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민 Nov 21. 2022

고속버스에서 만난 할머니와의 대화

많이 다녀요. 많이 보고요. 매일 한 번처럼요.


* 해당 글은 코로나가 없던, 2013년의 이야기입니다.

ⓒ Chan Young Lee

춘천서 대구로 가는 고속버스였다. 옆자리엔 새하얀 머리를 단정하게 빗은 할머니가 앉았다. 대구행 고속버스는 항상 다 차는 법이 없어 편하게 두 자리씩 차지하고 가곤 했는데, 할머니는 굳이 내 옆에 자리를 예매하셨나 보다. 그날따라 빈자리도 많았는데. 먼저 말을 건건 할머니 쪽이었다.


- 대구엔 왜 가요? 고향이에요?

- 네, 오랜만에 고향 내려가요.

- 나는 아들 집에 가요. 버스 타고 가는 게 여행 같아요.


할머니는 체구가 작고 머리가 새하얬지만, 어딘가 다부지고 단단하게 느껴졌다. 저고리처럼 보이는 미색 상의와 잘 다려 입은 연분홍 치마에선 '여행 같아 설레하는' 마음까지 느껴지는 듯했다. 단정하게 마음먹고 꾸미진 않았는데, 수수함 속에서 느껴지는 시간의 우아함이랄까.


- 춘천에 오래 살았어요?

- 지금까지 한 5년쯤 살았어요.

- 나는 춘천에서 태어나고 자랐어요. 6.25 전쟁이 났을 때만 잠시 피난을 갔다가 다시 돌아왔죠. 춘천은 내 평생 고향이에요.


전쟁은 90년대 태어난 내게 아주 먼 이야기였으므로, 그 시절을 겪은 그들의 이야기가 늘 궁금했다. 자세를 할머니 쪽으로 틀어 앉았다. 처음엔 대화를 하며 갈 생각이 없었는데, 우연히 물꼬를 튼 대화는 대구까지 내내 대화를 하게 했다.


- 전쟁이 나면 하루 중에 가장 많이 하는 게 뭔지 알아요?

- 뭔데요?


할머니는 우습다는 듯이 양손으로 엄지와 검지를 마주치며 무언가 뽑는 것 같은 흉내를 냈는데,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으니 부연 설명을 했다.


- 이를 잡아요. 하루 종일. 피난 가는 길에 힘들면 앉아서 앞사람 이를 잡아주고, 뒤에 있는 사람은 내 머리에 난 이를 잡아주지. 그렇게 손을 이렇게 뽑듯이 이를 잡았어요.


할머니는 '이를 잡는다'라는 말이 부끄러웠는지, 입까지 가리며 개구쟁이처럼 키득키득 웃었다. 이를 잡다 보니 어느새 전쟁이 끝나고 다시 춘천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그렇게 그곳에서 계속 살았더라고. 길었던 전쟁의 역사 속에서 할머니가 가장 먼저 기억하는 건 정말 이를 잡는 일이었을까.


그리곤 가방에서 비닐 봉지를 꺼내선, 그 속에 있던 과자를 꺼내 주었다. 버스 아저씨 안 본다고 빨리 입에 넣으라고 하는 걸 거절할 수 없어서 한 입에 과자를 쏙 넣었더니 할머니는 웃었다. 그리곤 처음 본 내 등을 토닥였다. 당황스러웠으나 등을 쓰다듬는 할머니의 손길이 따듯해서 그냥 나도 덩달아 허허, 하고 웃었다.


- 많이 다녀요. 많이 보고요. 매일 한 번처럼요.


평생을 춘천에서 살았다던 할머니. 버스를 타는 게 여행 같다던 할머니. 자리가 많은데 굳이 내 옆에 자리를 잡았던 할머니. 할머니는 헤어지며 다시 내게 말했다. '잘 가요. 많이 다녀요. 여기저기.' 이름도 나이도 묻지 않았으면서 그저 많이 다니고 많이 보라던 할머니는 몇 번이고 내게 뒤돌아 손을 흔들었다. 나는 할머니의 말이 ‘많이’ 말고 ‘더 많이’, ‘더더 많이’처럼 들렸다.





written by 청민 │ 2022.03.19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