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Dubrovnik)!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빛나는 하얀 성벽과 빨간 지붕에 누구나 매혹되고 말지요. 구시가가 빚어내는 로맨틱한 분위기 때문인지 요즘에는 신혼여행지로 각광 받는다는군요. 그런데 '아드리아해의 진주'라 불리며 아름다움을 뽐내는 두브로브니크에는 가슴 아픈 상처가 숨어 있답니다.
크로아티아는 제1차 세계대전 후 유고 연방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면서 동유럽의 사회주의가 몰락하자 독립을 추진했어요. 1991년 6월 유고 연방에서 탈퇴를 선언하자 연방의 맹주인 세르비아가 반대하고 나섰지요. 결국 독립을 저지하려는 세르비아와 피비린내 나는 내전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세르비아의 군사력이 훨씬 강했기 때문에 크로아티아는 일방적으로 밀렸고, 두브로브니크도 적군에게 포위당했지요. 3개월 동안 지속된 세르비아 군의 포격에 구시가 건물 2/3이 포탄을 맞았습니다. 잘못 쏴서 성벽에 맞은 포탄만 111발에 이른다니 피해가 얼마나 심각했을지 짐작이 가지요?
세르비아 군은 이 유서 깊은 도시의 역사문화적 가치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비행기를 이용해 공중에서 무차별적인 폭격까지 가했지요. 이에 프랑스의 저명한 작가인 장 도르메송이 소중한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해 나섰답니다.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연로한 회원들을 이끌고 인간사슬을 만들어 폭격을 막겠다는 거였어요. 처음에는 헬기를 타고 두브로브니크 상공으로 간 다음, 낙하산을 이용해 공중에서 낙하할 작정이었어요. 그런데 공중 낙하는 시도도 못하고 좌절되고 말았지요. 하지만 도르메송은 포기하지 않고 배를 타고 두브로브니크로 입성하기로 계획을 바꿨습니다. 그런데 이마저도 세르비아 군이 총을 겨누며 즉시 돌아가라고 강요하는 바람에 실패하고 말았지요. 분기탱천한 도르메송은 프랑스로 돌아와 TV 기자회견을 열고 다음과 같이 부르짖어요.
유럽 선진국들이 유럽문명과 예술의 상징적 도시인 두브로브니크의
폭격 하나 중지시키지 못한다면 말이 되느냐?
도르메송의 인간사슬 계획은 실패했지만, 그의 행동은 두브로브니크의 비극적인 참상과 세르비아 군의 몰지각한 행태를 세계에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지요.
세르비아와의 내전은 1995년 12월 데이턴 협정으로 일단락되었고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이후 두브로브니크 시민들은 구시가 복구에 총력을 기울였어요. 지금도 성벽을 걷다 보면 지붕을 고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장난감처럼 예쁘고 깔끔한 지붕에는 두브로브니크 시민들의 땀과 눈물이 스며 있는 셈이지요.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와 감탄하는 빨간 지붕보다 더 대단한 건 이곳을 지켜온 시민들이란 점을 기억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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