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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정은 Mar 22. 2021

일본 엄마의 손수건

준비의 기본 중의 기본


도쿄에서 아이를 키우며 겪는 당황스러운 일은 한둘이 아닌데, 그중 몇 년이 흘러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은 손수건 챙겨 다니는 일이다. 여기서 말하는 손수건은, 한국에서 익숙한 옛날 할머니 할아버지 시절 양복 주머니에나 넣어 다닐 것 같은 얇은 면이나 실크 천 쪼가리가 아니라, 타월 소재로 만들어진 작은 직사각형 형태의 '젖은 손이나 물을 닦는 용도'의... 말 그대로 수건이다. 


쇼핑몰이나 공원에서 화장실을 이용하고 나면 대부분이 일회용 타월이나 건조기를 준비해놓는 다른 나라들과는 다르게 일본 공중 화장실은 (호텔이 아닌 이상) 손을 말리는 용도의 시설이 전무하다. 그나마 가끔 있는 손 건조기는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인하여 대부분이 사용불가가 되었다. 그렇기에 요즘따라 더더욱 손수건은 항상 챙겨 다녀야 한다.


바깥에서 많이 노는 도쿄 어린이들의 생활 특성상, 손수건은 한 장 갖고도 모자랄 정도로 엄마의 핸드 백안에 무조건 필요한 아이템이기는 하지만, 아이 둘 다 기저귀가 필요한 나이는 지났음으로 더 이상 기저귀 가방을 챙겨 다니지 않기에 나는 매일같이 깜빡깜빡하고는 한다. 하지만 주변 일본 엄마들 중 단 한 번도 수건 챙기는 것을 깜빡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항상 깜빡하는 것은 나를 포함한 다른 외국인 엄마들이다. 


그 이유는 일본인들이 유아기 때부터 어떻게 훈련받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주변에 일본 유치원을 보내는 사람들 또는 일본 사립 입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보면 준비물 중에 사이즈 규격이 정해져 있는 유아용 손수건이 있다. 아동용품 코너에 가면 그 규격에 맞춰 고리까지 달린 손수건이 캐릭터별로 쫙 걸려있는데, 만 3살 정도 된 아이들부터 유치원에 들어가는 순간 항상 본인의 손수건을 주머니에 챙겨 다녀야 한다고 한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만 3살부터 학습된 이 스스로 손수건 챙기는 버릇은 학창 시절 내내 권장 또는 의무화되고, 결국 그 아이가 성인이 되어서도 버릇처럼 항상 작은 수건 한장은 챙겨 다니게 되는 것이다. 


일본인의 필수품, 손수건



재작년 아이 유치원 같은 반 일본인 엄마들에게 나는 영어를 가르치고, 그들은 나에게 일본어를 가르치는 일종의 생산적인 친목 모임을 몇 달간 한 적이 있었다. 여느 날처럼, 카페 앞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들어가서 커피 한잔씩 하며 한 시간 가량 언어 교환을 한 후 나왔는데, 때는 장마철이었기에 그 사이 소나기가 지나간 것이었다. 당황하는 것은 나뿐, 갑자기 모두가 각자의 가방에서 수건을 한 장씩 꺼내어 본인 자전거 시트의 물을 닦기 시작했다. 멀뚱멀뚱 서서 어찌할 바를 몰라하는 나를 보며, 모두 다가와서는 자기 수건을 쓰라고 권하였다. 그때의 민망함이란...


이런 순간이 언제라도 닥칠 수 있기 때문에 거의 반강제적인 습관이 된 것 같기도 하다. 동물원 같은 놀이동산을 가거나, 큰 쇼핑몰에 가도 페이퍼 타월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손수건을 챙겨 다닐 거라는 가정 하에 페이퍼 타월은 시설물의 기본 옵션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페이퍼 타월이 제공된다면, 그건 '사치품'정도로 인식되어서 그런지, 그런 곳들은 대부분 고급 레스토랑 또는 호텔 같은 장소들이다. 


다른 건 모르겠어도, 손수건 챙겨 다니는 문화는 일본인의 관습 중에서 아주 친환경적인 생활방식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도 생각날 때마다 손수건을 가방에 챙겨 놓고는 하지만, 잊어버리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밖에서 아이들 손을 씻긴 후, 수건 찾는 아이들에게 민망한 나머지 "공기 중에 손 털다 보면 마를 거야!"라고 여러 번 그랬더니, 이제는 손을 씻은 후 손을 들고 막 터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왜 이리 준비성이 없을까 하고 자책한다. 이런 나를 옆에서 보는 일본 여자들은 참 칠칠맞지 못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준비의 기본 중의 기본도 안된 사람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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