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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oho Dec 13. 2022

대단한 편식쟁이

맛있는 것만 먹고살아도 시간이 모자라





    나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대단한 편식쟁이다. 좋아하는 음식은 너무 많이 먹고 싫어하는 음식은 한결같이 먹지 않는다. 

    어렸을 때는 어른만 되면 먹고 싶은 것만 먹으며 마음대로 살 수 있어서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런 어른으로 자랐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의 범위는 커가면서 점점 넓어졌지만 여전히 절대 먹을 수 없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는 점심시간마다 식사를 마친 뒤 다 비운 식판을 선생님께 검사받아야 했다. 성장기 어린이들의 편식 습관을 고치기 위함과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기 위함이라는 의무와 강요였다. 그래도 도저히 못 먹겠으면 선생님께 가서 허락을 받아야 했다. ‘그래도 조금 더 먹어봐.’라는 말로 거절을 당한 적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못 먹겠다는 말은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원하지 않는 음식을 입안으로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한 번은 급식 메뉴로 추어탕이 나왔다. 추어탕이라니. 미꾸라지들이 꿈틀거리는 상상을 하니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다행히 내가 상상했던 모습은 아니었다. 미꾸라지는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갈려서 걸쭉한 국물로 보일 뿐이었다. 냄새도 구수했다. 하지만 역시 썩 맛있진 않았다. 최대한 숨을 참고 꿀꺽꿀꺽 삼켰던 기억이 삼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한 걸 보면 나에겐 대단히 충격적이었던 일인 듯하다. 학교 밥 먹기 힘들다는 말을 누구에게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밥 먹는 것만 힘든 건 아니었고 공부도 힘들고 친구 관계도 어려웠다. 또 힘들다고 말한들 달라질 수 없다는 걸 어렴풋이 알았던 것 같다.

    다행히 요즘은 아무도 급식을 다 먹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는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한 달 치 급식표를 보며 어느 날은 이런 음식도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건가 의아하다. 나는 아이에게 궁금한 게 많아진다. 아이는 그런 나를 이해한 듯, 곧잘 여러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이제 막 입학했을 무렵, 하교 후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엄마. 오늘 밥을 먹는데 국물에서 뼈가 나왔어.”

    국물에 들어있는 뼈라니. 생선 뼈가 들어있었다는 말인지, 무슨 뼈인데 아이들 급식을 뼈째 줄 수 있는 건지 바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급식표를 확인해보니 그날 메뉴는 감자탕이었다. 아이는 그때까지 감자탕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먹었더라도 내가 발라준 살코기 몇 점 먹는 게 전부였을 것이다. 나는 돼지 뼈를 보며 깜짝 놀랐을 아이 모습이 귀여워 웃음이 났다. 

    “그래서 어떻게 했어?”

    “먹었지. 그런데 뼈에 붙은 고기를 떼어내는 게 힘들어서 조금밖에 못 먹었어. 음…. 맛있었어.”

     맛있었어. 담백하고 멋진 대답이다. 아이는 그 후에도 급식에 처음 보는 음식이나 평소 즐겨 먹지 않는 음식이 나와도 찔러보고 맛보고 시도해본다. 나는 먹어라 말아라 간섭할 수 없다. 억지로 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걸 이미 오래전에 겪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나와 다른 존재라서 힘든 순간도 다르다. 나는 그런 아이가 낯설고 아마도 아이는 이런 걱정을 하는 나를 이해하기 어렵겠지.

    “엄마는 왜 밥을 안 먹고 빵만 먹어?”

    아이가 내게 묻는다. 그럴 때 나는 아이에게 너도 어른 되면 이렇게 해도 된다고 답한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아이가 자유로웠으면 좋겠다. 아이는 내 말에 별 반응이 없다. 편식쟁이가 아니라 이런 내 마음을 모르는 것 같다. 아이는 흰쌀밥을 좋아하고, 고기반찬과 나물 반찬을 좋아하니까. 내가 평생 못 먹고 앞으로도 먹지 못할 것 같은 멸치도 잘 먹으니까. 흥.     


    내가 최근 몇 년 동안 가장 즐겨 먹는 것은 ‘팥’이다. 빵에 들어간 팥도, 떡에 들어간 팥도, 빙수 위에 올라간 팥도 좋고 그냥 팥만 먹어도 좋다. 너무 좋아서 먹으면 행복해진다. 물론 콩도 좋아하고 밀가루도 좋아한다. 고구마나 감자도 좋아하는데 고구마는 씹을수록 목구멍이 뻑뻑해지는 밤고구마를 좋아한다. 그런 것들을 돌아가며 먹으며 평생 살 수 있을 것 같다. 좋아하기 때문에 어디를 가도 좋아하는 것만 눈에 띈다. 처음 가보는 장소에서도 팥이 들어간 음식이 있으면 꼭 먹어보거나 포장을 해온다. 

    나를 잘 아는 지인들이 이거 네가 좋아하는 거라면서 선물해줄 때는 좋으면서도 괜히 부끄러웠다. 몇 년 전, 나와 비슷한 입맛을 가진 사람들을 묶어 할머니 입맛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돌면서 나도 그 테두리 안에 들어가게 되었다. 한결 편안해졌다. 세상에 의외로 나 같은 사람이 꽤 있구나 싶어서 놀랍고 반가웠다. 조금 덜 부끄러워해도 되겠다 싶었다. 

    자랑은 아니지만, 감출 수도 없다. 음식 취향은 감출 수 있는 영역이 결코 아니니까. 어디를 가도 좋아하는 것만 눈에 띄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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