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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 Mar 10. 2023

베를린에서의 사투 1 - 돈 벌기

잠깐의 달콤한 꿈을 꾸었다 


어찌어찌 1학기를 끝냈다. 몇몇 친구들은 유럽 여행을 계획했고, 몇몇은 고향으로 돌아갈 계획을 세웠다. 나에게 학기의 끝은 Fail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아주 짧은 안도감과 새로운 현실로 다가왔다, 그리고 나는 돈이 필요했다. 


정착을 위한 행정적인 일처리도 거의 끝냈겠다, 어떤 미래를 그려나갈지는 불명확했어도 두 가지는 확실했다. 다음 스텝으로 넘어갈 수 있는 좋은 시기라는 것과 나중에 무엇을 하던 돈이 필요하다는 것. 당연히도 결론은 구직활동으로 이어졌다. 현재 전공하고 있는 분야에서는 큰 자신도, 흥미도 없었기에, 나의 이전 경력을 살려 내가 할 수 있는 산업과 포지션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최적의 일자리는 좋아하는 음악과 영상에 관련된 기업에서 일을 하며, 외국에서 새롭게 커리어를 시작하는 것이었기에 해당 부분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던 중 한 음악 매체에서 올라온 공고를 보게 됐다. 라이브 퍼포먼스 비디오를 만드는 회사였는데, 프로덕션 팀의 인턴이었다. 역할은 PD였는데, 해당 공고를 보자 '이건 무조건 내 자리다'라는 생각과 함께 준비를 시작했다. 나만의 개성을 드러내기 위해 포토샵으로 업데이트된 CV를 새롭게 만들었고, CV에 들어갈 마땅한 사진이 없어 혼자 방에서 스탠드를 조명삼아 흑백사진을 찍기도 했다. 지원을 위한 몇 가지 질문에 대한 대답도 성심성의껏 작성했다. 그리고 나는 진심으로 그 과정을 즐겼다. 오랜만에 포토샵을 해서 서툴렀지만, 모르는 부분은 구글링 후 실제로 적용해 보며 CV를 완성했고, 방 안에서는 스탠드를 이리저리 옮겨 보고, 카메라 세팅을 바꾸며 셀프 촬영의 어색함을 이겨가며 스스로를 찍었다. (현재 내 프로필 사진이다 :D) 지원 시 필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여러 아티스트들을 디깅 하며 오랫동안 노래를 듣기도 했다. 재밌는 사실은 준비 기간 동안 그 작업이 몇 시간이 걸려도 전혀 지치거나 싫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시간이 너무나 빨리 갔고, 지루한 학교 공부와 달리 오랜만에 나 자신이 중심이 되어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해내가는 것에 기쁨을 느꼈다. 마치 처음으로 음악 일을 하기 위해 글을 쓰고 이를 즐기기 시작하면서,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이 하나하나 잘 풀리던 과거의 그때가 다시 돌아온 듯한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였을까? 그때부터 마치 모든 것이 잘 풀릴 것이라는 생각이 나의 마음속에서 조금씩 커져갔다. 돌이켜보면 분명한 적신호였다. 이러한 마인드셋이 주는 약간의 긍정적인 자신감과 자기 확신은 무조건 합격할 것이라는 근거라고는 어디서든 찾아볼 수 없는 거만함이 가득 묻은 안도감이 되었다. 지원을 완료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인터뷰 인비테이션을 받았다. 자신 있게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열심히 준비했다. 그리고 적어도 내가 받은 느낌으로는 인터뷰는 꽤나 괜찮았다. 그런데 인터뷰 후 며칠이 지나도 연락이 오지 않았고, 조금씩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일주일이 조금 되기 전 이메일을 받았다. 결과는 역시나 탈락.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타격은 꽤나 컸다. 그러지 않은가? 아무리 좋은 말로 포장해도 탈락은 마음을 쓰라리게 한다. 정말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기대감으로 가득 찼었다. 해당 포지션에 최적의 인물은 누가 봐도 나라고 당연하게 생각했고, (오히려 내가 과분하다고 생각했다) 합격 후 나의 삶을 그렸고 계획도 짰다. 음악과 영상을 함께 다루는 회사였기에 영상을 일로서 경험해보고자 하는 나에게 완벽한 기회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습지만, 심지어 다음 인터뷰에 대한 공지를 받기도 전에, 주변에 영상을 하는 친구들과 페이스타임으로 실무적인 팁을 물어보기도 했다. 그래서 탈락 결과를 본 후 괜스레 혼자  쪽팔림을 느끼기도 했다. 


결과는 정해졌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온전히 개인의 몫이다. 결과를 받은 지 24시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글을 쓰는 현재, 완벽히 이겨냈다고 할 수는 없으나 그래도 어느 정도는 마음을 다잡았다. 가능성 있는 패인을 생각했고, 비로소 나의 사고 체계는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패인과 별개로, 다시 예전처럼 무언가를 온전히 즐길 수 있었던 점, 지원 후 합격한 후의 삶만이 가치 있을 것이라며 그 한 가지만 바라보며 모든 희망을 그곳에 걸었던 스스로가 베를린에 오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수많은 도전을 하겠다는 그때의 나와 대비된다는 점. 적어도 이 두 가지는 나에게 많은 생각할 여지를 남겼다. (정신 승리를 위해) 무엇보다 이제 한 군데 지원했는데 이렇게 좌절해서 남은 시간을 허비하면 너무 바보 같지 않나 싶다. 


어느 맑은 봄날,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는 나뭇가지를 보며 제자가 물었다. 
"스승님, 저것은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겁니까, 바람이 움직이는 겁니까?"
스승은 제자가 가리키는 곳은 보지도 않은 채 웃으며 말했다.
"무릇 움직이는 것은 나뭇가지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며, 네 마음뿐이다."
-영화 '달콤한 인생' 中-


이 이야기의 결론은 아주 간단하다. 나는 한 기업에 지원했고, 1차 인터뷰를 본 후 탈락했다. 끝. 많은 것을 겪은 것 같고 나의 마음에는 여러 파도가 휘몰아쳤지만, 결국 나는 그저 지원하기 전의 나의 자리로 다시 돌아온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시간만 조금 흘렀고, 새로운 경험을 한 것뿐. 어쩌면 흔들리는 것은 정말 내 마음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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