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이런가?
나는 게으른 작가다.
예술적 재능이 충만하여 언젠가 분명 나만의 정체성이 뚜렷한 예술가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빠진, 하지만 자신에 대한 그 기대만큼은 전혀 행동하고 있지 않은, 자의식은 한없이 조그만데 때로는 터질 듯이 커져 종종 타인의 취향을 무시하는, 그런 오만하고 거만하기까지 한 게으른 작가다.
이런 내가 싫으면서도, 마음 한 편에서는 그 존재마저 알아차리기 힘든 기묘한 안도감이 나 자신을 잠식시킨다. 아직 나는 여물지 않은 것뿐이라고. 성공에 대한 가능성이 내 곁을 떠나지 않고 남아있다는 그 상태에 취한다.
가끔 그 안도감이라는 마취제가 약해질 때면, 약간의 우울감과 함께 자기 객관화가 조금은 이루어진다. 지금 이 글을 쓰는 것도 그 안도감이 살짝 깬 덕분일 것이다. 그럼에도 내 가능성에 대한 오만함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아직은 자기 확신과 오만함 사이의 그것을 놓을 때가 아닌 것 같다. 누군가 봤을 때 하찮아 보일 수 있는 알량한 이 감정이 나에게는 큰 동기가 되기도 하기에.
그러니 이제는 게으름은 뺀 그냥 작가가 되어야겠다.
그러니 이제는 뭐든 해야겠다.
나는 예술가니까
아, 그리고 나는 3개월 후 베를린으로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