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환
[이우환]
닭 하나 잘 그렸다 치자.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발언은 자신의 데생 실력이 형편없음을 고백하는 양심선언임과 동시에 환원주의 선언이다. 환원주의란 원리만 파악하면 다른 모든 것은 필요없다는 주의이다. 이 말은 닭 하나 잘 그리려고 수없이 데생연습을 되풀이하는 학생들을 모욕함과 동시에 아이디어 하나로 미술 작품을 만들어 왔다는 고백이다. 아이디어로만 작품을 만들어 온 것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고 평생 일본 다도 미학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을 비난하는 것이다. 일본 다도 미학의 본질은 극도의 인위적 아름다움과 자연미 사이의 긴장감과 적막할 정도의 간결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우환의 ‘선으로부터’시리즈 중 큰 붓으로 내려 그은 작품은 얼핏 보기에 강렬하지만 극도로 응축된 단순함이 그 강렬함의 본질이다. ‘점으로부터’ 시리즈는 사각도장을 연속적으로 찍어 점점 희미해지게 함으로써 적막감과 리듬감을 표현한 작품이다. 조응이란 작품을 양송이 같은 형태 네 개를 절묘한 위치에 배치한 작품으로 일본 꽃꽂이의 간결함과 절묘한 배치를 연상시킨다.
여기서 이우환의 위작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아크릴 물감이 나오기 전에 아크릴 물감이 사용된 작품은 명백히 위작이다. 아이디어 위주의 작품은 아이디가 도용되었을 때 오리지널을 찾기 어렵다. 뒤샹의 ‘샘’만 하더라도 사인이 없으면 오리지널을 구별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우환은 ‘내 작품에는 위작이 없다’고 화를 내며 장담하였다. ‘선으로부터’ 시리즈는 붓질이니까 정확하게 기억할지 몰라도 ‘점으로부터’시리는 도장 위조기술이 개발 된 마당에 수많은 작품을 정확히 기억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선으로부터’시리즈가 붓질이라고는 하지만 워낙 단순해서 수 십 년 지난 오늘날까지 형태를 또렷이 기억한다는 불가능한 일이다. 위작을 판 화랑이 벌금형을 받았고 위작을 만든 사람도 처벌을 받은 소식을 접하고 이우환은 무어라 할지 궁금하다.
사각철판을 세우고 그 앞에 자연석을 갖다 놓은 작품의 메타비평으로 몽돌을 갖다 놓고 콘크리트용으로 쓰는 자갈을 윤곽선을 따라 깔아 놓고 싶다. 전자는 인공과 자연의 대립을 통한 긴장감을 주는 작품이고 후자는 자연과 인공의 조화를 꾀한 작품이다. 이 둘을 비교하고 싶다. 조응이란 작품에서 양송이 같은 것을 빨간 동그라미로 바꾼 것을 메타비평으로 제시하고 싶다. 빨간 동그라미는 일본을 상징하므로 이우환의 미감이 일본 다도의 미학에 근거를 두고 있음을 상기시키고 가장 기본적인 도형에서도 조응이 되는지 확인하고 싶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