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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갑상선암에 걸렸다 2

by 산들

초진이 끝나고 2주쯤 지나 수술 전 검사를 하러 왔다. 수술 전 검사 구성은 두경부 초음파, 심전도, 폐기능, 피검사, 소변검사, 가슴사진, 두경부 ct였는데, 기기를 써야 하는 두경부 초음파는 10시, 두경부 ct는 19시로 예약이 잡혔다. 종일 병원에 있어야 하다니.. 10시 검사에 늦지 않기 위해서 전날 엄마가 우리 집으로 올라오셨고 담날 아침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피검사는 8시간 금식, 두경부 ct는 4시간 금식이 필요하다고 해서, 엄마는 아침도 먹지 않았다.


오늘 이 검사를 다 받아야 한다


두 번째로 방문한 삼성서울병원은 여전히 너무 크고 정신이 없었다. 전에 한 번 와봤음에도 넓은 건물과 그 속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파도를 보니 정신이 멍해질 지경이었다. 금식이 필요했던 피검사부터 먼저 하기 위해 채혈실로 향했다. 대기표를 뽑고 기다리는데 큰 병원이라 그런지 채혈하는 직원수도 많아서 프로세스가 착착 진행되었다. 피 뽑고 10시 초음파 검사까지 시간이 또 남아서 소변검사까지 하고, 엄마가 당 떨어지는 것 같다고 해서 단백질 음료를 급히 먹었다. 먹는 걸 좋아하는 우리 모녀가 서울에서 만났는데, 이렇게 엄마한테 대충 한 끼 때우기 식으로 음료를 건네야 하다니. 갑자기 조금 서러워져서 울컥했다. 채혈실에서 피 뽑은 자리에 밴드도 붙여주지 않아서 내가 챙겨간 밴드를 붙이며 생각했다. 이렇게 된 이상 어서 수술받고 쾌유하는 수밖에 없다!


예약된 검사는 기다림 없이 제시간에 들어가서 받을 수 있었다. 넓은 병원을 이리저리 부지런히 돌아다닌 끝에 오전 11시 조금 넘은 시각에, 19시 예약인 두경부 ct만 빼고 모두 완료했다. 오후 7시까지 어떻게 기다릴 것이며, 그때 엄마가 늦은 기차를 타고 가면 너무 힘들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 간호사 선생님께 혹시 더 빠르게 검사할 수 있는 시간은 없는지 문의했다. 간호사 분도 19시에 검사하시는 거면 너무 오래 기다리시는 것 같다고 알아봐 주겠다고 하시곤, 오후 2시에 비는 타임이 있으니 그때 예약을 넣어주겠다고 하셨다. 2시 20분으로 잡아주셨는데, 앞 상황에 따라서 시간은 좀 더 밀릴 수 있다고. 지금은 빈 시간이 없어서 죄송하다고 하는데, 무려 4시간 이상 당겨주셔서 그것만 해도 감지덕지. 어차피 엄마가 단백질 음료를 마셔서 지금은 4시간 공복을 지킬 수도 없었기에 그게 최선이었다. 정말 너무도 친절한 간호사 선생님이었다.


병원에서 기다리긴 지루하니 근처의 봉은사에 가보기로 했다. 삼성서울병원에서 택시로 20분 정도 가면 봉은사에 도착한다. 우리 엄마는 불교이기도 하고 절을 좋아하기 때문에, 나한테 티는 내지 않지만 울적할 엄마의 기분을 조금 전환하고 싶기도 했고. 엄마는 봉은사에 처음 가보는 거였는데, 번쩍번쩍한 도심 속에 이런 절이 있어서 신기해하셨다. 안으로 걸어 들어가니 본당이 보여서 엄마는 절하고 보시를 한다고 본당으로 들어가셨고, 그런 걸 잘 모르는 나는 밖에서 뻘쭘하게 서서 단청을 바라봤다. 화려한 색조합이지만 묘하게 차분해 보이는 분위기 속에서, 부처님의 자애로운 은혜가 아무쪼록 우리 가족에게도 미치길 바랐다.


봉은사 단청, 참 아름다운 색조합


점심 무렵이 되었지만 엄마는 금식이므로 봉은사 맞은 편의 코엑스 안 스타벅스에 가기로 했다. 나는 슬슬 배가 고팠기 때문에, 샌드위치랑 라테를 주문해서 후다닥 먹어치웠다. 병원 진료를 기다리는 건 참 지루하다. 그냥 놀러 온 거였다면 엄마랑 영화도 보고, 코엑스 가게들도 구경하고 별마당 도서관에도 갔을 텐데.


여유 있게 도착하기 위해 또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도착했다고 간호사 선생님에게 알리고 대기 의자에 앉았다. 전광판에는 환자들 이름이 떠있다. 곧 입장해야 하는 환자 리스트에 엄마 이름이 올라가길 기다린다. ct는 조영제를 맞고 진행하기 때문에 조영제 부작용에 대한 설명을 듣고 조영제부터 맞았다. 엄마는 이전에도 조영제 맞아본 적이 있고 특별한 부작용이 없었는데, 주사 들어갈 때 조금 화끈거리는 느낌이 있다고 했고, 간호사 선생님은 그럴 수 있다며 혹시 계속 불편하면 말해달라고 했다. 나는 작은 거 하나하나 다 신경이 쓰이는데 엄마는 오히려 초연한 듯했다. 병원이라 당연한 말이겠지만 환자가 참 많다. 우리 주변에 우리보다 더 아파 보이는 사람들도 많았고, 많이 불편하고 불안할 텐데 내색 않고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니 내가 불평할 처지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태어난 지 3개월 남짓 되어 보이는 신생아도 있었는데, 그 작디작은 아이가 링거줄을 주렁주렁 달고 지나가는 걸 보고 있자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아무쪼록 건강하게 나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시간이 되어 엄마가 ct를 찍으러 들어가셨고 검사는 금방 끝났다. 검사 마치고 나니, 조영제를 몸 밖으로 빨리 내보내기 위해 물을 많이 마시라고 했다. 조영제는 소변의 형태로 우리 몸 밖으로 배출된다고. 병원에 정수기가 있어서 온수와 냉수를 적당히 섞어 미지근한 물로 만들어서 엄마에게 부지런히 날랐다. 우리 앞에 노부부가 계셨는데, 어머님이 조영제를 맞으신 듯했다. 아버님이 물을 계속 건네주시는데, 어머님은 그만 주라고 못 마시겠다고 투정을 부리시고. 아버님은 그래도 계속 마시라고 아웅다웅하시는데, 병원에서 그런 감정이 드는 게 참 아이러니하지만 어르신들이 너무 귀여우셨다. 어르신들도 건강하십시오. 아플 때 가장 힘이 되는 것은 역시 가족이다.


간호사 선생님이 조정해 주신 덕에 검사가 일찍 끝나서 서울역에서 4시 좀 지나 출발하는 기차를 탈 수 있게 되었다. 기차 시간에 늦을까 싶어서 검사 다 끝나자마자 바로 택시를 타고 서울역을 향했고. 다행히 밥 먹을 시간은 좀 생겨서, 엄마와 함께 곰탕을 먹었다. 피 뽑고 이런저런 검사하느라 고생한 엄마와, 엄마 옆에서 별로 한 거 없지만 그냥 요란하게 파닥거렸던 나는 그제서야 식욕이 돌아서 사이좋게 곰탕을 싹 비웠다. 이제 2주 뒤 오늘 한 검사를 바탕으로 한 교수님 진료를 보고 수술이다. 엄마도 나도 컨디션 관리를 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맛있었던 따끈한 곰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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