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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Jun 16. 2024

초여름은 잔디의 계절

 시골 부모님 댁에서 내가 좋아하는 부분은 붉은 스페인식 기와랑 잔디 입은 마당이다. 특히 푸릇하게 돋은 잔디 위를 사박사박 밟는 것도 기분 좋고, 우리 뿌꾸 맘껏 풀냄새 맡게 해 주면서 마당을 노니는 게 좋다. 이렇게 유유자적하게 잔디를 즐기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시골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깨닫게 되었지만.


 겨우내 풀 죽은 누런 잔디는 봄이 오면 신기하게 되살아난다. 시골의 비와 강렬한 햇살을 맞은 잔디는 금세 초록옷을 입고 키를 쑥쑥 키우는데, 5월만 되어도 마당 잔디가 우거져서 걷는데 방해가 될 지경이다. 이렇게 봄이 되면 한 달에 한 번씩은 마당 잔디를 밀어줘야 하는데, 잔디 밀기는 우리 집에서 내 담당. 꽤나 넓은 마당이라 중노동이다.


잘 쓰고 있는 보쉬 잔디깎이


 잔디깎이 기계는 6년째 보쉬를 쓰는데, 잔고장 나는 거 없이 정말 잘 쓰고 있다. 좋아하는 브랜드가 뭐냐고 물으면 누군가는 패션브랜드, 뷰티브랜드들을 이야기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보쉬다. 시골 살면서 뭔가 뚝딱 만들고 정리해야 하는 상황에서 오랜 기간 쓸 수 있는 공구와 기계는 든든한 힘이 된다.


 원래는 내가 잔디깎이 기계를 밀고 동생이 전선을 정리해 주는데, 지금은 동생이 중국에 가 있는 관계로 엄마가 전선 정리 담당이다. 잔디깎이 기계가 유선이라 전력이 필요한데 혹여라도 전선이 기계에 걸리거나 하면 사고가 날 수도 있기 때문에 반드시 2인 1조로 작업한다. 잔디조각이 신발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고무장화를 신고, 먼지가 일기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고무 코팅 목장갑과 소음용 귀마개를 쓰고, 긴팔 긴바지 모자 조합으로 모기와 햇빛의 공격을 막으면 준비 완료! 역시 보통 일이 아니다.


다듬어진 초록 잔디 마당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잔디를 깎는 작업을 하면 기분이 좋다. 기계를 밀고 지나가면 짧고 말쑥하게 정리되는 잔디들. 길게 자란 잔디와는 비교가 된다. 그 높이를 맞추면서 영차영차 잔디를 밀어 나가면, 사람의 덥수룩한 머리칼을 제대로 정리해 주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속이 다 시원하다. 잔디에 장식석이 있는데, 전에는 기계 톱날이 걸릴 까봐 피해 다녔지만 이제는 꽤나 노련해져서 장식석 부분도 가능한 한 내가 밀어버린다. 큰 구획을 기계로 밀고 데크 모서리 같은 세밀한 부분은 아빠가 제초기로 베어낸다. 땀이 흠뻑 나지만 그래도 깔끔하게 정리된 마당에서 갓 베어낸 잔디 냄새를 맡고 있으면 초여름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이런 노동을 9월까지는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씩은 해야 한다. 잔디 즐기기, 참 쉽지 않다.


뿌꾸네 마당에 잔디 깔기
잔디에 묻은 흙 털다가 모종삽이 댕강!


 이번에는 뿌꾸의 집 마당도 리모델링하면서 잔디를 새로 깔아주었다. 전에는 뿌꾸 집 아래도 다 잔디였는데, 어느 순간부턴가 그 흙바닥을 뚫고 두더지인지 쥐였는지 모를 애들이 자리 잡고 사는지, 뿌꾸가 계속 땅을 파고 난리를 피웠더랬다. 아니 세상에 뿌꾸가 얼마나 만만하면 뿌꾸 집 코앞에 자리를 잡고 사는지. 고양이가 아니라 개라서, 그것도 싸움 잘 못하는 개라서 보란 듯 뿌꾸 허락 없는 동거를 시작해 버린 걸까! 아무튼 뿌꾸가 화나가서 씩씩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안쓰러워서 뿌꾸 집 방향을 틀고 바닥을 새로 다져서 뿌꾸 집 앞에는 벽돌을 깔았다. 그리고 집 옆에는 새로 잔디를 깔아주기로 했다. 뿌꾸는 잔디 위에 드러누워 낮잠 자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빨리 빨리 좀 하지 못하겠꾸? 하는 듯한 뿌꾸의 하품
빨리 잔디 깎고 놀아주시꾸

 

 마당의 잔디를 네모나게 몇 조각 뜯는다. 삽으로 힘주어 테두리를 만들고 으쌰하고 퍼내면 잔디가 피자조각 마냥 딸려 나온다. 잔디가 물고 있는 흙의 양도 상당해서 A4용지 크기 정도 되는 잔디를 들어내는데도 힘이 잔뜩 들어갔다. 새로운 위치에서 잘 자라게 하기 위해 여분의 흙을 탈탈 털어내고 뿌꾸 집 마당에 잔디를 모자이크처럼 깔아주었다. 자랄 여유를 주기 위해서 약간의 간격을 두고 얹은 뒤, 발로 잘 다지고 물을 듬뿍 주었다. 얼른 제대로 자리 잡아서 뿌꾸의 정원 노릇을 톡톡히 해주었으면 좋겠다.   


뿌꾸네 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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