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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석진 Jan 04. 2022

번체(繁體)와 간체(簡體)

過와 过

 중화인민공화국은 문맹의 타개를 위해 기존의 한자에 번체자라는 이름을 붙이고 간체자라는 쉬운 한자를 만들었다. 그래서 중국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컴퓨터나 휴대폰에 Chinese Keyboard를 설치할 때 싱가폴, 대만, 홍콩 그리고 중국 네 국가의 버젼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가만… 중국만 간체자를 쓰는데 다른 셋은 또 다를 게 뭔가? 


 이유는 속자(俗字)에 있다. 오래전부터 원형의 한자를 다 쓰기 귀찮아서 만든 간단한 형태의 한자인데 이 한자를 폭넓게 차용하고 더 만들어낸 경우가 중국의 간체자이다. 고로 모두가 속자를 차용한 범위만 다를 뿐 일부 글자를 간단히 바꾸고 쓰는 것은 매한가지인 셈이다. 한자를 포기하지 않은 일본 역시 일부 글자는 속자를 쓰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나가다, 지나치다 등의 의미인 과(過)의 원형은 중국에서 过(guò-궈)로 바뀐다. 过 역시 속자인데 咼(가를 과) 대신 寸(마디 촌)이 辶(쉬엄쉬엄 갈 착) 위에 들어가 있다. 

 

 寸자는 ‘마디’나 ‘촌수’를 뜻한다. 수치적 의미다. 본래 손끝에서 맥박이 뛰는 곳까지의 길이를 뜻하는 글자였다고 하나 지금은 손가락 마디 정도의 길이를 뜻한다. 사람들의 손이 커진 것일까? 아니면 수치를 보는 마음이 작아진 것일까? 


중국에서 피자를 시켜먹던 시절 나도 저 수치로 피자를 주문했다. “6촌 피자 주세요. 아니 8촌 피자 주세요!” 

이렇듯 过는 어떤 수치를 떠오르게 하고 그 수치를 넘어서는 느낌을 준다. 압도적인 대륙의 여러 수치와 걸맞는 모양이다.


그에 반해 過는 시공간을 가로질러 가는 느낌이다. 그 자체가 속자보다 오래된 문자인 것처럼, 대륙의 밖에서 자신의 모습을 지키고 있는 것처럼. 


 세상 그 어떤 수치가 아무리 过하다 한들 過는 여전히 過일 것이다. 과도했던 모든 것들은 다 지나가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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