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정은 Feb 19. 2021

한국인과 조선인

같지만 다른 존재

내가 처음 자이니치(재일교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같은 학교 학부형 때문이었다. 친정이 큰 건설업을 하여 엄청난 부자인 그녀는 샤넬을 엄청 좋아하여 막 걸쳐 입는 운동복은 물론이고 백팩, 운동화, 샌들, 하물며 머리핀까지 샤넬을 하고 다녔다. 같은 반이 배정되었을 때 나에게 해맑게 다가와 어설픈 영어로 "우리 아이는 쿼터(1/4) 한국인"이라던 그녀의 반가워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그녀의 시아버지는 자이니치(재일교포)인데, 매년 몇 번의 제사를 드린다고 했다. (제사가 일본문화에는 없으므로, "두유 두 제사?" 라며 나에게 물어봤다) 그런데 내가 의아했던 점은, 자기 아이들이 한국인 핏줄임을 너무 자랑스러워하고 먼 이국 땅에서 몇 대가 지나도록 제사까지 올리는 집안인데 아이의 성은 완전 일본 이름이라는 것이었다. 심지어 한국/일본 혼혈인 남편은 한국어를 단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다만 한국을 너무 좋아하여 외가까지 합동하여 온 가족이 평창 동계올림픽은 물론이고 코로나 이전까지 1년에 적어도 두 번은 한국 여행을 다녀오고, 아이들 한복도 구비해놓고 명절마다 입히기까지 했다.


소설 '파친코'가 화제가 된 것처럼 일본에 존재하는 '재일교포들에 대한 차별'은 어제오늘의 뉴스가 아니다. 일본에 오기도 훨씬 전부터 "일본인들은 한국인들을 '조센징'이라 부르며 비하한다더라"라고 여러 번 들었었다. 그런데 내가 이곳에 와서 지난 몇 년간 살면서는 한국인이라 차별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언제나 나는 '캉코쿠징'(韓国人한국인)이라고 소개되었지만, 실제로 '조센징(朝鮮人)'은 글자 그대로 '조선인'을 일본식으로 읽은 것일 뿐이라 아무 부정적인 느낌이 없는 말이다. 심지어 조선인의 후손으로 예전부터 이곳에 정착해 살다가 한국 국적을 택하지 않은 집안들은 스스로를 '조센징'이라고 칭하니, '조센징'이라는 말 자체가 비하하는 말이라는 것은 상당히 왜곡된 정보이다. 물론 어떤 뉘앙스로 얘기하냐에 따라 어감이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조센징이라는 말 자체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앞서 내가 아는 학부형처럼, 대단한 사업을 하는 집안에서 딸을 자이니치 후손인 한국계 남자와 혼인을 시키고, 심지어 그의 성을 따르고 (일본은 혼인 후, 부인이 남편 성을 따른다) 한국의 문화를 좋아하는 모습은, 만약 현대 일본에서 사회적으로 자이니치가 예전 같은 큰 멸시를 받았다면 보기 어려운 광경일 것이다.


여기서 의문이 생겼다. 일본 우익, 혐한의 실체도 분명히 존재 하지만, 내가 만난 모든 일본인들은 한국인이라는 것에 호감 또는 관심을 가졌다. 20, 30대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마트 계산대의 50대 아줌마까지 케이팝과 드라마의 열혈팬들이 많다. 뉴스와 역사에서 읽고 듣는 한국인 멸시의 기록들과, 내가 실제로 일본에 거주하며 느끼는 한국 사랑의 현실은 너무나도 동떨어져있었다. 짤막하게나마 이곳에 지난 몇 년간 살며 얻은 그 해답은, 한국인이 생각하는 '한국인'과 일본인이 생각하는 '한국인'이 다르기 때문인 것 같다. 또한, 세월이 지나며 재일교포들과 한국인의 사회적 위치가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근대 역사에 무지했던 나는 일본에 오기 전에 '재일교포'의 의미가 미국에 있는 '재미교포'와 같은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일본에는 참 다양한 한국인이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서 '한국인'이라 함은, 정체성이 한반도, 즉 옛 조선, 이북, 예전 대한민국, 지금의 대한민국 등 넓은 의미의 코리아에서 왔다는 것이다.


나는 80년대 대한민국에서 태어났기에, 그 전의 한국의 모습에 대해서는 역사책으로 배운 것, 또는 가족 어른들한테 들은 것 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일본에서 만날 수 있는 여러 가지 '한국인'의 모습과 형태를 보며, 오히려 더 객관적으로, 더 충격적으로, 더 현실적으로 슬픈 한국의 역사를 배웠다.


6.25 전쟁이 터지기 전, 굉장히 많은 조선인들이 일본으로 왔다. 짧게 설명을 하자면 그들은 일을 하러, 공부를 하러, 뒤숭숭한 조선의 정세를 떠나 더 나은 생활을 꿈꾸며, 또는 배우자를 따라 일본에 왔다가 고국이 갑자기 멸망해버리고, 일제시대에는 심지어 '일본인'으로 간주되다가, 해방 후 전쟁이 나는 바람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이 곳에 정착을 하게 되었다. 일본 정부가 더 이상 한국을 지배하지 않으니 이들에게 일본 여권을 발급해주지 않았고,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에야 '한국' 또는 '조선'으로 국적을 표기할 수가 있었다. 다만, '조선'은 더 이상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엄밀히 따지자면 무국적자라고 한다.*


20세기 중반에 한국과 일본은 엄청나게 경제적 차이가 컸다. 그 시대에 조선/한반도 출신은 대놓고 멸시와 차별을 받았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현재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보는 동남아 국가 출신 외국인 노동자들의 위치가 아닐까? 그 지독한 차별은 1900년대 초반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이어졌다.


현재 일본에는 그 시대 조선인들의 후손인 자이니치들도 많지만, 그 후 유학 와서 정착한 사람들, 또는 일본인 배우자를 만나 정착한 사람들, 우리처럼 취업으로 이사 온 사람들 등 여러 종류의 한국인들이 살고 있다.





우리 가족은, 매우 운이 좋게도, 한국의 문화적 힘을 최대한 누릴 수 있는 시기에 일본에 살게 되었다. 넷플릭스를 열면 매일 오늘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드라마 탑텐 순위가 나오는데, 과장하지 않고 절반은 한국 드라마다. 주변 일본 엄마들은 나보다도 한국 드라마에 빠삭하다. 잘 나가는 미용실들은 '한국 스타일 전문 스타일리스트 보유'라 홍보하고 마트에서는 자주 한국음식 특선 코너가 열린다. 온 국민이 보는 정규방송 채널에 케이팝스타를 본떠 만든 오디션 프로가 나오고 심지어 박진영이 매번 나와서 한국말로 심사를 한다. 같은 시기 한국은 반일감정이 한창이었다.


우리가 느끼는 '한국'의 정체성은 우리의 조상들인 조선까지 당연히 포함한다. '한복'이라 부르고 '한반도'라고 칭하지만 그 모든 건 조선의 것에서 물려받은 것이다. 따라서 모든 한국인에게 조선은 뗄 수 없는 나의 일부이고 역사로 인식된다. 조선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가 차별과 멸시를 받았다고 하면 당연히 화가 날 것이다.


모순적이게도 조선과 그 출신 사람들을 차별하고 멸시했던 일본인들에게 현시대의 '캉코쿠'(한국)라는 것은 선망이자 질투의 대상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일본인에게 '조선인'과 '한국인'은 다른 의미이다. 다르다고 생각하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한국인으로서 느끼는 한국은 1900년대나 2000년대나  같은 한국인데 마치 다른  출신인 것처럼 자이니치와 캉코쿠징은 느낌이 다르다.


많은 자이니치들도 그렇게 숨기고 싶도록 멸시받던 '조선'이라는 출신이 이제는 화려한 '한국'과 같은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들은 그렇게 몇 세대를 일본에 살며 의지의 한국인답게 사회 각계에서 성공을 했는데, 이들의 '성공한 부자' 이미지도 자이니치들의 위상을 높이는데 한몫을 한 것 같다.


예전에는 많은 자이니치들이 출신성분을 숨겨야 연예인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50대 접어든 일본 유명 연예인들 중에는 알고 보니 한국인이라 카더라 하는 소문이 무성하다. 하지만 최근에는 한국인 여배우가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지 않았던가. 그 정도로 세월이 흐르며 국격과 문화의 힘 덕분에 많은 현재 한국인들은 차별과 멸시는커녕 '세련됐다'는 이미지를 가진 채 일본에서 살아가고 있다.


물론, 속으로는 우익을 지향하는데 일본인 특성상 겉으로는 티 안내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현재 우리가 사는 시대의 '캉코쿠징'은 선망의 대상이 되었으면 되었지, 큰 미움을 받지 않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그러기를 바란다.





*자이니치에 대해 공부하다가 찾은 어느 재일교포의 웹사이트. 읽기 쉽게 설명되어있고 굉장히 흥미롭다:

http://www.tufs.ac.jp/ts/personal/choes/etc/jaeil/index.html

매거진의 이전글 택시, 미용실, 그리고 이삿짐센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