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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oho Jun 28. 2022

나에겐 초능력 _ 정글짐

꼭대기 공기는 다른가요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운동장에는 폐타이어를 땅에 박아 만든 울타리 안쪽으로 각종 놀이기구가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거기에는 미끄럼틀, 시소뿐만 아니라 구름사다리, 정글짐, 철봉 같은 쇠파이프로 만들어진 기구도 많았다. 아이들은 점심시간이나 하교 후 늘 어딘가에 매달려 있었다. 차가운 파이프에 몸을 기댄 모습이 마치 볕 아래 널어둔 빨래 같았다. 왜 평범한 대화를 맨땅에서 나눌 순 없었던 것인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은 꼭 어딘가 기어 올라가 아슬아슬하게 선 채로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를 귓속말로 주고받았다.

그때마다 나는 정글짐 가장 아래에서 두 번째 칸 즈음에 올라서 있었다. 그 자리는 정상에 올라선 친구와 귓속말을 나눌 수 없었지만, 일상 대화라면 충분히 주고받을 수 있는 거리였다. 

   “왜 안 올라와?”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지금 가고 있어.”

   나는 혼잣말처럼 대꾸하면서 꾸역꾸역 한 칸씩 오르다가 다시 멈춰 서기를 반복했다. 손바닥에서 땀이 나고 발아래 흙바닥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이대로 발을 떼면 곧바로 바닥으로 고꾸라질 것만 같았다. 발을 제대로만 딛고 서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도 말이다. 내가 잠시 딴청을 부리는 사이 아이들은 다시 아래로 우르르 내려왔다. 그제야 나도 한 박자 늦게 정글짐에서 멀어지며 가쁜 숨을 몰아쉴 수 있었다.

   어린 나는 무서운 게 너무 많았다. 높은 곳이나 좁은 곳, 심지어 뜀틀도 두려워서 뛰어넘지 못하고 매번 위에 주저앉았다. 그만큼 정말 겁이 많았다. 아마도 어른이 된 지금, 정글짐에 올라야 한다면 열심히 앞만 보고 끝까지 오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조금의 여유도 없이 땀으로 흥건해진 손바닥을 연신 바지에 문지르고 있겠지.     


   얼마 전, 아이와 침대에 나란히 누워서 갖고 싶은 능력에 관해 대화를 나눴다. 현실에서 이뤄질 수 없는 초능력이 아니라 보통 사람이면 할 수 있는 일이나 신체 조건인데 나에게 없는 것, 그래서 한 번쯤 그렇게 살아보고 싶은 것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했다. 

   나는 갖고 싶은 게 많았다. 큰 키도 갖고 싶고, 하얀 피부도 갖고 싶다. 높은 곳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나 구름사다리나 철봉에 거뜬하게 매달릴 힘과 운동신경도 갖고 싶다.

   반면 아이는 갖고 싶은 게 없다고 했다. 아이는 또래보다 키도 작고 달리기도 빠르지 않으며 줄넘기를 잘하는 편도 아니다. 하지만 아이는 어두운 방 안 천장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키가 작은 건 귀여워 보여서 좋고, 줄넘기는 연습하면 되고, 달리기는…. 엄마. 내가 그렇게까지 느린 건 아니야.”

   그렇게 말하며 아이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나는 그런 표정 또한 가져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엄마는 정글짐 꼭대기에 올라가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못난이처럼 고집을 부렸다. 그래그래 라고 나를 달래듯 말하는 아이의 시선이 나보다 훨씬 어른스러워 보였다.

   지금도 놀이터 꼭대기를 의자 삼아 앉아 있는 아이들을 보면 가끔 부러울 때가 있다. 아무렇게나 달려가다가 땅바닥에 철퍼덕 누울 수 있는 자유로움도, 가볍게 장애물을 넘어가는 깃털 같은 몸짓도. 그럴 수 있어서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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