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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jeong Sep 04. 2017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

과도하게 관찰받는 세상 속에서 개인의 익명성에 대한 의문

요즘 출퇴근하는 버스 안에서 팟캐스트를 즐겨 듣는다. 그중에서도 'Beers & Matters'를 자주 듣는데, 뉴욕에 살고 있는 한국인 디자이너가 여러 분야의 크리에이터들을 게스트로 초대하여 그들의 취미나 취향, 현재 하고 있는 작업 등을 주제로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는 방송이다. 앞으로 내가 가고 싶은 길을 먼저 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흥미로워서 종종 듣는다.


Beers & Matters의 최근 게스트 중 한 분이 방송에서 언급한 전시가 있는데, 찾아보니 재미있어 보여서 일요일에 다녀왔다. 전시가 열린 곳은 'Park Avenue Armory'로 과거 군대용으로 사용되던 건물이 비영리 예술단체에 의해 새로운 예술 공간으로 재탄생한 곳이다. 사실 방송을 통해 알기 전까지는 들어본 적이 없던 곳인데 찾아보니 주로 일반적인 극장이나 콘서트홀, 갤러리에서 하기 힘든 실험적인 전시나 퍼포먼스가 펼쳐지는 곳으로 유명한 현대 미술 공간이라고 한다.


내가 관람했던 전시인 'Hansel & Gretel'도 체험 방법이 실험적이고 신선했다. 전시 관람은 벙커에서부터 시작한다. 어두워서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좁은 통로를 조심조심 걸어가다 보면, 본격적인 전시장인 Drill Hall로 들어가는 입구 앞에서 안내원이 비춰주는 작은 불빛 하나가 보인다. 그 빛을 따라 입구에 다다르면, 전시 관람 방법에 대한 짧은 설명을 듣고 마침내 입장하게 된다. 전시 공간은 넓고 텅 빈 강당 같았고 앞은 보이지만 여전히 어둡고 캄캄했다.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입장하니, 바닥이나 천장을 바라보며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사람들과 바닥에 드러누워 어떤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출처: designboom


전시장 바닥은 마치 거대한 cctv 화면 같았다. 관람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천장 어디선가 계속 찍히고 있었고 그 형상이 바닥에 그대로 보였다. 신기하면서도 이상한 기분이었다. 내가 볼 수 없는 나의 모습(위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모습)을 내 발 밑에서 볼 수 있는 게 신기하면서도 누군가에게 감시 당하는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대체 어디서 어떻게 촬영이 되고 있는 건지 궁금할 때쯤, 천장에서 '위잉-'거리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 날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두 개의 드론이 일정한 텀을 두면서 전시장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드론 속에 숨겨진 카메라가 빛을 내며 관람객을 추적하고 그들의 움직임을 기록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감시 속에 둘러싸인 듯한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점차 바닥에 기록되는 내 모습이 재미있고 신기해서 사진 찍듯이 여러 포즈를 취해보았다. 다른 사람들처럼 누워도 보고 촬영되는 동안 몸을 움직이면서 기이하고 재미있는 형상을 남기기도 했다.


photo by 강씨


한참 시간을 보낸 뒤, 두 번째 전시장이자 마지막 전시장인 'Surveillance Laboratory'에 가기 위해 건물 밖으로 나왔다. 안내원의 설명에 따르면, 입구에서 몇 초동안 정면을 바라보고 있으면 사진이 찍히고 그 사진은 안에 들어가서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사진을 찍고 입장하니, 사람들의 얼굴 사진을 띄어놓은 대형 스크린이 먼저 보이고 여러 대의 아이패드가 놓인 큰 테이블도 보였다. 아이패드로 사진을 찍으면 내 얼굴을 인식해서 좀 전에 입장하면서 찍었던 사진을 화면에 띄어준다. 이것 역시 신기하면서도 이상한 기분이었다. 만일 누군가 숨어있는 나를 찾으려 할 때 주요 기기에 얼굴 인식 기능만 심어놓으면, 정말 깊은 산속에 숨어서 문명과 단절된 채 살지 않는 한, 전 세계 어디서든 나를 발견하는 것은 시간문제겠다는 생각에 새삼 무서워졌다.


아이패드에 남은 내 얼굴이 지워졌나 확인한 후, 다른 버튼을 눌러보고 당황했다. 벙커 입구부터 첫 번째 전시장이었던 Drill Hall, 그리고 두 번째 전시장 입구에서 사진을 찍던 곳까지 즉 지금까지 내가 거쳐온 모든 장소들이 Hansel & Gretel 공식 홈페이지와 Youtube에서 실시간으로 스트리밍 되고 있었다.


바닥에 눕기도 하고 이상한 포즈를 취하면서 사진 찍기 놀이에 삼매경일 때, 익명의 다수가 그런 우스꽝스러운 내 모습을 전부 지켜보고 있었다니? 'Surveillance(감시)'라는 컨셉을 처음 들었을 때는 단순히 관람객이 '감시당하는 기분'만을 느끼게 하는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관람객은 익명의 존재(또 다른 관람객)에게 감시(관찰)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분이 굉장히 묘했다. 순간, 영화 '트루먼쇼'가 생각나면서 이 두 번째 전시장도 의심스럽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또 찍히고 있는 거 아냐?






이 전시를 기획한 건축가 듀오 'Herzog & de Meuron'과 예술가 'Ai Weiwei' (이하 작가)의 의도가 궁금하여 인터뷰를 찾아보았다. 내가 이해한 그들의 의도는 다음과 같다. (원문: https://goo.gl/UAPWwy)


동화 ‘헨젤과 그레텔’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고 자취를 남기는 것과는 반대로 이 전시장에서는 관람객이 자신의 위치를 숨기는 것이 불가능하다. 감시카메라에 의해 매 순간 추적당하고 기록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개개인의 기록은 익명의 다수에게 온라인으로 또는 'Surveillance Laboratory'에 실시간으로 공유된다. 즉 관람객은 '관찰받는 존재'인 동시에 다른 이들을 '관찰하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이 체험을 통해 작가는 과도하게 감시(관찰)되는 세상 속에서 보장받지 못하는 개인의 사생활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작가의 의도를 읽고 내가 제일 먼저 떠올린 것은 바로 '온라인'이었다. 당장 구글에 내가 자주 쓰는 아이디만 검색해봐도 커머스 사이트에 내가 올렸던 질문글, 내 블로그, 외국 한인 커뮤니티에 올린 룸메이트 구인 글 등 내 개인정보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내가 어떤 제품에 관심이 있는지, 인터넷에 어떤 글을 올리는지 그리고 현재 어느 나라, 어느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지 등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정보들을 검색 한 번으로 쉽게 얻을 수 있다. 해쉬태그나 '알 수도 있는 사람' 추천 서비스 등을 통해 공공연하게 드러나는 인스타그램 속 내 개인적인 사진들도 마찬가지다. 물론 인스타그램은 계정 비공개를 통해 어느 정도 사생활 보호가 가능하긴 하다. 하지만 블랙홀 같이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온라인 세상 속에서 내 개인 정보는 셀 수도 없이 많이 떠돌아다닐 것이며 그 정보들을 다 모은다면 '나'라는 사람을 90% 이상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가까운 친구보다 더 나의 진실된 모습을 알아차릴지도 모르겠다.


두 번째로 떠오른 단어는 바로 '시선 강간'. 전 세계 흐름에 따라 한국에서도 최근 몇 년간 화두인 페미니즘에 대해 거론할 때면 종종 언급되는 단어 중 하나로 표현이 다소 자극적이고 강하긴 하지만, 나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타인으로부터 몹시 불편한 시선을 느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 단어의 논란을 떠나서, 성별을 떠나서, 어쨌든 우리는,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타인의 시선을 불쾌할 정도로 지나치게 받는 경우가 종종 있고 이 또한 내가 과도하게 관찰되는 세상 속에 살고 있음을 새삼 느끼게 한다.


가상세계에서든, 현실 속에서든 내가 무의식 중에 타인을 관찰하고 또 타인에 의해 관찰받고 있다는 사실을 자주 인지하지 못하고 살았다면 이 체험은 내가 감시받고 또 감시하고 있음을 매 순간 인지시킨다. 시각적인 방법을 통해서 말이다. 나의 궤적, 나의 얼굴 그리고 타인의 궤적, 타인의 얼굴이 계속 내 주위에서 기록되고 보이기 때문에 '관찰', '감시'라는 단어들이 전시를 감상하는 내내 머릿속에 떠오른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소 자신이 얼마나 다른 이들을 관찰하고 또 관찰받고 있는지를 크게 인지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끊임없이 '감시'라는 키워드를 되뇌게 하는 이 전시의 방법은 실험적이고 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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