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yoho Jun 21. 2022

나에겐 초능력 _ 운전

필요하면 하겠지

 




  처음부터 못 하리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때가 되면 필요에 따라 하게 될 거라 여겼던 막연한 마음은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보통 수능시험을 본 후 대학 입학 전에 미션을 수행하듯 운전면허를 취득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스무 살부터 묵힌 운전 실력을 정말 필요할 때 발휘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더군다나 미대 입학을 준비 중이었기 때문에 수능이 끝나자마자 미술 실기시험을 준비해야 했다. 하루 열두 시간을 미술학원에서 지내다가 어느 날 운 좋게 정시 합격 소식을 들었다. 그 후로 한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싶었다. 급할 게 없었다. 

  신기하게도 친한 동기 대부분이 나처럼 무면허 상태로 대학에 입학했다. 모두 같은 실기시험을 거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다른 여유가 없었을 듯했다. 비슷한 무리에서 지내다 보니 자연스레 면허 따는 일은 까맣게 잊고 살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위해 이력서를 작성할 때가 되어서야 한 줄 더 써넣을 자격증이 없다는 게 아쉬웠다.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지, 딱 그 정도였다.      


  대학 졸업 후 우연한 기회로 출신 학교에서 조교를 한 적이 있다. 다른 직장보다 시간적 여유가 있었던 조교 생활은 진로 방향을 잡지 못했던 나에게 쉼표 같은 기간이었다. 그때 한창 뉴스에서 운전면허 실기시험 단순화에 관한 소식이 이슈였었다.

  진짜 진짜 쉽다더라. 교육 시간도 짧고.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언제 다시 어려워질지 아무도 몰라. 시간도 벌고 돈도 버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지금이 바로 기회라고. 처음으로 주변 사람들 말이 제대로 들렸다. 


  그래서 나는 그 기회를 잡기로 했다. 


  필기시험까지는 수월하게 합격했는데 실기가 문제였다. 운전면허학원에서 이수해야 하는 실기 수업시간 내내 얼마나 긴장을 했었는지 수업이 끝나면 매번 허리가 끊어지게 아팠다. 이게 쉬운 거라니! 믿을 수 없었다. 액셀과 브레이크를 부드럽게 밟고 천천히 때라는 교육담당 강사님의 말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외계어 같았다. 마음과 다르게 계속 덜컥, 또 삐걱댔다. 교육 마지막 날, 강사님은 그나마 많이 나아졌다는 말로 나를 위로해주셨다. 하지만 이 상태로 시험을 봐도 되는지는 말씀해주지 않으셨다.     


  “시험 안 보실 거예요?”

  도로주행 시험 도중 감독관이 나에게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시험은 말 그대로 시험이라 조수석에 앉은 분은 나에게 무언가를 가르쳐 줄 수 없는데도 나는 계속 혼나가며 시험을 치렀다. 

  “가야죠. 안 가요?”

  “어? 진짜 왜 그러지?” 

  감독관이 옆에서 한 마디씩 할 때마다 나는 울고 싶었다. 차라리 불합격이니 내리라고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시험코스를 다 돌고 학원 앞에 차를 세운 뒤 감독관은 내 채점표에 마이너스 표시를 장대비처럼 쏟아냈다. 그리고 항목별 점수를 더해 총점을 적으며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마지막에 혀를 쩍 소리 나게 차며 “합격입니다.”라고 말했을 땐 불합격을 잘못 말한 게 아닌가 싶어 되물어봐야 했다.

  그날 감독관은 나에게 합격을 줄 수 없다고 판단했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내가 불합격을 받을 정도로 잘못하진 않았고, 그걸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어이가 없어 보였다. 서글프게도 감독관뿐만 아니라 나도 내 실력이 엉망이었음을 인정했다. 합격했지만 전혀 기쁘지 않았다. 얼떨떨한 기분으로 시험장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괜히 눈물이 찔끔 났다.


  몇 주 후 정식 면허증을 발급받았다. 나는 나라에서 운전해도 된다고 인정해준 몸이 된 셈이다. 하지만 스스로 운전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신분증 대용으로 쓸 수 있는 여유분이 하나 더 생겼을 뿐, 이 플라스틱 카드 하나로 내가 운전 자격을 얻었다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     

가끔 길에서 도로주행시험 자동차들을 마주치면 곧 울 것 같은 얼굴로 핸들을 잡은 수험생의 얼굴이 상상된다. 그리고 이름 모를 사람에게 설령 그대가 합격한다 해도 아직은 때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조언을 하고 싶다. 

  심지어 작년에는 한 번도 써먹어 보지 못한 면허증을 갱신했다. 면허증 뒷면에는 귀여운 국제 자격까지 영어로 적혀있다. 새 면허증은 너무 예쁘고 반짝여서 더욱 내 것 같지가 않다.


  이러나저러나 나는 무경험, 무사고 10년. 아직 내 시간은 오지 않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