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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리 May 09. 2023

첫 영감이 표지디자인으로  태어나기까지

어설픈 시안이 난무하는 "로스트 보이스 가이" 북디자인 이야기

책덕 출판사에는 예전부터 책표지 디자인 과정을 기록하는 전통(?)이 있다. 첫 책 미란다처럼의 시안 발전 기록을 공개했을 때는 디자인 하는 분이 감탄의 댓글을 달아주셨다. 어떻게 이렇게 용기있냐고...(그분은 좋은 뜻으로 한 말이지만ㅎㅎ) 그때는 디자인의 '디'자도 모르고 마구잡이로 만들 때라 나는 부끄러움도 모르고 엉망진창 시안을 다 올렸었다.


미란다처럼 책표지 구상

미란다처럼 컨셉 표류 과정

미란다처럼 수없이 많은 시안

티나 페이의 보시팬츠 컨셉 구상

민디 프로젝트 표지 구체화 과정


그동안은 내가 디자이너라는 정체성이 한 1% 정도였기 때문에 디자인 과정을 드러내는 일이 별로 꺼려지지 않았다. 이번 표지도 마찬가지다. 그냥 나는 사람들과 함께 책을 만들고 저자의 글을 읽으며 느낀 것, 그리고 책덕만의 개성과 의도를 이케저케 잘 섞어서 하나의 포스터 같은 이미지로 만들고 싶었고 그 과정을 나누고 싶다.  


처음에 컨셉을 잡을 때 생각한 건

.영국의 인디, 브릿팝, 워킹클래스 느낌(그게 뭔데...) 약간 빈티지하면서도 팝!한 컬러, 컨버스화 바랜 청색, 영국 국기랑 뭐 그런 거...

.인디 영화 포스터 같았으면 좋겠다. 저자가 스탠드업 코미디언이기도 하니까 뭔가 무대에 서 있고 연극이나 인디영화 같은 공연 포스터 같으면 활용하기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해서 몇 가지 이미지를 찾아서 스크랩해 두었다. 보통은 핀터레스트에 보드를 만드는 데 이때는 그냥 검색해서 저장해두었다. 리 리들리의 유머랄까 말하는 스타일이 영국 펑크 감성과도 느낌이 비슷해서 그린데이의 앨범 자켓도 찾아보고 내가 좋아하는 어웨이위고 영화 포스터도 찾아보고.


.번역가팀에서 대부분 리 리들리의 사진이 들어갔으면 해서 리 리들리의 모습과 일러스트를 어우러지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리 리들리 사진을 찍은 작가에게 메일을 보내서 직접 허락을 구했다.)

.키 컬러는 사이언C 100%로 선명하고 경쾌한 파란색으로 잡았다. 뭔가 리 리들리의 이미지와 어울리는 느낌. 파란색 티를 자주 입어서 그런가? 그리고 감정에 호소하는 느낌과 거리를 두고 싶었고 유쾌한 이미지는 살리고 싶어서 이 파란색을 택한 것 같다. 특히 내지에 2도로 이 색을 쓴 건 정말 마음에 든다. 처음 써본 프런티어 터프라는 종이가 원색을 표현하는 느낌이 엄청 좋았다.


본문 이미지 (실제로 보면 더 쨍하고 예쁘다)


파란색으로 색은 정하고 전체적인 느낌을 대충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아직 타블렛 사기 전이라 마우스로 느낌만 잡아봄.)


아이디어 단계 스케치


아무래도 배경으로 쓸 일러스트의 감도를 높이려면 펜 타블렛으로 그려야 좋을 듯했다. 표지 이미지를 위해 거금을 들여 와콤 타블렛을 샀다. 40만원대 돈을 쓰려니 후덜덜 했지만, 천년만년 써야지.


처음에 파란색만 사용한 표지 시안들


처음에 잡은 이 구도가 거의 최종 표지까지 이어졌다. 스케치 느낌이 나쁘진 않은데 뭔가 강렬함이랄까 포인트가 확실하지 않아서 몇 번을 다시 그리고 브러시 굵기를 조정했다.


일러스트는 책에 나오는 리 리들리와 관련된 소품과 리 리들리가 어린 시절을 보낸 동네 풍경,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스태드업 코미디 공연장 거리 등을 자연스럽게 배치해봤다. 그리고 리 리들리가 둥그런 단상 위에 올라가 있었는데, 파란색으로 그려서 그런가 무슨 얼음 빙벽 같기도 하고 좀 묘했다. 뭐냐고 물으면 그냥 리 리들리만의 무대다, 라고 설명했지만 뭔가 찝찝한...


결국 무대를 삭제하고 제목 타이포만 아래에 깔기로 했다. 이때 선택한 폰트는 바로 '창원단감아삭체'인데, 신의 한 수처럼 다가왔다. '로스트 보이스 가이'라는 타이포를 쓴 균형감이랄까 입체감이 좋았달까. 그래서 무대를 치운 자리를 잘 메워주었다.리 리들리는 몸 왼쪽이 전체적으로 약해서 똑바로 걷지 못 하는데 그걸 가지고도 장애 드립을 한다. 그래서 마지막에 제목 타이포를 살짝 기울여주었다. 세상도 기울어 있으니까!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표지 시안


마지막쯤에는 점자 제목 등 이런 저런 요소가 많아지면서 점점 산만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다시 다 빼고, 키컬러를 중심으로 내가 원하는 분위기가 나는 색조합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때 찾은 것이 바로 영화 "미드90"의 포스터다. 보는 순간 딱 이 색감이야! 영국 인디(?) 느낌이야!(라고 했지만 미국 영화임)라고 외치고 컬러를 따와서 적정한 비율로 배분해보았다.


영화 "미드90" 포스터들


일러스트에도 스크래치 그림(검은 크레파스로 덮고 이쑤시개로 긁는 그거)처럼 세 가지 색을 나눠서 깔아보았는데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하단에 점자 제목을 적느라 처음 만들었던 비율과 좀 달라졌지만 이 점자 제목의 존재감을 나는 꼭 드러내고 싶었다. 있는 듯 없는 듯 넣기는 싫었다. 내가 이 책표지를 통해 가장 의도적으로 전하고 싶은 것이었다. '다수만 쓰는 언어만이 표지에 들어간다'는 생각을 조금은 깨보고 싶었다. 우리에게는 편하게 읽히는 이 모든 한글 텍스트가 의미 없으며 점자로 세상을 읽는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당연하지만 쉽게 망각하는 사실이 드러나기를.

그러니까 실은 이 점자 제목은 시각 장애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비 시각 장애인을 위한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점자 에폭시가 많이 도드라지지 않아서 뒤늦게 붙이는 설명이 아니다! 진짜로!)


"로스트 보이스 가이" 최종 입체 표지

이런 여러 가지 생각의 타래가 이어져"로스트 보이스 가이" 책표지는 이런 모습으로 세상에 등장하게 되었다. 많이 사랑해 주시라~  



뒤표지와 책등 책날개도 공개해 본다.


"로스트 보이스 가이" 책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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