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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퀴즈 촬영 비하인드 스토리

왜 하필 촬영 전날 마라샹궈를 먹었을까?

꿉꿉한 7월 장마철에 한국에 도착했다.

무슨 일로 아이까지 떼놓고 급하게 한국을 가는지 묻는 친구에게 대답했다.

"응, 책팔러 가."

이 더운 날, 80년대 처럼 007가방과 팜플렛을 가지고 집집마다 다니는 영업 방식이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인가.

우리에게는 에어컨이 빵빵 나오는 스튜디오에서 몇십만 구독자를 거느리는 유튜브 인플루언서가 있다!


이 구역 마케팅 대마왕 금숙씨는 온 몸을 불사지르며 전두 지휘에 나섰고 나는 열심히 재주를 굴렀다. 오랜 기간 동안 진료실에서 내담자를 보는 일만 했지 몇 십 만명이 보는 매스 미디어는 처음이라 긴장되어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럽고 묵직하게 느껴진다.



유튜브를 한 편씩 찍고 호텔방으로 돌아오면 '아...더 잘 할 수 있었는데.' 하며 이불킥을 했다. 혹시 헛소리 한 건 아닌지, 시원하게 팍팍 긁어 주는 답변이 아닌 것 같아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처음이라 미숙한 내 모습과 오글거림으로 유튜브에 업로드 된 나의 영상을 한동안 보기 힘들었다. 모든 것을 다 주고 싶지만 15분 가량의 짧은 시간 안에 '빠른 해답'을 줘야 하는 유튜브의 특성상 깊은 이야기를 하기는 힘들다. 모든 사람을 만족 시킬 수 없고, 모든 이야기를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래도 아쉽기만 했다.

거기다 눈화장이나 쉐딩이 전혀 없이 평소대로 간단한 화장만 한 상태에서는 강한 조명을 정면으로 맞을 때 눈코입의 입체감이 화면에서 모두 사라지는 흑마술에 걸린다는 것을 나는 전혀 몰랐다. 그렇게 어린이(?)처럼 보이는 내 얼굴이 또 어색하기만 했다.






하지만 불편함과 두려움은 대면해야 하는 것...배움이란, 실수 하는 서툴고 못난 내 모습이라도 허락해 주는 것이지 않은가?

구석에 앉아 흐린눈으로 내 모습을 꾸역꾸역 계속 보니 어느새 익숙해 졌는지, 이제 객관적으로 내 모습을 모니터링 하며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수정할 점을 메모하게 된다. 그리고 처음인데 이만하면 최선을 다 했다며 스스로를 격려한다. 빡빡한 일정을 그래도 꿋꿋이 해 낼 수 있었던 건 산 처럼 떡 버티고서 무덤덤 듯 많은 것을 포용하는 소라씨의 흐뭇한 엄마 미소 덕이 아니었을까. 무엇보다도 돈으로 결코 살 수 없는 좋은 인연을 만들었고 새로운 경험을 했다는 데 의의가 있었다. 출판과 마케팅 작업은 나 혼자서 절대로 되는 일이 아니다. 작가의 빛나는 순간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산통을 겪는 긴 호흡의 연속이다.





유퀴즈 팀으로부터 전화가 오다.


그렇게 2주간의 일정 동안 다섯개의 유튜브 방송과 강연, 매거진 인터뷰를 무사히 마치고 런던에 돌아왔다. 그리고, 17시간 동안 만 킬로미터를 날아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온 그 날...바로 그 날 새벽.

한통의 카톡이 도착했다.


소라씨: 쌤, 급하게 논의드릴 사안이 있어서 연락 드려요.

안젤라: 밤에 도착해서 바로 쓰러져 자고 일어났어요. 혹시 잡지 윤문 작업 때문인가요?

소라씨: 아뇨, 훠얼~~씬 크ㅋㅋ으으은 껀임당.

안젤라: 응? 몰까요?


무슨 일인지 뜸을 들이는 소라씨와 급하게 전화통화를 했다.

"유퀴즈 섭외 요청을 받아서요."

친구가 농담처럼 했던 말이 예언이 될 줄이야. 정말 뜻밖의 제안이었다. 그런데 나는 이미 런던에 도착했는데...그래도 유퀴즈 잖아!

유퀴즈 출연은 출판사가 원한다고 해서 청탁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유퀴즈 팀으로 부터 '간택'받아야 하는 것...

"네, 당장 갈게요."

이렇게 일주일만에 오직 유퀴즈 촬영만을 위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갔다. 한달 사이에 한국을 두번 간 것도 태어나서 처음이다.




촬영 며칠전: 사전 준비


방송을 앞두고 유퀴즈 작가님이 전화를 주셨다.

흐름을 잡고 대본을 작성하기 위한 사전 준비 작업인데, 그 짧은 기간 동안 미리 책도 읽어 보셨는지 세부적인 부분까지 몇 시간 동안 꼼꼼하게 질문 하신다. 작업은 밤낮 없이 이어지는지 촬영 전날에는 거의 하루 종일 출연자와 소통하며 내용을 다시 확인하신다. 내가 런던으로 돌아가고 난 후에 시차가 있음에도 계속 연락을 취하며 검수와 확인 과정을 거치는 것을 보면 새벽까지 일하시는 것 같다. 매주 빠짐 없이 시청자와의 약속을 위해 이런 강도 높은 작업을 쉴 새 없이 이어간다니...수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마음에 나도 최선을 다해 도와 드리겠다 작심을 하며 함께 자료 조사를 했다.


촬영 당일


한달 사이 세번째 시차적응 때문인지, 촬영 전날의 긴장 때문인지 계속 3시간 이상을 잘 수 없었다. 새벽 4시 까지 말똥말똥 하게 천장만 바라보다가 7시에 일어나니 촬영 당일 소라씨는 새벽같이 출동해서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가족이 아니면 보여주지 않는 쌩얼을 소라씨에게 트고, 아침을 간단히 해결한 후 촬영장으로 향했다. 소라씨에게 쌩얼이 매우 부끄럽다고 솔직하게 털어 놓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 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쌤, 맞아요. 부끄러울 만 하네요."라고는 말하지는 않을테니, 나는 이미 마음이 편해지려고 작정하고 뱉은 말이리라.  


그런데 나는 왜 하필 중대한 촬영 전날 마라샹궈를 먹었을까. 그것도 무시무시하게 매운 맛을...

촬영장을 향하는 길에 긴장 때문인지 마라샹궈 때문인지 복통으로 힘들어 잠시 쉬어 가야 했다. 안그래도 긴장했는데 복통 때문에 촬영 중간에 중지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에 식은땀이 찔끔찔끔 난다.




촬영장 도착 9시 반. 태어나서 처음으로 전문가의 손길로 헤어와 메이크업을 받았다.

보통 유럽에서 메이크업을 받으면 모든 동양인 여성들은 루씨 리우가 된다. (참고로 저는 루씨 리우님의 걸크러시 스타일을 흠모하는 빅 팬입니다만…)

광대를 최대한 끌어 올리고 눈도 다 찢어 버리는 등 없던 눈코입도 깎아서 만드는 서양식 컨투어 메이크업이다. 이에 반해 한국식 메이크업은 아주 섬세한 '미세조각'으로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부각 시키는 것 같다.

헤어 메이크업을 받으니 신기하게도 식은땀을 줄줄 흘릴 정도였던 복통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날 나는 영국인도 열광하는 K 뷰티의 마력을 온 몸으로 느끼고 말았다. 지난 15년간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돌보아 왔는데, 나의 마음은 누가 돌봐주나 했더니 그걸 여기서 찾았구나!

"메이크업 선생님은 직업이 마법사 인가요?"

헤어 메이크업 담담자님에게 농담을 던지며 화기애애하게 준비과정을 마치고 나니 벌써 11시.

촬영 시간이 임박했다.



큰자기 유재석씨는 촬영 전에 이를 깨끗이 닦는 아주 깔끔하고 매너있는 젠틀맨이셨다. 목소리도 복식호흡을 하시는지 힘이 있고 분명했고 무슨 일을 하더라도 잘 하실 것 같은 단단하고 균형있는 매력을 가지셨다. 아기자기 조세호씨도 엉뚱한 듯 위트있고 마음이 예쁜 분 같았다. 보호 본능을 일으킨다고나 할까?!

서로 다른 매력을 지닌 두 분의 합이 착착 맞았다.


두 분 다 무척 친절하셨고 잘 이끌어 주셔서 무사히 촬영을 마쳤다. 대한민국 최고의 엠씨와 최고 실력을 갖춘 작가, 그리고 아무리 지루한 일상이라도 마법으로 바꿀 수 있는 편집 스태프를 동원했기에 내가 설사 금붕어 처럼 입만 뻥끗해도 꺽꺽 소리나게 재미나는 예능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분들이다. 이러한 생각에 다다르자 긴장이 사르르 녹았다. 그렇다면 내가 크게 할 일은 없고 그냥 이끌어 주시는 대로 몸을 맡기면 되기 때문에...어느정도 분위기를 타기 시작하면서 편안해졌다.




처음 방송을 하면서 느낀 점은 나의 분량인 20분 가량의 쇼를 만들어 내기 위해 이렇게 많은 스태프가 이렇게나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는 점이다. 정말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주셔서 감사드린다.


혹시 유퀴즈 팀에게 폐를 끼칠까봐 유퀴즈를 촬영한다는 소식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예고편이 나올 때까지 가족 2인을 제외하고 극비에 부쳤는데...나중에 보니 얘기 해도 되는 내용인데 내가 괜히 오버한 듯 하다. 내게는 책임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 해야 하는 '업무'인데 여러모로 산만해 지고 흔들릴 까봐 촬영을 다 마치고 예고편이 나오고 나서야 비로소 후련한 마음으로 주변인 몇명에게 소식을 전했다. 그래도 축하 받으니까 뿌듯하다.


응원해 주신 모든 분들, 도와 주신 모든 분들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저도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어떤 방향으로 흘러 갈 지 모르겠지만 서두르지 않고 꿋꿋하게 가겠습니다.


8월 23일 유퀴즈 온 더 블록을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https://youtu.be/0APwIu8V2r0?feature=sha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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