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날

by 리모

그날 제주의 서쪽 바다는

바람이 불고 하늘은 흐렸다.

구름은 가득한데 묘하게도 눈이 부셔

희뿌연 바다를 실눈을 뜬 채로

바라보아야만 했다.


세찬 바람에 머리는 헝클어지고

물결은 파르르 몸을 떠느라

예쁘게 반짝이지 않았지만

아쉬워 마음 졸이지 않았다.



바다는 원래 그랬다.

화창하게 빛나는 날보다

적당히 가라앉아

청승맞은 표정을 하는 날이 많았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 않던가.

겹겹이 밀려오는 삶 속에서

반짝이는 추억으로 기억되는 날보다

단 한 번도 되돌아보지 않는

무채색의 덤덤한 일상이 더 많다는 사실을


스케치북을 펼쳐 흐린 하루를 담았다.

평범한 오늘이 조금 특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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