혹은 뇌에 보톡스 맞았니?' 하는 그런 표정을 지은 그 사람. (Hoxy, 공포에 질린 표정이였을까?)




인지 행동 심리치료에서, 다른 복합증이 없는 우울증 내담자에게 초기에 처방하는 행동 요법 중 하나가 활동 활성화 요법 (Behavioural Activation) 이다.

흔하고 상식적이기도 한 조언 중에서,  '운동도 하고 상쾌한 바람 쐬면서 몸을 좀 움직이면 기분이 나아질거야.'라는 요법인데 치료적 접근을 할 때에는 임상적 효과를 극대화 시킬 수 있는 요소를 체계적으로 개개인에게 맞춤 적용하는 요법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물론 치료시에는 이러한 세부 사항의 체계적이고 섬세한 플랜과 실질적 적용이 아주 중요하고 여기서 내담자와 치료자와의 관계가 큰 역할을 한다.)


활동 활성화 요법에서 활동량을 늘여주는 것이 그 과정의 일부인데, 그렇다고 무턱대고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성취감, 즐거움, 유대감의 요소를 고루 증진시키는 활동에 주목한다.


심리 치료자로서 심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는 내 자신을 위해 개인적으로 내린 처방은,

배움을 통한 성취감,

억지로 짜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공유하는 공통의 관심사에 대한 대화, 그리고 의미있는 침묵을 함께 나누는 몇시간의 유대감,

그리고 무언가에 몰두하고 표현하는 즐거움

이 셋을 모두 공략하는 활동 활성화 요법이자, 현재에 몰두하는 마음챙김의 멘탈 모드였다.

그리고 몇주, 내 자신을 공격하는 독백과 가상의 적과의 언쟁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나는 그것을 전혀 예상치 못한 곳, 문센에서 얻었다. 그곳에서 정신적 사치가 아닌 견디기 위한 예술 활동을 했고, 견디는 것 이상으로 다시금 삶을 음미할 수 있게 되었다.


내게 다국적 제약 회사가 만들어 낸 항우울제 프로작보다 강려크한 처방은 바로 문센이였다.

한국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그곳이지만 내게는

프로작보다 문센.

얀센보다 문센.

(*참고로 항우울제 프로작은 얀센이 생산하지는 않는다.)


오늘도 주방에서 난을 치며 문센의 추억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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