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or Liber_책을 사랑하는 시간, 공간, 인간
앞에서 필사에 관해 설명했으니 이번에는 낭독에 대해 살펴보자.
낭독은 한자로 밝을 낭(朗)에 읽을 독(讀)이다. 한자 ‘낭’에는 ‘깨끗하다, 유쾌하다, 활달하다’라는 뜻도 있다. 그래서일까 좋은 책을 낭독하면 마음이 맑아지고 환해지고 활기가 돋는다. 그래서 필사의 힘을 역설한 이덕무는 낭독도 추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첫째 굶주린 때에 책을 읽으면 소리가 배나 낭랑하여 그 이치와 취지를 잘 맛보게 되어서 배고픔도 느끼지 못하게 된다. 둘째, 차츰 날씨가 추워질 때에 읽게 되면 기운이 소리를 따라 유전하여 체내가 편하여 추위도 잊을 수가 있게 된다. 셋째, 근심 걱정으로 마음이 괴로울 때에 눈은 글자에, 마음은 이치에 집중시켜 읽으면 천만 가지 생각이 일시에 사라져 버린다. 넷째, 기침병을 잃을 때에 책을 읽으면, 기운이 통하여 부딪침이 없게 되어 기침 소리가 갑자기 그쳐 버린다.”
그에 따르면 낭독은 배고픔과 추위를 잊게 하고 걱정거리를 없애준다. 뿐인가, 기운을 통하게 하여 몸을 건강하게 한다. 육체와 정신 모두에 유용하다. 낭독은 새로운 독서법이 아니다. 오히려 잊혀진 독서법이라 할 수 있다. 조선시대만 해도 사람들 앞에서 책을 읽어주는 강독사(講讀師)라는 직업이 있었을 정도로 낭독은 흔한 독서 방식이었다.
책을 읽으며 어떤 문장을 반복해서 숙고하거나 낭독할 때 독자는 저자의 정신적 영역에 접속한다. 저자가 자신의 사유와 경험을 글로 표현한 걸 독자인 나도 함께 느끼고 경험한다. 이에 대해 소설가 보르헤스는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단테나 셰익스피어의 시구를 되뇔 때마다
우리는 어느 정도 그 시구를 창조했던 순간의 셰익스피어나 단테가 된다.
그렇다. 독서에 필사와 낭독을 병행하면 저자와의 교감은 배가 된다.
필사와 낭독은 결이 잘 맞아서 서로를 촉진한다. 필사하며 낭독하고, 낭독하며 필사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책과 저자와 더욱 가까워진다. 이덕무가 필사와 낭독을 같이 강조한 이유다. 나는 마음속 스승인 조셉 캠벨을 최대한 깊이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캠벨의 책을 심독하며 그와 내밀하게 교감하고, 문장을 필사하며 그의 정신을 몸의 일부로 만들고 또 낭독하며 내 호흡으로 흡수하고자 했다.
독서의 궁극적 목적이 체화라면 독서의 궁극적 경지는 체독(體讀)이다. 체독은 총체적 읽기이자 온몸으로 읽기다. 체독은 책과 나란 존재가 서로 혼융하는 독서다. 넓게 보면 필사와 낭독도 읽기의 일종이다. 심독은 마음으로 깊이 읽기이고 필사는 손으로 읽기이며 낭독은 소리 내어 읽기다. 이 셋이야말로 체독의 기본이다.
심독에 필사와 낭독이 더해질 때 체독이 가능하다. 심독은 마음이 책이 되어가는 것이고 필사는 손이 책이 되어가는 길이며 낭독은 목소리가 책이 되어가는 여정이다. 동시에 심독과 필사와 낭독을 통해 책 또한 나의 빛깔(마음과 손과 목소리)로 물든다.
문자향 서권기(文字香 書卷氣)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심독과 필사와 낭독을 통해 훌륭한 책에 깃들어 있는 글의 향기와 책의 기운을 오롯이 흡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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