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이 소란스러운 정적 속에 흘러갔네요. 2025년, 떠오르는 해돋이 앞에서 ‘부디’ 올해는 우리 모두에게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바랐습니다. 아니, ‘무탈’하기만을 바랐다는 것이 더 정확하겠네요. 사실은 해돋이를 보러간 것이 마흔이 넘어서 처음이었어요. 한 해가 바뀌는 제야의 종소리를 듣고, 올해가 무사히 지나가서 다행이라며 마음 놓고 잠자리에 들기 일쑤였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새벽에 무거운 몸을 일으켜 딸아이도 깨우고 길을 나섰어요. 아주 먼 곳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1시간은 넘게 가야했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있어서 조금 사람이 덜한 곳으로 갔는데 마침 그곳에서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어요.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지요.
저는 2025년의 단어로 ‘안온함’을 골랐어요. 2024년은 자주 바빴어요. 바쁜 것이 지나가면 조금 숨통이 트일 거야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거듭 말하면서 한 해를 보냈어요. 하지만 그 안에서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나중에는 비싼 인생 수업료를 냈다고 웃으며 말하기도 했죠. 늘 ‘성장’, ‘발전’만이 정답인 것처럼 느껴졌어요. 나의 현재를 보면 여전히 같은 곳에서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 같았지요. 그러면 또 다음 해는 ‘성장’과 ‘성숙’을 바라보며 키워드를 만들려고 하였어요. 그런데 이번만큼은 그저 무사함, 차라리 조용히 평화로운 상태를 바라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안온함’을 2025년을 이끌어갈 수 있는 단어로 골랐어요.
2025년이 되기 전에 수업하는 장소를 외부에서 집으로 옮겨올 수 있었어요. 우리 가족에게도 아이들에게도 큰 변화가 될 거라 걱정을 많이 했어요. 처음 아이들이 집에서 하는 수업이 시작되는 주간에는 긴장도 많이 되었죠. 다행히 아이들은 강아지를 쓰다듬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집이라는 공간에 적응을 금방 하더군요. 엘리베이터 교체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어서 꽤 높이 계단을 걸어 올라와야 해요. 아이들은 거친 호흡으로 도착 해 그들의 숨을 신나게 뱉어냈어요. 웃으며 수업에도 집중을 잘 하였죠. 공간은 넓지 않아요. 그래서 집으로 들어오며 사실 생각한 것은 많은 인원을 한꺼번에 수업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죠. 해가 환하게 드는 곳에서 지금 함께하는 아이들을 어떻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시간에 집중하기로 했죠.
2024년 마지막으로 읽은 책은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냐고 묻는 그대에게>입니다. 그 안에서 아이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영감을 받을 수 있었어요. ‘결국은 그들에게 줄 수 있는 작은 것은 스스로 귀하게 여기는 마음, 나는 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믿어 주고 아끼는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게끔, 계속 끝까지 괜찮다고 이야기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는 문장에 ‘네, 저도 그래야겠습니다.’라고 속으로 대답했어요. 하지만 늘 그렇듯이 그럴 때는 어떻게 시작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언젠가 한 가지 생각에 몰두하다보면 마치 온 우주가 답을 준다는 말을 들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그런 걸 실제로 느끼기도 해요.
딸이 뜨개질을 배우고 싶다고 하여서 함께 공방에 갔습니다. 여러 뜨개실과 뜨개질로 만든 작품들 앞에서 딸은 커다란 대나무 바늘을 들고 첫 코를 시작했어요. 처음 해보는 것에 어색해하고 어렵다고 하면서도 내내 웃으면서 즐겁게 하더군요. 저도 오랜만에 코바늘을 배워보기로 하였어요. 티코스터를 떠 보고 싶었거든요. 천천히 더듬더듬 첫 글자를 쓰듯이 실을 엮어나가기 시작했죠. 그리고 빠르진 않았지만 하나의 티코스터를 완성했어요. 처음이었어요. 바늘이 들어가고 엮어주는 대로 실은 따라와 주었고 실이 서로에게 감싸듯이 한 단 한 단 올라가기 시작했어요. 결국 이거였구나 생각했지요. 첫 코가 아무리 작다한들 내가 멈추지 않으면 언젠가 그것은 하나의 작품이 되는 것처럼 내 일도 그렇겠다고 말입니다. 처음 이 일에 들어서기 위해 했던 노력들과 주춤하며 멈추기도 했지만 또 다른 가지로 자라난 책과의 이야기는 끊어지지 않았어요. 다시 들어선 일에서 조급해하던 처음의 감정들도 많이 진정되었어요. 뜨개질을 하고 하나의 티코스터를 완성하자 더 큰 용기가 생겼어요. 실의 엮임처럼 그동안 해 온 많은 시도들이 서로 엮어져서 나의 ‘연주 서림’도 성장시킬 수 있겠다고요.
그러니 저는 뜨개질의 첫 코가 하나의 작품이 되어가는 것처럼 올해 천천히, 안온함 속에서 지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