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yoho Aug 29. 2022

버려진 SNS

누구나 계정 하나씩 더 가지고 있잖아요?





    끝을 알 수 없는 우주 속, 작은 지구 안, 점 같은 존재인 내가 스치듯 남긴 흔적이 가상 세계를 정처 없이 떠돌고 있다. 프로필 사진이 회색으로 채워진 유령 아이디들과 함께.


    둥둥. 동동.     


    나는 인스타그램을 즐겨한다. 하소연과 자랑이 뒤섞인, 대체로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남기기 위한 일기 같은 공간. 다른 이의 게시물에 댓글을 잘 못 남기고 하트만 꾹꾹 눌러 마음을 전하는 게 전부인 조각 공간. 읽고 있는 책과 보고 있는 풍경, 귀여운 아이의 흔적이 공존하는 블록 같은 정사각형. 근사한 장소에 가거나 좋은 사람을 만나면 남기고 싶은 액자 틀. 하루에도 수시로 접속해 만나는 세상을 나 역시 좋아한다.

    그리고 가끔은 그곳에 내 영역이 조금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 전체를 보여주는 게 아닌 이런 나와 저런 나를 분리하고 싶을 때. 내가 그린 낙서나 자투리 글을 불특정 다수에게 선보이고 싶고 관심받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충동적으로 계정을 개설한다. 나름대로 열심히 아이디를 고민하고 어떤 게시물을 쌓을지 아이디어를 모은다. 독서기록을 남기거나 그림일기를 그려볼 수 있을 듯하다. 메모장 대신, 일기장 대신 SNS를 활용하면 더 가치 있으리라 믿는다. 

    이런 생각 끝에 ‘작은 습관 만들기’라는 계정을 만들었다. 계정에는 너무 사소해서 모두가 잊고 살 법한 행동들을 간단한 그림으로 그려서 공유했다. 우연히 추천 피드에서 내 그림과 글을 보게 된다면 아 참! 오늘 물을 너무 안 마셨지. 맞아. 이불 정리를 안 했네. 오늘도 핸드폰을 너무 많이 봤어. 하며 자신을 슬쩍 돌아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랐다. 불특정 다수의 호감을 얻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자체가 나에게 좋은 습관으로 자리 잡기를 바랐다.

    그래. 하루에 하나씩 매일 게시물을 올리자, 꾸준함을 이길 수 있는 건 없지. 

    순간적으로 솟구친 강렬한 의욕이 내 삶의 원동력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뭐든 해낼 수 있고 대단한 사람이 된 듯했다.     


    하지만 그렇게 시작한 SNS는 한 달쯤 지나자 점점 시들해졌다. 이제 막 올린 피드는 비슷한 취향을 지닌 몇몇 사람의 관심을 끌었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점점 모르는 이의 하트도 설레지 않았다. 해시태그를 다는 일에 익숙하지 않아서 게시물 하나 올리는 일조차 고단해졌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내 것 좀 봐주세요, 라고 홍보할 줄도 몰랐고 다른 계정에 가서 먼저 팔로우를 요청하며 소통을 하지도 못했다. 언젠가부터 더블클릭으로 계정을 바꾸는 행위 자체가 번거로운 일처럼 여겨졌다. 접속 기간은 하루에서 이틀로, 다시 일주일로 길어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예 발길을 끊고 말았다. 한 번씩 친구와 지인들의 계정을 팔로우해 보세요, 라는 멘트의 알람이 오면 까맣게 잊고 있던 게시물들이 떠올라 낯이 부끄러웠다. 

    이게 정말 내가 원했던 공간인가. 주인조차 들여다보지 않는 곳을 찾는 이가 과연 있을까. 

    그럼에도 계정을 삭제하지는 못했다. 아마도 앞으로 로그인할 일은 없겠지만 치기 어렸던 그 순간을 잊지 말자는 의미로 당분간 그대로 둘 예정이다.

    기록은 만들기 쉬운 만큼 소비하기도 쉬운 법. 기록의 조각들이 나라는 사람을 만든다는 사실을 자꾸만 잊는다. 

    잊지 말자. 둥둥 떠가는 우리의 흔적들을.







매거진의 이전글 다시보기를 다시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