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뭔가가 빠져있다.
할머니와 딸래미가 나란히 손을 잡고 있는 꿈을 꿀 때가 있다.
만 6세가 훌쩍 넘은 딸아이는 앞니가 다 빠져서 잇몸이 훤하고
68세 권태순씨는 틀니를 몽땅 빼서 잇몸이 훤하다.
강원도 함백.
할머니와 둘이 보낸 깡촌의 추억이 물어다 주는 심상 중의 하나는 그렇게 낭만적이지만은 않은데, 아침마다 손바닥 만한 양은 양푼이 안에 덩그라니 놓여있는 위아래 틀니세트가 그것이다.
노년에게 틀니는 신체의 일부이자 정체성에 큰 부분일텐데, 어찌된 영문인지 68세 권태순씨는 감나무 할매집에 갈땐 틀니를 끼웠다가 새비재 넘어가서는 뺐다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
이가 꽉 들어 찼을 때는 할머니도 어른의 위엄을 갖추어 제 깐에는 말을 잘 들어야겠다 싶다가도 이가 다 나가서 합죽할 때면 언제 그랬냐는 듯 반존대를 섞어가며 까불거린다.
그렇게 틀니 셋트를 한순간에 덜렁 덜어내고 나면 입이 우묵하게 들어간 할머니는 여섯살 짜리 아이의 눈에도 그렇게 아기처럼 만만하고 순진무구할 수가 없다.
요 앙큼한것이 쉴새없이 주껴대도 하는 말마따나 맞다 틀리다 할 것 없이 ‘글쎄…‘ 하고 웃어 넘기는 할머니의 능청스러운 얼굴……
그 모습이 마흔이 넘은 지금은 그렇게 위안이 될 줄이야.
매일 아침 할머니가 틀니를 구석구석 칫솔질을 하는 것처럼,
나도 속시끄러운 날이면 머릿속을 통채로 꺼내어 물을 채운 양푼이에 두었다 싹싹 비벼 씻어내 버리면 좋겠지.
못 볼걸 본 날은 사람 손 하나 타지 않은 강원도 산물에 두 눈을 하루 쯤 담궈 놓아도 좋겠다.
영문도 모르는 눈알이 양푼이 안에서 돌돌거리는 것을 기깔나게 행궈버리는 것은 상상만 해도 속이 시원하다.
내 딸은 이가 빠졌고 할머니는 틀니가 빠졌고 내 남편은 머리가 빠졌다.
이빠진과 틀니빠진, 그리고 머리빠진...우리는 그렇게 뭐가 하나 빠져있다.
그래도 귀엽다.
뭐가 하나 빠져있어서 그렇게 귀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