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yoho Jun 21. 2022

나에겐 초능력 _ 요리

이번 생엔 그른 것 같아





  오늘은 뭘 먹어야 하나. 

  요즘 내가 가장 많이 하는 고민 중 하나다. 물론 나는 먹고 싶은 게 너무 많고 뭔가 먹고 싶으면 결국 먹어야 하는 성격이라 문제가 없다. 하지만 나에게는 끼니를 신경 써야 하는 사람이 둘이나 있다. 한 명은 아직 어려서 뭘 할 줄 모르기 때문이고 다른 한 명은 우리 집 가장으로, 돈을 벌어 오기 때문에…. 

  사실 꼭 그런 건 아니다. 남편은 요리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면에서도 내게 의무를 강요하지 않는다. 혹시 집에 돌아와 먹을 게 없더라도 ‘그럴 수도 있지.’와 ‘그럼 있는 거 먹자.’라고 말해주는 사람이다. 13년째 말과 행동이 같은 사람이라서 그의 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덕분에 나는 아이 것만 걱정하면 된다. 그런데도 매일 두 사람 몫의 저녁 식사를 고민한다. 밥을 걱정하고 챙겨 먹길 바라는 마음이 사랑의 한 표현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다만 고민이 고민에서 그치기도 하는 게 문제일 뿐.     


  나는 요리가 너무 어렵다. 아마도 내가 먹고 싶은 것들은 대부분 조리 과정이 필요하지 않아서 일수도 있다. 먹고 싶은 건 언제나 빵이나 떡, 고구마, 감자, 그릭요거트, 쿠키 뭐 그런 것들이니 말이다. 그렇다고 요리를 아예 못하는 건 아니다. 우리에게는 인터넷이 있으니까. 

나에게 요리는 미션 수행과 같다. 적당한(내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레시피를 고르고 내용에 따라서 정확한 계량과 1번부터 10번까지 순서를 지켜서 해내면 된다. 문제는 그 미션을 수행하다가 3, 4번 즈음 이르면 하기가 싫다는 것이다. 


  내가 지금 뭘 하는 거지? 이걸 언제 다 하지? 어떻게 10분을 기다리지? 다 된 건가? 이게 다 익은 건가? 이게 뭐지? 나 뭐 한 거지?


  스스로가 바보 같다. 쓱쓱 썰어서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뭐가 문제인 건가 싶다. 특히 가끔 엄마가 김치 담그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노라면 멋대로 양념을 더 넣고 빼도 괜찮다고 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진짜 괜찮은 결과물이 탄생한다. 신기할 따름이다. 나는 두 숟가락 넣어야 하는 걸 세 숟가락 넣으면 바로 엉망진창이 되어버리던데. 그건 무엇 때문일까.     

  신혼 초에는 엄마에게 레시피를 듣기도 하고 직접 눈으로 보며 배워보기도 했다. 나도 직장에 다니던 때가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문화상, 내가 더 요리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있었다. 

  우리 집은 평일에는 내가, 주말에는 남편이 식사 준비를 맡는 게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아이가 이유식을 먹던 시기이기도 해서 여러모로 마음이 바빴다. 매번 엄마의 방식을 빌리고 인터넷에 의지해서 하루하루 버텼다. 솔직히 남편이 이른 저녁을 먹고 오길 바란 적도 더러 있었다.

  직장을 그만둔 지 한참인 지금도 여전히 남편은 주말 요리사가 되어준다. 그는 내가 회사에 다니지 않아도, 저녁 식사를 고민만 하다가 아무것도 못 했다고 해도 언제나 같은 반응을 보인다. 나에게 힘들었지 고생했어, 같은 다정한 말을 아끼지 않는다. 

  말하지 않아도 실체 없는 육아와 집안일의 고단함을 알아주는 사람이 내 남편이라니!


  그의 요리는 엄마의 것과 닮은 구석이 있다. 음식 재료를 아낌없이 넣고 순서도 마음 가는 대로다. 가끔 맛의 편차가 있긴 해도 언제나 만족스러운 주말을 우리에게 선물해준다.

아이는 아빠가 해주는 닭볶음탕이 제일 맛있다고 말한다. 엄마가 해주는 것도 맛있지만! 아빠표 김치볶음밥이 조금 더 맛있다고 한다. 그래도 계란후라이만큼은 엄마가 해주는 게 제일 좋다고 하는데 그게 칭찬인지 모르겠다.     


  가끔 엄마 음식이 먹고 싶어질 때면 자연스레 십 년 후, 이십 년 후 내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아이에게 그리울 만큼 멋진 요리를 추억으로 남겨주지 못할 거란 예감이 나를 서글프게 만든다. 내가 이런 푸념을 늘어놓으면 사람들은 요즘 누가 집에서 밥을 해 먹냐고, 다 사서 먹는 거라고 말한다. 나는 그 말을 믿기가 어렵다. 내 주변에는 나만큼 요리를 어려워하는 사람이 없다. 일품요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정성스러운 음식을 큰 힘 들이지 않고 대접할 줄 아는 사람들뿐이다. 그렇다면 정말 가까운 미래에 오직 나만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남는 건 아닐까. 

  그러면서도 부엌에만 서면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아 또다시 레시피를 뒤적인다. 내가 그렇지 뭐, 입이 삐죽 나온 채로.






매거진의 이전글 나에겐 초능력 _ 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