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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 Aug 25. 2022

취향의 주체

어느 순간 든 의심, 내 취향은 온전히 내가 만든 것인가?

나는 취향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다. 취향은 돈이나 여타의 소유물과는 다른, 한 개인 만의 가질 수 있는 온전한 문화적 자산이기 때문이다. (물론, 돈이 많다면 취향이라는 문화적 자산을 더 깊고 폭넓은 형태로 가질 수 있게 되는 건 함정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취향을 가져야 한다는 것에 대한 강박 아닌 강박을 갖고 있다. 그것이 남들과 달라야 한다는 추가적인 강박은 덤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23살 군 제대 이후부터 내 취향을 가지려 노력했던 것 같다. 그 시작은 음악 디깅이었고, 이후 영화, 미술, 음식, 커피 등의 영역으로 뻗어갔다. 


사실 이 글에서 내가 취향을 어떻게 찾아갔다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나는 누구에게도 혹은 다른 요소에 의해 방해받지 않고 나만의 취향을 쌓아왔냐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내가 어떤 것을 접하고 나의 취향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과정에서 타인의 평가가 개입했느냐다. 사실, 어느 플랫폼을 가든 온라인 세상에서는 한 작품에 대한 평가가 너무나 쉽게 보인다. 음악만 보더라도 멜론에서는 앨범 평점과 인기순 댓글로 타인의 평가를 손쉽게 볼 수 있고, 영화도 마찬가지로 구글링만 하더라도 IMDB나 메타크리틱과 같은 사이트에서 해당 영화의 평점을 보고 싶지 않더라도 볼 수 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나는 타인의 평가를 제쳐두고 나만의 평가로 나만의 취향을 쌓아갔는가? 누구든 '맞다'라는 말이 그리 쉽게 나오지는 않을 것 같다. 적어도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남들의 평가가 나의 평가에 영향을 주는 경우가 꽤 있었다. 남들이 명작이라고 칭하는 작품에 반기를 들지 못했다. 우습지 않은가. 취향은 타인과 자신을 구분시켜 주는데 사실상 남들과 동일해지려고 했던 모습이 지금 생각하면 참 아이러니하다. 


비슷한 경우로, 타인의 시선에 의해 나 스스로 취향을 찾는 과정과 방향을 방해할 때도 있다. 나는 최근 발매된 음악은 챙겨 듣는 편이다. 이전 직업의 특성상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나, 일을 그만둔 이후에도 습관이 되어 꾸준히 체크하는 편이다. 새로운 것을 체험해보고 트렌드를 파악하고 동시에 그것들이 마음에 든다면 나의 취향에 추가하고 아니라면 버리는 체킹 루틴의 목적에 대한 불만은 없으나, 이 루틴 속에서도 나는 타인을 의식해 나만의 취향 형성을 스스로 방해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단적의 예시로, 최근의 K-POP 음악은 그다지 나의 취향이 아니고, 나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내 취향에 맞지 않을 것임을 알면서도 그들을 한 번씩은 꼭 듣는다.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기 위한다는 허울 좋은 명분 이면에는 다수의 사람이 즐기는 문화를 즐기지 않는 사람으로 보인다는 시선을 맞이하기 싫은 나의 반응이 자리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필요도 없는데 이를 위해 나의 시간을 쓰는 것이다. 불필요한 시간 낭비는 물론, 어쩌면 자신을 속이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사실 이 글은 나 자신에 대한 경고다. 그동안 나의 취향을 오염시키고 있던 스스로에 대한 경고. 사실, 외부적인 요인에 영향을 받지 않고 온전히 개인이 스스로 자신의 취향을 건설해 나가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특정 작품에 대한 타인의 평가를 완전히 배제할 수도 없고, 동시에 나의 취향에 대한 타인의 시선 자체를 내가 없애버릴 순 없다. (당연히도 그건 그 사람의 시선이니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을 속여서도 안 되고, 가끔은 타인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원하는 영역으로 파고들 줄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내 취향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떳떳해질 수 있다. 그래야 "내 취향의 주체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을 것이고, 나의 취향이 순도는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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