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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oho Jun 25. 2022

나에겐 초능력 _ 두발 자전거

배움의 타이밍

   



   얼마 전 아이가 어린이날 기념으로 두발 자전거를 선물 받았다. 학교에서 특기 발표를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몇몇 친구가 두발 자전거 타는 영상을 찍어왔다고 했다. 그날 후로 아이는 두발 자전거를 타고 싶어 했다. 그래, 해보자. 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하면서도 작년 이맘때가 떠올라 망설여졌다. 지난봄, 물려받은 자전거로 몇 번 시도했다가 포기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준비가 덜 된 듯 보였고 낡은 바퀴는 자꾸만 바람이 빠졌다. 자전거는 그렇게 쉽게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아이는 새 자전거가 도착하자마자 보조 바퀴를 단 상태로 집 앞 한 바퀴를 돌더니 그다음 날 당장 보조 바퀴를 떼어달라고 요구했다. 남편은 반신반의하며 보조 바퀴를 떼어줬다. 

   아이를 데리고 나갔던 남편이 금방 타겠다고 말했을 때도 그런가 보다 하고 말았다. 그런데 이틀 후 이제 자전거를 탈 수 있다고 했다. 고작 이틀 만이었다. 아이의 흡수력은 놀라웠다. 엉성한 자세는 날마다 조금씩 자연스러워졌다. 동그란 두 눈과 콧방울에 들어간 힘도 서서히 빠지는 게 보였다. 여전히 완벽하진 않지만 아이는 누가 봐도 두발 자전거를 탈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 아이를 보며 나는 몹시 당혹스러웠다. 삼십칠 년이나 산 나는 아직도 두발 자전거를 탈 줄 모르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배우긴 배웠던 걸까. 배웠는데도 끝까지 타지 못한 채 어른이 되어버린 것인지, 내 기억 속에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던 어린 나는 없다. 어쩌면 워낙 겁이 많아 부모님이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도 딱히 불만은 없었다. 밖에서 뛰어노는 것보다는 집안에서 그림을 그리고 종이 인형을 만들어 노는 게 좋았다. 친구들을 만나도 서로 자전거 실력을 뽐내며 놀지는 않았으므로 아마 친구들은 내가 자전거를 못 탄다는 사실조차 몰랐을 것이다.     


   할 줄 모르는데 할 수 있을 것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길 때가 있다. 스물한 살, 내가 그랬다. 친구들과 한강공원에 놀러 갔다가 자전거를 빌린 적이 있다. 물론 나는 탈 줄 몰랐다. 하지만 무슨 생각이었는지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여름 낮 열기를 적당히 식힐 정도의 바람이 부는 저녁 무렵이었다. 온 세상이 붉게 물들어 있었고 친구들은 자전거를 타고 이미 한참을 앞서가고 있었다. 나는 자전거에 올라 있는 힘껏 발을 굴렀다. 순간 몸이 한쪽으로 쏠리는 것을 느꼈고 균형을 잡으려 발버둥 치며 핸들을 흔들었다. 결국, 한두 발도 채 못 가고 곧장 옆으로 고꾸라졌다. 무릎에서 새빨간 피가 흘렀다. 그때 내가 울었던가. 

   지금 생각해보면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왜 배우지 않고도 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건지 알 수 없다. 남들이 자연스럽게 다 타니까 나도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걸까. 

   무슨 일이든 배움과 연습의 시간이 분명히 필요하고 나는 그런 게 전혀 없는데 도대체 어떻게. 세상 어떤 것도 그냥 얻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어이 피를 보고서야 알았다. 아무튼, 엉망인 꼴로 나였는지 친구였는지 누군가가 자전거를 반납했고 그 후 한 번도 자전거 위에 올라본 적이 없다.     


   남편은 나중에 아이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정릉천을 지나 청계천까지 가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나는 멤버에서 배제되었다. 두 사람이 자전거를 타는 동안 나는 옆에서 좀 걸어보면 어떨까 머릿속으로 상상해 보았다. 하지만 속도가 맞지 않아서 끼워줄 것 같지 않았다. 셋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좋았겠다는 마음이 들자 배움의 타이밍을 놓친 것에 대해 아쉬움이 밀려왔다. 하지만 그런 마음은 숨긴 채 참 좋은 생각인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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