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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키뉴 Mar 24. 2024

당신의 글은 좋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던 거지

이건 없어도 되는 말 같아요.
이건 너무 차갑네요. 괜한 오해를 살지도 모르니 빼는 게 좋겠어요.


내가 써 보인 글에 대해 평가를 받았다. ‘제안’일 뿐이니, 꼭 반영되지 않아도 괜찮아요, 하는 다정한 말과 함께, 사람들은 나의 글에서 못난 곳이 어디인지 여기저기 꼬집고 있다.


좋지 않다는 말이겠지. 그니까 나쁘단 거잖아? 좋지 않다는 게 꼭 그런 뜻은 아니라고, 그러니까 괜한 오해 마시라고 하겠지만, 그게 결국 나쁘단 말이지 뭐겠는가 하는 심술에, 맑은 정신으로 자리에 앉아 있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플 수밖에. 나는 작아지고 만다. 내 글이 안 좋은데, 그래서 ‘좋아요’를 안 눌러준 것뿐인데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요. 그 사람의 눈이 멀었다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겠지만, 나란 녀석은 늘 그게 쉽지 않은가 봅니다. 내 글에는 아주 조금의 티도 있을 수 없다고 말하기 어려웠으니까. 이게 양심이라 해야 할지, 내 스스로에 대한 너무나도 약한 믿음이라 해야 할지, 아무튼 나는 그런 사람인 것이다.


없던 일을 있었던 일처럼 말한다 해도 부정하기 어려웠다. 난 잘 까먹으니까. 이번에도 까먹었나 보지. 마음이 그러하다 보니, 술을 마신 다음날엔 종종 필름이 끊긴 사람 취급을 받아도 할 말이 없었다. 술은 너와 함께 마셨고, 그래서 너와 나 모두 취했었지만, 그래도 너의 필름은 내 필름보단 질기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뭐 그런 것이다. 


우습지 않을까? 정말 내 글이 나쁜 게 맞는데도 아니라고 떼를 쓰고 있다는 게. 정말로 있었던 일이고, 내가 그걸 까맣게 잊어버린 것임에도 그런 일은 없었다고 우기고 앉았는 게. 앞을 보지 못하는 건 내가 아니라 바로 너라고 땡깡을 부리는 모습보단, 진짜 그런 적 없었다니까 하고 우기고 앉은 그런 모습보단, 내 스스로를 믿지 않는 게 차라리 모양이 덜 빠진다고 여기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왜 그게 모양이 덜 빠지는 일이라 생각하는지는 나도 알 수 없습니다.


없어서는 안 될 말이라 생각해서 썼던 말을, 없어도 될 말이란 말에 댕강, 하고 날려버린다. 뜨거웠던 내 맘을 표현한다고 생각했던 그 단락이, 누군가의 미움을 살 정도로 차갑다는 말에 역시 댕강, 하고 날려버린다. 나는 안 볼란다. 곧 모가지 날아갈 가여운 녀석의 두 눈, 그거 그거, 난 안 볼란다 이 말이다. 눈 질끔 감고 단숨에 해치워야 한다. 그게 그 친구를 위하는 길이라 생각하니, 어설프게 잡았던 칼자루를 다시 꼭 잡게 된다. 여기 댕강, 저기 댕강. 그렇게 나는 타협하고 말았네요.


깔끔해졌어요.
명확해졌어요.
아까 보다 훨씬 나아졌네요.


타협의 끝에서, 이젠 긍정의 평가를 마주한다. 끝났다는 생각에 더이상 고민하지 않고 그대로 발행하려다, 잠깐 멈춰섰다. 내가 미안해요. 그래도 혹시 덧나진 않을까 해서, 있던 것이 잘려나간 그곳에 약을 바르고 호~ 호~ 하고 있다. 이젠 좀 나아질 거예요. 


그런데, 당신은 누구신가요? 


이젠 그 친구를 찾을 수 없겠다. 이 세상 어디에서도. 네 것이었던 것이, 비록 아주 조금이었다 하더라도, 아무튼 그런 네 것이었던 것이 몸에서 달아나버렸다면, 그런 몸을 지닌 너는 더이상 네가 아닐 테니 말이다. 그러니 깔끔한 것도 아니고, 명확한 것도 아닙니다. 아까 보다 훨씬 나은 건 더더욱 아니겠습니다. 타협이라는 건 바로 이런 것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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