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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갑상선 암에 걸렸다

by 산들

회사에서 전 팀의 상사와 같이 점심을 먹고 있을 때였다. 엄마한테서 통화 가능하냐는 문자가 왔다. 우리 집은 보통 그룹 채팅방에서 이야기를 하고, 저녁에 통화를 하기 때문에, 급한 일인가 싶어 문자로 밥 먹는 중인데 무슨 일이냐 보냈더니 시간 될 때 전화 달라는 답이 돌아왔다. 왠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 엄마가 평일 낮, 내가 회사에 있을 때 전화하는 일은 흔치 않기 때문에. 최근에 건강검진 이야기 하다가 엄마가 추적검사 이야기 나온 거 검진받으러 간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 자리에서 뭔가 문제가 생긴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곧 마흔이 되는데, 이 정도의 나이가 되니 건강하셨던 부모님 건강에 하나 둘 문제가 생겨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밥 먹고 이동하면서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집 근처의 갑상선 쪽에 문제가 있는 걸로 보여서 상세하게 검사를 했고, 그 결과 큰 병원 가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뭔가 감이 왔다, 엄마가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니 갑상선 암으로 보이는데 딸에게 걱정시키지 않으려는 생각이었겠지. 떨어져 사니 이런 게 조금 마음이 아프다. 부모님에게 이슈가 되는 일을 바로 알지 못하고 늘 엄마아빠의 필터링을 한 번 거치고 알게 된다. 혹시 딸이 걱정할까 봐 말 꺼내는 걸 조심하시는 거다. 부모님에게는 내가 아직 어린 딸로 보이는지, 나도 이제 회사에서 차장인데. 엄마 문자 받고 속으로 오만 상상을 다해서 그런지, 엄마가 큰 병원 가봐야겠다는 말을 하셔도 생각보다 담담하게 통화할 수 있었다. 그래도 다른 곳 암도 아니고 갑상선 암이라니,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이번에 제대로 엄마를 서포트해서 믿음직한 장녀의 모습을 보여주겠다 다짐했다.


엄마가 이미 삼성서울병원에 초진을 예약해 두었다고 한다. 아무래도 암이 의심되는 거니까 서울의 큰 병원에서 진료받고 수술하고 싶으셨는데, 엄마 친구분이 열심히 알아봐 주셨다고. 갑상선 쪽 추적관찰 해야 한다는 건강검진 결과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엄마가 친구분들이랑 같이 갑상선 쪽 병원에서 다 같이 검사받기로 했다가 발견한 거라고 한다. 정말이지 엄마 친구분들께 절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병원 초진은 예약되었으니 내가 할 일은 그 일자에 맞춰서 기차를 예약하는 일. 서울삼성병원은 srt를 타고 수서역에 하차하면 셔틀버스를 타고 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깝지만, 조회해 보니 이미 srt 표는 매진이었다. 어쩔 수 없이 서울역에 내리는 ktx로 예약.


나중에 돌이켜 보니 지방에 사는 부모님이 아프셔서 서울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경우, 자식으로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기차표 잡는 거다. 나는 평소에 집에 자주 내려가는터라 ktx 예매가 일상이지만, 이렇게나 평일 기차표가 빠르게 매진되는지 몰랐다. 출장, 여행 목적도 있지만 우리 엄마처럼 병원 진료의 목적도 있겠지. 특히 서울 대형병원들과 가까운 수서역에 정차하는 srt는 표가 더더욱 없었다. 아마도 치료받는 분들이 자주 타시는 영향이 있기 때문인 듯하다. 우리 집은 진영역이랑 가까운데 진영역은 기차가 자주 오지 않기 때문에 표 잡는 게 더 만만치 않았다. 서울로 올라오는 표는 도착시간을 병원 진료에 맞게 여유 있게 해야 하고, 진료 끝나는 시간을 잘 예측해 내려가는 표도 잡아두는데 혹시 추가 검사나 병원 대기 시간이 길어질 수 있으므로 예비표까지 예매해 두는 게 좋다.


엄마 병원 일정에 맞게 휴가를 내고 서울역에 마중을 나갔다. 엄마 전화받고 가장 먼저 한 것은 상사에게 그 사실을 보고하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휴가를 자주 쓰게 될 것이기 때문에. 다행히 상사와 팀에서는 가족일이라고 하니 잘 이해해 주셨다.


서울역에서 마주친 엄마는 평소와 같았다. 다만 요즘 진단받은 게 신경이 쓰여서 소화가 잘 안 된다고 했다. 하긴 우리 엄마는 평소 아주 건강체질이라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웬 날벼락처럼 갑상선 암 진단을 받았으니 얼마나 놀랐을까. 사실 이때까지도 엄마는 암이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큰 병원에 가봐야 한다고만 이야기했고. 나도 일부러 그런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고, 서울역에서 내가 좋아하는 한식집에서 같이 점심을 먹었다. 엄마 보고 눈물이 나면 어쩌지 했는데, 생각보다 담담하게 있을 수 있었다. 회사 이야기 하고, 동생 이야기 하면서 수다를 떨며 밥 먹고, 혹시 차가 막힐까 봐 지하철을 타고 병원으로 이동했다.


병원까지 걸어가는데, 하늘이 참 파랗다

일원역에 내려 병원까지 걸어가는데 날씨가 참 좋았다. 역에 병원까지 가는 셔틀버스가 있었지만, 좀 걷고 싶어서 파란 하늘의 쨍쨍한 햇살에 같이 양산을 쓰고 걸었다. 삼성서울병원은 정말 정말 컸다. 정문으로 들어갔는데, 사람도 많고 진료과가 너무 많아서 정신이 없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어리둥절해서 예약 내역을 들고 안내 데스크에 갔더니 암병원으로 가셔야 한다고 해서 안내사인을 보고 이동했다. 삼성서울병원은 크게 본원과 암병동으로 구분되어 있다고. 역에서 본원 가는 셔틀과 암병원으로 가는 셔틀이 구분되어 있을 정도로 병원 규모가 컸다. 초조하고 걱정되는 마음으로 바삐 지나가는 사람들의 무리에 휩쓸리지 않도록 엄마 팔짱을 끼고 암병동의 이비인후과 쪽으로 갔다. 뭐부터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서 간호사 선생님에게 물었더니 다른 병원에서 진료 의뢰받아서 온 초진인 경우, 촬영 영상cd등 기존 검사 데이터가 있으면 그것부터 등록하라고 했다. 키오스크에 엄마가 받아온 cd를 넣고 접수가 잘 된 걸 확인하고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환자가 많았다. 새삼 참 아픈 사람이 많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더 우울해졌다.


예약 시간이 다가오고 엄마의 이름이 호명되어 진료실 앞의 의자에 앉아 대기했다. 대기 환자가 많아서 딜레이를 각오했는데 제시간에 진료실로 들어갔다. 의사 선생님은 엄마가 들고 간 데이터를 보더니 바로 모양이 좋지 않아 암이 맞는 것 같다고 했고, 크기가 아주 크거나 하진 않아서 환자가 원한다면 바로 수술하지 않고 조금 더 두고 볼 수도 있겠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 엄마는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다며 바로 수술받고 싶다고 말했다. 역시 엄마도 나한테는 대수롭지 않은 척했지만, 정신적으로 많이 힘드셨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증상이 없었는데 하루아침에 암환자가 된 거니까. 수술 가능한 날짜를 확인해 달라고 했는데 처음에는 1월 이야기를 했다. 지금이 9월 초였는데, 내년이 되어야 수술을 할 수 있다니.. 더 빠르게는 한 자리도 없냐고 했더니 기다려보라고 하고 조금 더 찾아보더니 11월 초에 수술 취소가 한 자리 생겨서 이때 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래서 덥석 그날로 해달라고 하고 수술일자를 잡았다. 얼떨떨했다, 엄마가 암수술을 받는다니.


의사 선생님은 심적으로 힘든 부분에 대해 이해해 주셨고, 그렇게 심각한 상태가 아니다 하며 우리를 안심시켜 주셨다. 주변에서 요즘 갑상선 암은 암도 아니라더라 하고 이야기한다는데, 암인데 어떻게 대수롭지 않을 수 있을까. 정말 당사자가 아니니 할 수 있는 소리인 것 같다. 그래도 의사 선생님이 괜찮다, 수술 잘해 드리겠다, 치료 잘 될 거다 하고 이야기해 주니 엄마도 나도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진료를 받고 나와서 수술 상담해 주시는 분과 함께 향후 일정을 안내받았다. 9월 말에 수술 전 검사로 피검사, 소변검사, 두경부 ct, 초음파를 찍어야 하고. 10월 중순에 그 검사 결과를 보고 수술 전 확인 상담. 그리고 11월에 수술이 이루어진다. 수술 전에도 몇 번이나 더 병원에 와야 하는구나. 지방에서 온 어르신들은 정말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이렇게 헤매는데. 층도 헷갈리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래서인지 병원에서 안내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같았지만, 대학병원의 첫인상은 미로 같다는 거였다.


서울로 올라가는 표는 수서역으로 잡아서, 병원 앞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수서역으로 갔다. 수서역 안에는 식당이 별로 없어서 적당히 한식을 먹을 수 있는 집에 들어갔는데, 엄마가 점심 때는 식사를 별로 못하시더니 이제는 비빔밥 한 그릇을 다 비우셔서 내심 안심이 되었다. 아직 수술이라는 본격적인 단계가 남아있지만, 지금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나니까 엄마도 나도 마음이 한 결 나아졌다. 갑상선 암이라는 시련 앞에서 엄마가 더 힘들 테니, 나는 담담하게 엄마를 잘 케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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