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은 유일한 해결책이 아니다.
세 달 전, 마케팅팀에서 서포터경험팀으로 부서를 이동했다. 서포터는 우리 플랫폼에서 펀딩을 오픈하는 메이커를 응원하고 펀딩에 직접 참여하는 유저를 일컫는다. 이 유저들의 경험을 개선하기 위해 서포터경험팀이 신설되었고 첫 팀원으로 합류했다.
마케팅팀에서 IMC 캠페인을 진행하던 당시, 여러 서포터의 반응과 실제 데이터를 분석하면서 마케팅팀 안에서 해소하기 힘들었던 아쉬운 점들을 발견했다. 서비스 내외부에서 더 꼼꼼하게 대비하고 연결을 만들면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겠다 싶은 부분들이 눈에 띄었다.
답답한 건 눈 감고 넘어가는 성격이 못되어서 첫 번째 그리고 두 번째 IMC 캠페인을 진행하는 동안 마음에 걸렸던 아쉬운 점을 캠페인 중간에 정리해서 보고했고, 몇몇 의견들이 몇몇 반영되어 이후 액션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친구 초대 이벤트)
물론 여전히 풀지 못한 숙제들이 남아있었다. 브랜드의 본질과 연결된 탄탄한 브랜딩과 브랜드 마케팅도 반드시 필요하지만 마케팅은 수단 중의 하나이지, 단 하나의 해결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많은 비용을 들여 캠페인을 진행했지만 이 메시지들이 마케팅팀에서 관리하는 채널과 콘텐츠에만 담겨 있고, 실제로 유저가 서비스 안팎에서 하고 있고 또 할 수 있는 여러 경험에 제대로 녹아들어 있지 않다면 브랜딩과 마케팅을 하는 의미가 있을까? 그렇게 유입시킨 고객의 LTV는 지속 가능할까?
마케팅은 최전선이다. 고객을 바로 앞에 마주하고 여러 매체와 콘텐츠로 메시지를 전하고 매출을 일으켜야 한다. 이 최전선에 힘을 잘 쏟기 위해서는 중앙이 안정되어 있어야 한다. 중앙의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고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는 상황에서 최전선에만 몰두하게 되면 내부의 균형이 무너지기 쉽다.
따라서 우리 브랜드의 기반을 탄탄히 다지기 위해서는 제품 중심으로 돌아가는 중앙 시스템에서 최전선을 지키는 마케팅 전략까지의 길을 잘 연결시켜 유저에게 일관된 경험을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 명의 유저를 얻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새로운 서비스는 줄기차게 등장하고, 기술력은 끝을 모르고 진화한다. 광고 구좌의 수보다 광고 경쟁자의 수가 더 크게 늘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 광고/마케팅에만 사활을 걸어선 안 되는 것이다.
오늘날 비슷한 카테고리 제품의 퀄리티가 비슷해지고 브랜드 파워로 승패가 결정 나는 것처럼, (내로라하는 테크 기업의 각축장이었던 스마트폰 시장에서 브랜드 파워를 지닌 애플과 삼성 만이 제대로 살아남은 것을 보자!) 서비스 역시 고도화의 시간을 거치다가 비슷한 비즈니스를 하는 플랫폼들이 기술력의 정점에 이르게 되면 그다음 경쟁력은 브랜드 파워에서 결정 날 것이다.
이미 시장의 흐름도 이런 방향으로 흘러가는 추세이며,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브랜드들이 유명 모델을 앞세워 TVCF 캠페인을 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배경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이제 브랜드 파워는 단순한 캠페인에서 결정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캠페인에서 전하는 메시지와 서비스에서 체감할 수 있는 경험에 괴리가 존재한다면 똑똑한 유저들은 그 차이를 금세 알아채고 실망하고 이탈한다. 이들은 아무리 리타겟팅 광고로 다시 유혹하려고 해도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
때문에 기존 고객과의 관계를 관리하는 CRM 액션이 매우 중요하며, 이는 브랜드 경험 설계와 마케팅에서 더욱 중요한 역할을 차지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CRM을 ‘푸시 마케팅’ 정도로만 여기는 경우가 있다. CRM은 말 그대로 Customer Ralationship Management, 고객 관계 관리다. 푸시를 내보내더라도 고객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활용해 지속 가능한 관계를 맺는 것에 목표를 두어야 하는데, 냅다 메시지를 내리꽂으면서 이걸 CRM 마케팅이라고 한다면 당황스럽기 짝이 없다.
CRM은 마케팅 영역에 속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지만 유저에게 긍정적인 경험을 전달하며 브랜드와 유저의 지속 가능한 관계를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경험 기획의 영역과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개인화된 메시지를 내보내 리텐션을 높이는 CRM 액션은 마케팅 영역에 속하고, 서비스 내에서 할 수 있는 경험과 CRM 채널을 연결하여 일관된 브랜드 이미지를 전달하는 액션은 브랜드 경험 기획 영역에 속한다.
유저에게 우리 브랜드의 가치를 서비스 안팎에서 잘 경험할 수 있도록 설계하고, 이를 통해 관계가 지속된다면 자연스레 리텐션과 LTV가 높아질 것이고, 리타겟팅 광고 비용은 낮아질 것이다. 더불어 기존 유저의 오가닉 바이럴과 소셜 프루프를 통해 신규 회원 비용이 낮아지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써놓고 보니 뻔한 이야기만 읊은 감이 있다. 그러나 늘 그렇듯 이론에 빠삭해도 실전은 어렵다. 풀어나가야 할 기존의 레거시들이 여기저기서 부유한다. 캠페인 기간 동안 제안했던 의견 중 반영되지 못한 내용에 갈증이 남아있던 찰나 서포터경험팀으로의 이동은 새로운 가능성의 시작이었다.
팀이 만들어진지 세 달 밖에 되지 않았지만 우리 플랫폼의 서비스를 아우르는 통합 메시지를 잡고, 우리 유저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설문조사를 하고, 핵심 브랜드 가치와 경험을 정의한 후 다양한 서비스와 B2B와 B2C까지 함께 연결하여 이를 전달하기 위한 다양한 액션들을 해나가고 있다. 앞으로 우리의 경험 기획과 서비스, 마케팅이 만들어낼 시너지가 기대된다.
늘 그래 왔듯 본질에 집중하며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우리 브랜드 안에 담긴 메시지를 깔끔하게 전달하는 데에 몰입하자. 길게 늘어놓은 경험 기획이 필요한 이유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려니 애플의 6s 광고 카피가 떠오른다. 달라진 것은 단 하나, 전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