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 PO 세션을 보고 느낀 점
새로운 캠페인을 준비하면서 마케터의 역할에 고민이 많았다. 마케터의 카테고리는 브랜드, 퍼포먼스, CRM, 제휴 마케터처럼 점점 세분화되는데 마케팅이라는 업무가 이렇게 기능적으로 쪼개어 각자 맡은 역할만 수행해도 될까? 마케팅은 단지 빠르게 매출을 만들기만 하면 되는 걸까? 의문이 들었다. 마케터로서 내가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은 무엇일지 고민하고 찾고 메모한 내용을 정리해보면서 마음을 다잡고자 한다.
답을 찾지 못해 고민하던 시기에 가장 큰 인사이트를 준 콘텐츠는 토스의 PO 세션. 내 고민의 핵심에 있던 ‘매출과 방문자를 빠르게 늘리는 것이 마케터의 역할인가?’라는 의문에 길을 내주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첫 번째 파트는 Carrying Capacity 즉, 마케팅과 광고를 다 걷어내고 순수한 유저를 모을 수 있는 능력이라는 개념. 이 놀라운 개념은 업무를 하면서 느낀 문제의식을 단번에 꿰뚫어버렸다. 광고/마케팅을 껐을 때 매일 들어오는 유저 수와 MAU에서 이탈한 유저의 퍼센트만이 유의미하며, 때문에 이탈하는 고객을 줄이거나 오거닉 유저를 늘리는 것이 핵심이라는 이야기에 절대적으로 공감이 갔다. 유저를 자주 방문하게 하기 위해 푸시를 날리면 MAU가 느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이탈 유저 역시 늘어나기 때문에 유의미한 장기적 효과를 가져가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는 서비스의 업태는 달라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는 걸 느꼈다.
더불어 두 번째 세션에서 AARRR은 순서대로가 아닌 중간에서부터 보고 해결해야 한다는 관점 역시 신선한 충격이었다. 기존에는 신규 Acquisition을 만들고 이들을 Activate 하여 꾸준한 Retention을 끌어내는 것이 정석인데, 이 세션에서는 먼저 고객이 떠나지 않고 Retention을 만드는 서비스를 만들고, 이 고객들이 꽃길을 걸을 수 있게 Activate 한 다음 신규 고객이 지속적으로 들어올 수 있게 Acquisition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순서만 바꿨을 뿐인데 무엇을 해야 할지가 더 명확해 보인다.
떠나지 않은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해야 할 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는 유저 분석, 즉 타겟 페르소나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어떤 유저가 남고, 어떤 유저가 남지 않는지 그 본질을 이해하면 고객이 제품의 핵심가치를 경험한 순간이자 서비스를 계속 쓰게 되는 특이점인 아하 모먼트 Aha Moment를 발견할 수 있다고.
세션을 처음 봤을 때는 그렇게 답을 찾아 헤맸던 내용들이 명쾌하게 정리되어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서 멍하니 봤고, 두 번째부터 조금 정신을 차리고 이걸 어떻게 마케팅에 적용해서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지를 그려봤다. 명확한 건 이제 단순히 매출과 방문자를 빠르게 늘리기 위한 마케팅 액션은 점차 빛을 잃어갈 거라는 것. 이미 확보한 고객이 이탈하지 않도록 튼튼한 서비스와 믿을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들어야 이들이 꾸준히 유지되고, 이들 자체가 서비스의 기초 체력이 되어 새로운 고객을 유입시킬 수 있는 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진정한 마케팅은 마케터가 아닌 고객이 하는 게 아닐까?
며칠 전, 예전 동료와 티타임을 가졌다. 그는 소비재 브랜드로 이직했는데 이 브랜드는 유통/마케팅 과정의 거품을 덜고, 고객이 실제로 느낄 수 있는 가치인 제품력과 가격경쟁력에 투자해서 기존 고객의 리텐션이 매우 높다고 했다.
마케팅의 거품, 거품 같은 마케팅. 내가 하고 있는 마케팅은 거품일까, 진정성을 전달하고 있을까. 빅모델이나 인플루언서를 써서 우리 브랜드 이름을 말하게 하고, 수많은 매체에 비용을 태워 타겟이 방문하는 동선마다 우리 제품을 볼 수 있는 하는 행위에는 어떤 가치가 있을까. 그리고 나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마케팅이라는 업을 대해야 할까.
적절한 상황에서 적절한 예산을 들여 적절한 마케팅을 진행하는 것은 유의미한 성과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모든 일이 그렇듯 문제는 ‘균형'이다. 허공에 소리치듯, 거품처럼 사라지고 말 마케팅의 시대에는 끝이 보인다. 광고 비용은 점점 올라가고 경쟁은 점점 치열해진다. 타겟 규모는 유한하지만 그들의 관심사는 세분화되어 눈길을 사로잡기가 어려워진다. 단기간의 매출 증대와 유입의 증가가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존 고객들과의 관계 관리에 힘써야 한다. 그래서 정리해본 마케터로서 내가 해야 할 역할은 다음과 같다.
1. 기존 고객의 리텐션을 높이는 일관된 커뮤니케이션
기존 고객이 왜 우리 브랜드를 이용하고, 좋아하고, 퍼뜨리는지를 찾아 여러 매체와 콘텐츠에 그 포인트를 녹여 소통해야 한다. 일관성과 지속성을 갖춘 커뮤니케이션의 빈도를 높이면 고객에게 우리 브랜드가 자연스럽게 포지셔닝되어 리타겟팅 광고를 노출하지 않아도 유입을 끌어올 수 있다.
2. 고객 여정 경험 관리
서비스 내외부에서 브랜드 가치를 경험할 수 있는 터치 포인트를 꾸준히 관리해야 한다. 사람들이 감동과 진정성을 느끼는 요소는 생각보다 사소하다. 회원 가입 단계부터 앱 첫 화면, 프로필 화면 등 고객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여정에서 접할 수 있는 사소한 부분의 디테일을 계속 보완해간다면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누릴 수 있다.
3. 타겟 페르소나와 일치하는 신규 고객 발굴
신규 Acquisition이 꾸준히 이루어져야 서비스가 더욱 성장할 수 있다. 이때 단순 체리 피커가 아니라 유입 후 빠르게 충성 고객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은, 타겟 페르소나와 일치하는 신규 고객을 발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일단 기존 고객의 라이프스타일과 패턴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타겟이 반응할 만한 매체, 크리에이티브, 커뮤니케이션 방식 전략을 고민하여 빠르게 테스트하고 인사이트를 얻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실 말하기 조심스러운 주제였다. 그동안 마케팅의 미션은 너무나 당연하게 ‘신규 매출과 방문자 수’였고, 그 부분에 회의를 느끼는 것 자체가 직업적 책임감을 회피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고민이 되었던 부분은 정량적 결과를 만들고 싶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를 성장시키는 정량적 결과를 더 건강하고 지속 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방식이었다.
어떻게 하면 광고나 마케팅을 하지 않아도, 비용을 조금만 사용해도 그 이상의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우리 브랜드의 가치를 이해하고 공감하고 실행하는 고객을 만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거품 같은 마케팅이 아니라 우리 서비스와 제품에 이득을 줄 수 있는 마케팅을 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이 마케터로서 내가 해야 할 역할을 계속 되묻게 만들었다. 이 글을 쓰면서 Connector라는 단어가 계속 맴돌았다. 고객과 우리 브랜드와 서비스를 만드는 다양한 팀을 연결하는 역할. 서비스의 최전선에서 고객과 소통하는 마케터가 해야 하는 역할은 결국 홍보가 아닌 연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장이 변화하고 다양한 브랜드가 등장하고 경쟁은 치열해지면서 마케터로서 내 역할을 고민하는 과정의 심도는 더 깊어질 듯하다. 그럼에도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가치 있다고 여기는 일이기에 포기하지 않고 대충 넘어가지 않고, 때마다 내가 해야 할 역할을 되돌아보고 정의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